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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교수의 도시건축이야기 ]
제주도 과거·현재·미래

수려한 자연 환경과 슬픈 역사를 동시에 간직한 제주도. 표고 200m에서 600m에 이르는 중산간지역은 상당수 원시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다. 제주도 중산간에 산상의 마을과 도시를 만듦으로써 제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글·사진 김석철(국가건축정책위원장·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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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1600만명의 세상 사람들이 베네치아를 방문한다. 한국은 어떠한가. 2013년 기준으로 한국 전체에 방문한 세계인의 수가 1200만명이다. 나라 전체가 베네치아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경제의 80%이상이 무역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갈수록 무역량이 커지려면 그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관심과 존경을 받는 나라여야 한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라는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 베네치아와 제주도의 투어리즘 현황 비교표

 

1 제주 올레길의 모습 2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제주도

 

지난 몇백년간 국제무대에 노력을 기울인 일본은 관광산업에 성공하였다. 일본은 해외 무역량을 키워나가고 세계화하기 위해서 교토를 가꾸고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우리도 해외에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굉장한 나라라는 것을 세계인들이 알게 하여야 한다.

 

▲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의 전경

 


한반도와 판이하게 다른 자연환경

예술의전당을 설계할 때, 영국의 건설엔지니어들과 건축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테크니션들이 ‘어떻게 너희가 오페라하우스를 설계하느냐, 당신은 그냥 건축가로 이름만 내면 우리가 다 해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서울에 왔을 때 국립박물관에 데려갔다. 영국에 문명이라는 것이 없을 당시, 우리가 만든 왕관을 본 그들은 그 이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세계인을 상대로 우리를 설득력 있게, 혹은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프라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제주도가 있다.

 

1 현재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중인 제주의 해녀문화 2 제주 용머리 해안

 

어떤 장소를 안다는 것은 그 곳의 자연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제주도에 대해 말할 때 그곳의 자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주도를 처음 보면 놀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한반도와 판이하게 다른 자연환경에 기인한다. 유네스코에 자연 일부가 등재된 이유도 독특한 지질환경과 빼어난 경관적 가치 때문이듯 제주의 자연환경은 정말 특별하다.

 

제주도는 약 200만 년 전의 화산활동에 의해 해안지대, 한라산, 기생화산인 오름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화산 활동이 완전히 멈춘 현재 풍화와 침식작용에 의해 자리 잡은 제주의 지질대는 태생적으로 한반도와 전혀 다르다. 중앙의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의 중산간(中山間)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해안에까지 이르며, 동서로는 약 70km, 남북으로는 40km의 크기를 지녔다. 물은 해안을 따라 얻을 수 있으며, 한라산을 중심으로는 아열대, 온대, 한대식물 등 2000여종의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는 단 하나의 화산으로 이루어진 풍요로운 자연인 것이다.

 

▲ 제주도 성장잠재력 분석 다이어그램

 

하지만 제주도에 지난 달 글에서 이야기 한 도시인 베네치아와 같은 강력한 인간공동체가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제주도에는 인간들의 삶의 흔적만이 근근이 보이고 있을 뿐이다. 제주도라고 했을 때 수려한 자연환경이 우선하지, 해녀를 제외하고는 당장 떠오르는 인간문화는 드물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핍박의 역사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육지도 바다도 아닌 어느 깊숙한 곳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모습과는 달리, 제주도는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의 한 중간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형상이다.

 


▲ 제주도와 한반도 남해안 사이의 해상네트워크 개념도

 


인간공동체의 흔적은 아직 미미

제주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때 삼별초가 탐라까지 거점을 옮겨 항쟁을 계속했으나 결국 원나라의 손에 들어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제주는 원나라 황제의 직속령으로서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1294년까지 제주를 직접 통치할 만큼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었다. 고려 충렬왕 2년(1276)에 다루가치가 몽고말 160필을 가져와 섬의 동쪽 평원지대에 방목한 것을 시작으로 제주에 목장이 설치된다.

 

일본 침략을 위한 말(馬)이라는 군수물자의 배치를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주의 자연을 높이 평가한 것에 연유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결국 고려 공민왕은 최영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제주도를 다시 고려로 귀속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100여년간 이어진 원의 통치는 막을 내린다.

 

일제 강점기에는 또 다른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제주도는 대(對)중국 전략기지로서 상하이와 난징을 폭격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전락한다. 그 흔적이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의 콘크리트 비행기 격납고 혹은 해안가 곳곳의 진지동굴의 형태로 상당수 남아 있다.



1 제주도 송악산 일본군 진지동굴의 모습 2 제주 모슬포에 위치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의 모습

 

이렇듯 제주도는 이 섬을 둘러싼 국가들의 열망을 고스란히 받아내어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주’하면 수려한 자연환경과 슬픈 역사가 우선 떠오른다. 제주에서 도시의 역사나, 베네치아에서 본 것과 같은 강력한 인간공동체의 흔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각종 수난의 시대에 이리저리 휩쓸려 온 이주민의 흔적들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과거의 제주에 강력한 인간공동체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 제주도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일종의 독립국이었다. 황룡사 9층 탑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9층탑의 탑신을 구성하고 있는 한층 한층의 구성양식은 신라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호국 불교적 기원의 의미였다. 각 층의 탑부마다 해당 아홉개의 나라를 각각 새겼다. 당시 신라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었으며 일본은 1층에 새겨졌다. 4층 부에 제주도의 옛 명칭인 ‘탁라(羅羅)’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와의 교류 정도와 그 위상이 상당했으리라 짐작된다.

 

제주인들은 땅을 덮은 숱한 돌덩이를 솎아 밭을 개간하고 포구를 만들어 방호소를 쌓는 긴 과정을 통해 제주를 개척해 왔다. 바람을 이기기 위해 초가의 나직한 지붕을 띠로 얽어 매었다. 물을 얻으려 해안에 몰려 살았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주인들이 삶을 꾸리고자 노력한 모습이 생활 터전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1 제주 중산간 개발계획인 산상의 수상도시 계획안  2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 분석 다이어그램 3 제주도 중산간 지역 개발 계획안

 

그럼에도 제주가 이 이상으로 인간에 의해 크게 발전되지 않았던 점은 특이하다. 아름다운 환경과 풍요로운 식생은 문화로 발전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검소하고, 소소한 삶의 흔적만이 남은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물론 자연을 그대로 품으려 하는 동양만의 독특한 자연관에 기인할 수도 있다.

 


중산간 도시 건설로 새로운 미래 열어야

현재 제주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다. 제주도와 후쿠오카는 제주도와 서울보다도 가깝다. 또한 제주도는 중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권역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바로 앞바다라 부를 만한 곳이다. 중국의 동부해안은 섬이 없으므로 바다가 아름다울 수 없는 곳이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는 황해와 동해, 동중국해의 경계에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러시아, 중국, 일본, 동남아를 연결하는 교통상의 요지이자 문화·정치·경제·군사상의 요충지에 있는 것이다.

 

▲ 동아시아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입지에 대한 분석

 

21세기의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고려해 볼 때, 제주도가 자연을 품고자 하는 소소한 마음만으로 지속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인들이 특별히 가고자 하는 곳으로 제주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과 같은 해안선 위주의 개발이어서는 한계가 있다. 해안지역의 관광단지들은 용수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인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안지대의 개발은 곧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다. 아울러 해안을 관광 자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다. 제주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한라힐링파크 설계 조감도

 

제주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한라산과 오름과 해안의 겹침에 있다. 특히 표고 200m 등고선에서부터 표고 600m 등고선 사이의 ‘중산간(中山間)’ 지역은 상당수의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다. 제주 중산간 지역을 산상(山上) 위에 위치한 수상(水上)의 도시로 전환하는 작업은, 제주도를 핍박받아 오던 조상들의 서글픈 땅에서 보석과 같은 섬으로 탈바꿈시키는 극적인 힐링(healing) 전략이다.

 

도시는 인간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 의지가 충만할 때 도시가 성장하고 번창하며 문화가 만들어진다. 도시의 탄생, 성장과 지속 가능성은 그곳에 사는 인간공동체의 강력한 꿈과 꾸준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제 강인한 공동체로서 공동의 꿈을 가져야 한다.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연을 더 특별하게 만들려는 우리의 의지가 있어야 할 때이다. 베네치아는 이제 늙었다. 21세기는 이제 제주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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