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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도시 베네치아]
자연물로 재탄생된 음양의 도시

베네치아는 롬바르디아 침입 이후 게르만족 대이동, 로마제국 멸망 등으로 사람들이 바다쪽으로 몰려와 살게된 이주민의 도시다. 이곳에는 잘 짜여진 건축물의 관계나 공공장소가 없다. 그럼에도 미로사이에서 공간이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질서와 문화가 있으며, 그 질서의 중심에는 인간공동체가 있다.

글·사진 김석철(국가건축정책위원장·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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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의 전경

 

도시를 설계한다는 것은 어느 날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그 이면에는 격물치지의 과정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도시를 격물치지한다는 것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도시를 조직하고, 이끌고, 가꾸면서 지속시킨 인간의 노력을 알아가는 것이다.

 

▲ 16세기 베네치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

 

나에게는 우연한 삶의 순간에 베네치아라는 도시를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여의도 설계·서울대학교 마스터플랜·경주 보문단지·예술의 전당까지 대규모 도시 설계에 매진한 시기 이후, 1998년에서 2000년까지 3년간 머물렀었고, 또 그 이후 10여 년 넘게 교류해오고 있는 베네치아는 도시에 대해 격물치지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곳이었다.

도시를 격물치지 한다는 것은 종이에 그려진 도시의 마스터플랜만을 보고 상상력과 경험치에 의해 도시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물상으로 존재하는 도시를 온전히 그 현장에서 느끼며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지난 15년간 체험하며 배우고 깨달았던 베네치아는 인류 도시의 교과서와 같은 곳이었다.

 

1 섬으로 이루어진 베네치아의 항공뷰 2, 3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베네치아의 건축군들. 19세기 말 그림과 현재의 모습 

 


100여개 인공의 땅 위에 세워진 도시

아드리아해 북부 연안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지리적으로 독특한 환경에서 시작된 도시이다. 베네치아인은 라구나에 살고 있다. 라구나는 얕은 수심이며, 육지에서 운반된 흙과 모래의 퇴적으로 길게 형성된 선형의 섬들로 감싸져 있다. 그러므로 라구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경계를 만들 뿐 아니라 해안선을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가게 해서 아늑한 공간을 제공한다.

라구나 내의 수심은 깊어 봤자 2m 내외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땅을 형성하여 건축물을 올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100여 개의 인공의 땅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물길이 관통하고 있다. 사람들은 교각을 이용해 이 물길을 가로질러 땅과 땅 사이를 걸어 다니거나, 아예 물길 위를 곤돌라로 통과하기도 한다.

 

▲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산마르코광장의 모습. 18세기초 그림과 현재의 모습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용수도 마찬가지이다. 광장의 한가운데를 파고 그곳에 물이 새지 않도록 점토를 바른다. 그 속을 다시 모래로 채운다. 비는 모래를 통해 여과되고 중앙에 모이게 된다. 이렇게 고인 물은 둥근 통 모양으로 된 우물로 스며들어가 사용된다. 베네치아인들은 지하수마저 하늘의 물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창조해내었다.

 

▲ 비잔틴제국의 영향을 받아 설계된 산마르코 성당의 모습.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다.

 

동양은 자연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여 품으려 했다. 반면에 서양은 자연을 분석함으로써 배움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특히 서양인들의 경우 그들이 인간중심의 시대를 맞이하면서부터는 자연을 인간이 넘어서서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질시켰다.

 

동양과 서양의 ‘자연’에 대한 동상이몽은 건축적으로 크게는 도시 형태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초래하였다. 동양의 건축·도시는 산의 방향, 용수와의 관계, 개방적 시선, 공기의 흐름과의 관계 등 조화로움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반면, 서양의 경우는 기하학적 통일성을 이루는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 2008년에 완공된 베네치아의 Ponte della Costituzione 다리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作)

 

이렇게 보았을 때, 베네치아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조금 특이하다. 물론 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당당히 맞서 정복하려는 듯 보였지만, 도합 100여 개에 이르는 그들의 땅에는 어떠한 통일성도 없을 뿐더러 물길 자체를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인공물인 땅을 자연스럽게 자연물로 귀속시키고 있다. 그들은 서양인들이 그래왔듯 자연을 완전히 무찌르지도, 동양 사상처럼 자연을 그대로 관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인공적인 삶 자체가 자연’이라는 아이러니한 등식으로 자연을 만들어 내었다.

 

▲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도시풍경. 라구나 주변의 상가 모습들이 보인다.

 


미로속에 얽혀 질서를 만들어낸 인간공동체

베네치아인들이 라구나에 살게 된 것은 569년 롬바르디아 지방이 침입당하면서 사람들이 이주한 것에 기인한다. 이후에도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제국의 붕괴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바다 쪽으로 몰려와 땅을 형성하여 살게 되었고, 육지와 떨어져 지금의 리알토 근처에까지 몰려와 살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베네치아는 이주민의 도시인 것이다.

 

▲ 베네치아의 전형적인 광장형태인 캄포(campo)의 모습

 

베네치아에는 잘 짜여진 건축물 사이의 관계나 질서 있게 세워진 공공장소가 없다. 조닝(zoning)도 없다. 계획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거, 생산, 소비, 여가활동 등의 인간생활이 얽혀 있을 뿐이다. 미로와 같은 형태 속에서 공간이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질서가 있고 문화가 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질서의 중심에는 바로 인간공동체가 있다.

도시 형성의 초기 단계부터 지리적으로 분리된 작은 섬들에서 자립적 커뮤니티가 성립되었다. 정확히 말해 다양한 인간공동체이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구공동체가 있다. 베네치아는 72개의 교구공동체가 폐쇄적 자립성을 유지하며 각각의 공간구조를 지니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도시이다. 베네치아는 다핵의 도시이기에 복잡한 미로로 보였던 것이다.

 

▲ 베네치아의 수상가옥들과 곤돌라의 모습

 

▲ 베네치아의 주요운송수단인 해상버스 바포레토(Vaporetto)

 

초창기부터 베네치아는 연안무역을 통해 오리엔트와 교류하면서 그곳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베네치아는 동방의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의 서쪽 끝을 이루는 변방의 식민지로 시작하여 비잔틴 제국과 교류를 지속했고, 이슬람 제국과도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들 인간공동체 스스로가 자연물 자체를 만들던 그 열정은 그곳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도 적용되어 화려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다리구조물 위에 또다른 건축군이 있는 형태로 유명하다.

 


음양이 아름답게 그려진 ‘천연도시’

공동체들의 거주 이전에도 라구나 내부의 섬들에는 어부와 농부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에투르리아, 로마, 비잔틴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개개인으로만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 뿐 공동체를 이루어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지는 못했다. 이것만 보아도 공동체의 의지가 도시의 형성,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 필자가 설계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후면모습 2 필자가 설계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모형모습 3 필자가 설계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모형모습

 

베네치아인들은 결코 자연을 무지막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에 맞섬과 동시에 그것을 그대로 품으며 앞으로 당당히 나아갔다. 그 현상 그대로가 지금의 베네치아인 것이다. 인간의 논리로만 무자비하게 계획된 도시였다면 지금의 베네치아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베네치아는 라구나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베네치아인들의 강력한 의지력이 인공적 자연물로 재탄생된, 자연·건축·인간공동체라는 도시의 삼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천연도시’라 부르고 싶다. 자연과 도시가 음양의 관계라고 했을 때, 베니스만큼 음양이 아름답게 그려진 곳은 없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간 역사의 산물이며 동시에 집단적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바로 베네치아가 그러한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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