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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화가 홍화순]
“전통과 현대 잇는 가교 역할 하고파”
?아름다운 노년이 여기 있다. 홍화순 화백(75). 촉망받는 미술학도였던 그녀는 40세가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단박에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았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온 그녀의 열정이 여전히 뜨겁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촬영협조 반장은선갤러리 02-730-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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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훌쩍 넘어 허리가 굽어가는 노년의 화백. 인사동 경인미술관 뒤편 장은선갤러리 앞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먼발치를 내다보고 있는 홍화순 화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운 옥빛 양장을 한 벌로 차려입은 홍 화백의 낯빛은 발그레하니 설레 보인다. 야윈 외모와 달리 열정적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빠른 몸놀림은 그녀의 나이를 잊게 하고도 남는다.

 

1939년생 홍화순 화백은 홍익대학교 동양학과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의정부 시골동네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미술공부를 마치기까지 경제적 어려움으로 애를 먹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술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 古片 40.5×31.5cm 장지에 석채, 수간채색 2011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 키우며 시부모를 모시고 미술학원까지 운영하면서 노년에는 남편의 투병생활을 돕는 등 생활과 그림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인생사 또한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고희를 넘겨 산수를 바라보는 나이에 버젓이 초대전을 열고 있다. 긴 인생에서 보면 그녀의 작가활동은 군데군데 생활로 인한 공백이 있긴 하지만, 한 번도 그림을 놓은 순간이 없고, 나올 때마다 주목받지 못한 적이 없다.

 

▲ 古片 85×115cm 장지에 석채, 수간채색

 


40세에 첫 개인전,

전통의 현대적 해석 독자성 인정받아

1980년 40대가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연 홍 화백은 그 후 수차례의 개인전에서 독자적인 그림을 내놓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가 처음 선보인 테마는 우리의 전통탈 ‘가면’이었다. 가면의 미술사적 가치를 평면에 재해석해 낸 작품들은 현대에 되살아난 민족적인 흥취라는 평을 받았다.

 

▲ 환희 130×96.5cm 장지에 석채, 수간채색 2012

 

그 후로 고궁의 기둥과 기와지붕, 단청이 그녀의 화폭을 넘실댔다. 직선의 형태를 구부리고 꺾어서 자유로운 구도로 표현한 그림들이다. 당시 ‘동양화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지루한 공식을 깨고 현대회화와 어깨를 견줄만한 모던미로 갈채를 받았다. 그녀의 그림을 높이 평가한 운보 김기창 선생은 직접 홍 화백의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예술가의 그림에는 자기 색이 나야 합니다. 남과 비슷하게 그리면 의미가 없어요. 늘 나만의 색, 나만의 그림을 연구합니다. 이것이 내 평생의 숙제였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숙제가 될 것이에요.”

2009년 투병 중인 남편이 별세하고 다시 작가활동에 나선 홍 화백에게 최근 전시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전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홍 화백의 그림은 큰 관심사다. 한국의 전통을 느끼기에 손색없는 현대적인 동양화다.

 

지난 9월4일까지 장은선갤러리에서 진행된 ‘마음, 환상, 창작의 화면’전에는 한층 무르익은 작품들이 보였다. 그녀의 연륜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화면들은 전통과 현대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림을 그릴 때 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그림 인생에는 세 분의 은인이 있어요. 그분들 없이 지금의 저는 없다고 봐야죠.”

제일 먼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동덕여대 미술부의 최덕규 선생이다. 미술학도 지망생인 소녀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며 칭찬을 아까지 않던 스승으로, 훗날 경희대학교 학장을 지냈다.

 

 ▲ 古片 39×50cm 장지에 석채, 수간채색 2011

 

두 번째 은인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화가 천경자 선생이다. 홍화백은 천 선생의 애제자였고, 천 선생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학을 하려는 애제자에게 월급봉투를 털어 학비를 내줄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

마지막 은인은 전시회를 열어준 운보 김기창 선생이다. 우리나라 근대회화의 산맥과 같은 주요 인물들이 그녀를 응원해 준 것이다.

“가족들과 살아야 하다 보니까 그동안 전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정들이 많았지요. 이젠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이 많아집니다.”

 

▲ 古片 41.5×58cm 장지에 석채, 수간채색 2012

 

75세 노년의 열정이 뜨겁다. 세월의 산맥을 넘고 넘어 단련된 연륜의 붓질이 세상 이들에게 얼마나 큰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는지, 홍화순 화백이 반드시 보여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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