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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보는 유쾌한 시선]
김숙현의 시티 스캔들

커다란 잠자리 안경을 얼굴에 걸치는 그의 동작이 꽤나 자연스럽다. ‘달달한 로맨스(2014)’라는 그림에서도 안경 쓴 그가 등장한다. 한옥 지붕에 올라앉아 기타를 치며 세레나데를 부르는 구애작전 중. 유쾌한 감성으로 낭만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도시 여행자, 김숙현 작가가 바로 그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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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에서 북촌까지, “난 유쾌한 도시 여행자”

“높은 지대에 위치한 3층집 옥탑방에서 청춘을 거의 보내다시피 했어요.”김숙현(40) 작가의 그림마다 옥탑방과 옥탑방 주인으로 추측되는 남자가 등장하는 이유였다. 낡은 주택들이 얼키설키 몰려 있는 서울의 어느 골목길 옥탑방에서 방독면을 쓴 남자가 낚싯대를 던진다. 얼굴을 가린 방독면은 사회와 도시로부터 고립된 가난한 청년예술가, 바로 작가 자신을 지키려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 나를 비추다 100×65.1cm oil on canvas 2007

 

나를 비추다(2007)에 등장한 남자는 방독면을 쓰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작가 자신으로, 오염된 도시에 대항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런 작가에게 옥탑방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당시에는 집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그나마 옥상에 나오면 동네도 내려다보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거죠.”

 

▲ 달달한 로맨스 72.7×90.9cm oil on canvas 2014

 

▲ 옥탑방 스캔들 72.7×100cm oil on canvas 2009

 

옥탑방 청년은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휘영청 떠오른 밝은 달을 낚으며 희망을 갈구하기도 하고(달빛 사냥을 하다 2008), 때때로 골목길을 지나는 어여쁜 여인에게 마음을 뺏겨 작가 자신을 물고기처럼 낚아채주는 여인을 그려내는, ‘귀여운’ 대리만족행위도 불사했다(옥탑방 스캔들 2009).

 

옥탑방 청년은 연인이 생기면서부터 지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여자 친구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는 구로동 드라이브(2009)를 시작으로, 프로포즈(2011), 북촌 스캔들(2014), 달달한 로맨스(2014)에 이르는 러브스토리를 엮어간다. 현실에서의 그는 지난해 결혼에 골인했다.

 

▲ 구로동 드라이브 193.9×130.3cm oil on canvas 2009

 

 ▲ 여행 130.3×80.3cm oil on canvas 2013

 

“답답하게 느껴졌던 도시지만 유쾌하게 살자고 마음먹으니, 그림도 달라지더군요. 그림이 꼭 진지하거나 묵직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도시민의 일상을 유쾌한 모드로 반전시키는 해학을 찾아보는 것도 감상포인트. 연인과 함께 커플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여행 2013), 아내와 함께 요트에 올라 옥탑방이 즐비한 동네를 떠다니는 특별한 휴가(2012)를 보내기도 한다. 지루하고 변화없는 삶의 공간이 김숙현의 작업을 통해 유쾌한 낭만공간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 북촌 스캔들 72.7×90.9cm oil on canvas 2014

 


유화를 파스텔처럼, 새로운 표현기법 돋보여

김숙현이 표현하는 도시의 해학이 남달라 보이는 것은 그만의 채색기법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언뜻 보면 파스텔화를 보는 것처럼 부드럽게 뭉개진 음영들로 화폭이 채워진다.

“표면이 매끈해 보이도록 한 번의 채색으로 끝을 냅니다. 여러 번 겹쳐 칠하게 되면 그림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지금 같은 가벼움과 상쾌함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죠.”

 

▲ 휴가 72.7×90.9cm oil on canvas 2012

 

▲ 프로포즈 33.4×24.2cm oil on canvas 2011

 

자신만의 채색기법을 찾기까지 번뇌가 적지 않았을 터. 2년에 걸쳐 시도와 실패, 재시도를 반복하며 구축한 표현기법이다. 하나 더, 세필로 일일이 그어낸 섬세한 선들은 어느덧 김숙현 작가의 그림을 인식하는 기호가 되어 있다.

“이 선이 먼지냐? 공해냐? 물어보는 분이 있는데, 그런 의도는 아니었고요. 건물과 집, 이웃이 단절된 도시의 맥락을 표현하고자 시작했던 거예요.”

 

▲ 그림 속 옥탑방에는 김숙현 작가의 자화상 같은

‘방독면 남자’가 등장한다. 방독면은 슈퍼맨 같은 영웅들의 트레이드마크.

젊지만 가난했던 청년작가에게 그 방독면은 면역력을 주기에 충분했으리라.

 

갈수록 밝고 가벼워지는 그의 작품을 두고 주변에서 건네는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곧 작품이고, 작품이 곧 삶이기에 있는 그대로가 좋다.

“저는 밝은 그림이 좋아요. 또 그림처럼 밝고 유쾌하게 살고 싶고요. 새해부터는 40년간 살았던 도시를 떠나서 전원생활을 준비할 계획인데요. 전원에서 느끼는 삶의 또 다른 맛과 풍경을 유쾌하게 그려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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