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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생 동갑내기 부부의 전원주택]
유언장 쓰듯 지은 집, 하선재

5도2촌.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의 생활을 꾸려가는 것.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민들이 꿈꾸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적 한계와 결단의 부족으로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가는 게 다반사다.

58년생 동갑내기 김재선·조상은(57) 부부 역시 죽음의 문턱 앞에 다다러서야

비로소 인생의 전환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유언장을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 생애 마지막 집이 될 것이기에,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지어봤어요.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는 선교활동을 하는 두 딸과 해외에서 온 선교사들의 쉼터로 쓰일 수 있게끔 배려했고요.”

 

58년생 동갑내기, 대학 신입생 시절 맺은 순정으로 결혼까지 골인한 김재선·조상은 부부는 지난해 가을 ‘하선재’에서 인생 후반기를 시작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집안팎에는 부부가 진짜 보내고 싶은 앞으로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았고, 자녀들에게 남기고픈 공간들도 마련했다. 그러다보니 집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부부의 별천지로 완성됐다.

 

“거실에서 앞산, 뒷산, 마당 다 볼 수 있게 했어요. 2층 서재 벽과 천장을 모두 유리로 뒤덮었고요. 그렇게 지으면 춥다고 다들 뜯어 말렸고말고요. 나는 이게 마지막 집이라고 항변했지요. 사계절 가운데 겨울만 좀 감수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면서 굳이 꼭꼭 막아놓고 살아야겠느냐고요.”

 

▲ 주택 2층에 마련한 부부의 서재. 집터 앞으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보련산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나 다름없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선택한 집짓기

부부의 전원생활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토박이로 살아온 남편에게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가 내려진 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5도2촌의 반쪽 시골생활. 수술 이후 죽마고우를 따라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던 남편은 급격히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당시 자주 들린 충주시 앙성면 보련산 근처에서 전원주택을 구입해 주말마다 오가며 살았다.

 

아내는 마지못해 투병 중인 남편을 따라 나섰지만, 시골에서의 정착은 엄두 내지 못했다. 미대 디자인학과를 나와 패션계에 몸담았던 아내는 철저한 도시녀. 그런 그녀가 어느덧 전원생활에 매료되어 “지금은 시골에 정착해 살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로 변해버렸다.

 

“도시생활은 괜히 바쁘고 쫓기고 스트레스가 쌓이죠. 목요일 밤마다 이곳에 들어오면 숨구멍이 열리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되죠.”

부부가 하선재에 머무는 시간은 목요일 늦은 밤부터 일요일까지. 아직 사업체를 운영 중인 남편은 점차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나가면서 결국에는 이 집에서 1년 365일 정주하는 것이 목표다.

 

▲ 경사진 산자락에 자리잡은 하선재. 국망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갖는다.


이제는 온전하게 쉬고 싶다

부부가 먼저 살던 주말주택을 매각하고 새로운 전원주택, 지금의 하선재를 지어 이사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온전하게 쉬고 싶어서’다. 먼저는 완성된 집을 사서 살았던 터라 이래저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이웃주민들과 어울리는데도 피로를 느꼈다. 고요한 휴식을 원했던 부부와 달리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와 모임이 열리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부부를 방해했을 터.

 

남편이 찾아낸 집터는 나무가 꽉 들어차 지형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렇지만 산자락에 쏙 안겨 있는 대지에는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고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산자락의 경관이 일품이었다. 대지의 경계선 너머는 국유림이라 더 이상 개발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이 땅이다 싶었던 남편은 단숨에 계약금을 건넸다.

 

“토지주가 직접 펜션을 하려고 이 일대에 3만평을 사두었다가 전원주택지로 분양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 땅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일부러 자리를 잡았어요. 토지주 조차 하필 이 땅을 선택하느냐고 의아해했어요. 토목공사비도 제일 많이 들거라면서요. 저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죠. 바로 집터 뒤가 한적한 국망산이어서 산행하기 좋고요. 앞으로는 보련산 자락이 펼쳐지는데 눈이 다 시원해지더군요.”

 


▲ 집의 뒷모습. 온통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집터를 볼 수 있다. 단층 건물에 게스트룸이 자리한다.   

 

동고동락할 집터를 찾았으니 이젠 설계자를 찾아야 할 순서. 터를 뒤덮고 있는 키 큰 낙엽송을 그대로 살리면서 산 속에 파묻힌 듯 고요한 집을 그려줄 설계자를 선택했다.

 

“노명수 건축가가 설계하고, 짓고, 직접 살고 있는 전원주택을 보고는 마음에 쏙 들어 이 터를 보여 주었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멋진 집을 지을 수 있겠다고 흔쾌히 받아주더군요.”

 

애초 의도와 달리, 안타깝게도 집터의 나무들은 잘려 나갔다. 태풍이 오면 쉽게 쓰러져 집을 덮치는 수종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못내 아쉬웠던 남편은 주말마다 직접 전동 톱으로 벌목한 나무들을 마당 군데군데 쌓아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 놓은 벽난로는 집안 공기를 훈훈하게 덥혀주는 일등 공신으로, 미리 마련해둔 장작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 거실의 북쪽 면에도 창을 낸 것이 보인다. 겨울에 춥다는 건축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터의 풍경을 차경하고 싶은 건축주가 결단을 내렸다. 다행히 성능 좋은 벽난로가 집안 전체를 훈훈하게 덥혀주어 외풍이 덜하다고.

 

 

남은 인생, 이 집에서 하고 싶었던 일 하겠다

동갑내기 부부. 그들이 이 집을 지은 진짜 이유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듯싶다.

남편은 대학 연애 시절 내내 아내에게 손편지를 써 주었을 정도로 남다른 필력을 자랑한다. 그의 형과 누나들이 줄줄이 현역 시인이자 소설가인 것을 보면 놀라울 일도 아니다. 새 집을 짓고 나서 주말마다 머물며 쓴 수필이 벌써 예닐곱 작품이 되었다.

 

아내는 미대 출신의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두 아이의 엄마로, 숨가쁜 젊은 날을 보내왔다. 이제는 일과 자녀로부터 벗어나 그림 그리며 기도하며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 아내는 꽃을 가꾸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먼저 살던 주말주택도 그랬듯이, 이 집도 머지않아 꽃 천지가 될 것이다.


이처럼 부부가 작성한 인생 후반부의 시나리오에 따라 집은 완성되어 갔다. 아침엔 산책하고 오후엔 책을 읽고 밤에는 글을 쓰는 남편과,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꽃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는 아내의 일상이 설계도 안에 차곡차곡 담겼다.

 

▲ 실내 바닥보다 두 계단 아래 조성한 거실. 소파와 흔들의자, 러그가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이다. 거실은 물론 식탁자리에도 넓은 창을 내어 바깥풍경을 집안으로 고스란히 들여오고 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만을 두고 부부의 공간은 2층에 분리해 두었다. 거실을 두 계단 깊이 정도 움푹 파내고 푹신한 소파와 벽난로, 러그로 꾸며놓은 것도 고요한 일상을 보내기 위한 장치다. 현관을 중심으로 채나눔을 해서 게스트룸과 안채의 동선도 나누었다.

 

 

▲ 2층의 부부 침실. 벽과 천장을 나무로 감싸 피톤치드 가득한 잠자리가 되었다.


▲ 부부침실 안쪽에 히노끼탕과 사우나실을 마련했다.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남편을 위한 공간이다. 뒷산을 전망할 수 있게 커다란 창을 내 두었다.

 

1층의 공용욕실을 게스트룸에 붙여 이 집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집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터넷과 TV선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하선재에서 만큼은 세상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지다.

 

 현관을 중심으로 안채와 동선을 분리해 놓은 게스트룸의 모습이다. 햇살 잘드는 침실 입구에 욕실이 있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선재에서 첫 겨울을 보내고 있는 부부는 새 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3년의 주말주택 생활을 통해 남편이 사는 길이 곧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에 있음을 깨달았다. 봄이 되면 지천에 널려 있을 산나물과 약초, 버섯을 구분하는 법도 배워야 할 테다. 아로니아 재배도 계획 중이고 효소를 담는 일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저기 고로쇠 나무랑 그 옆에 벤치 보이죠. 이 집 지으면서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저 나무에 엄마 아빠 수목장해주고, 삶이 지치고 부모가 그리울 때마다 저 벤치에 앉아서 엄마 아빠 생각하며 쉬라고요.”

 

유언장을 써내려 갈 때의 심정처럼 결연한 마음으로 지었다는 하선재. 부부가 사랑하는 딸들에게 훗날 남기고 싶었던 ‘자연 속 쉼터’는 지금 우리에게도 간절한 공간이지 않을까.

 

 


▲ 하선재는 자연석으로 마감한 1층과 나무로 마감한 2층이 어우러져 산장주택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노명수 ㈜DRDS+K 건축사사무소 대표

하선재를 설계한 노명수 소장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건축사사무소 이일건축을 오픈, 현재 미국 DRD studio 한국파트너로 ㈜DRDS+K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고려대학교 디자인 스튜디오에 출강을 했으며, 상업건축물과 다양한 규모의 주거건축물을 작업해왔다. 최근에는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 및 공인 패시브하우스 디자이너 교육을 수료하는 등 주택에 전통건축과 저에너지 친환경건축을 접목하는 작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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