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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녹차밭에 착륙한 공공미술]
between WAVES

제주 서광다원에 공공미술이 착륙했다. 산간지형을 따라 광대하게 펼쳐지는 녹차 밭,그 사이 사이로 열다섯 설치작품이 스며들었다. APMAP(에이피맵)의 두 번째 공공미술 프로젝트 ‘Between Waves’ 속으로.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차밭. 그 언저리에 우뚝 선 하얀 구조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빗살처럼 벽을 두른 철 기둥 사이로 걸어들어가자 바람이 드나들며 옷자락을 나부낀다. 녹색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 이쯤 되지 않을까. 지상 6m 높이의 나선형 구조물을 돌아 오르면서 제주의 풍광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건축가 김찬중의 설치작 ‘에어컵(AIR CUP)’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선과 바람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제주의 바람과 싸우지 않고 그저 통과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경관을 담고 있는 비어져 있는 컵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15색의 제주를 만나다

 지난 7월 4일 방문한 제주 서광다원이 활기에 차 있다. 에이피맵(APMAP)의 두 번째 기획전시가 열리는 날로, 열일곱 참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찬중의 ‘에어컵’을 필두로 한 조각, 설치, 미디어 총 15점이 녹차밭 곳곳과 오설록 티뮤지엄, 오설록 티스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피맵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전국을 순회하는 실험적 전시를 통해 성장 가능성이 주목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한다. 지난해 공장(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 오산)을 시작으로 올해 녹차나무 숲(서광다원/오설록, 제주), 2015년 정원(아모레퍼시픽 R&D센터, 용인), 2016년 공사현장(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서울) 등 여러 사업장을 순회하며 릴레이 전시를 펼친다.

 

 이은선의 음의 언덕 

고무밴드, 스테인리스 스틸구조물 가변크기 2014

 

 오승열의 오고 가고 

스테인리스 스틸, 에폭시

 

▲ 정소영의 징검다리

철, 분체도장 130×150×120cm(9개)

 

두 번째 전시인 ‘BETWEEN WAVES’는 ‘사이’를 뜻하는 ‘between’과 ‘파도, 물결’을 의미하는 ‘waves’를 조합한 주제어다. 제주도 속의 녹차나무 숲, 그 안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인파가 만드는 다층적 이미지를 배경으로 자연, 사람, 예술의 교감을 꾀하는 설치작업을 펼친다는 취지다. 전시 참여작가들은 “제주서광다원의 지리적 위치와 자연적 배경에 큰 영감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BETWEEN WAVES가 열리는 서광다원은 제주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다. 제주도 서남쪽 중산간지대 66만1160㎡의 대지에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녹차밭인 이곳은 1983년까지만 해도 버려진 땅이었다. 이 버려진 황무지에 (주)아모레퍼시픽(옛 태평양)이 2년간의 개간을 거쳐 1985년에 100만본의 녹차를 심으면서 조성된 곳이 서광다원이다. 돌밭으로 이루어진 땅을 개간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땅에서 골라낸 돌로 병풍처럼 담을 쌓아 제주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어리고 여린 녹차나무를 보호했다고도 한다.

 

 김태균의 Sigh6 : 각성의 시간 

스테인리스 스틸 140×450×240cm

 

▲ 이근세의 무위지향마 

FRP, 스테인리스 스틸

 


▲ 김병호의 15개의 풍경

황동에 투명우레탄과 불소코팅 200×25×25cm(15개)

 

이렇게 만들어진 대규모의 차밭이 오설록 녹차박물관과 풍력발전 바람개비 등과 어우러져 지금은 이국적인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녹차밭 사이로 난 한적한 길은 연인이나 가족들의 산책로로 유명세를 얻은 지 오래다. 특히 이번 전시는 녹차 잎의 성장이 가장 활발한 여름을 시간적 배경으로 잡아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참여하는 젊은 작가 15팀은 건축, 조각, 설치, 디자인,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서광다원의 자연과 생태를 고려해 구상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주의 현무암에 빗물을 여과시켜 식음이 가능한 달콤한 물로 바꾼 백정기의 ‘단비제조기’는 재치가 엿보인다. 초록의 차나무 위로 직접 올라갈 수 있도록 설치한 김소영의 ‘징검다리’는 차밭을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만든다.

 

▲ SoA의 25계단

철 파이프, 슈퍼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제주화산쇄석, 에폭시 수지 150×330×180cm(25개) 2014

 

서광다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기서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작업을 거부하던 이근세 작가는 큐레이터의 설득으로 결국 유유자적하는 두 마리의 말, ‘무위지향마’를 만들어 산책로에 풀어 두었다. 서광다원 풍경의 하나인 녹차나무 가지의 모습을 거대하게 조형화한 오승열의 ‘오고가고’, 제주 지형을 반영한 스테인리스 조각을 조합해 잎맥과 잎사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김태균의 ‘각성의 시간’, 수많은 녹차나무들의 굴곡을 측량해 긴 조형물로 구현한 김병호의 ‘15개의 풍경’ 등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상적인 관광객의 산책로로 여겨진 녹차 밭에 펼쳐놓은 젊은 작가들의 다채로운 설치작업은 제주의 속살을 다시 들춰보고 호흡하게 만드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작동 중이다. 전시는 8월31일까지 계속된다.

 

 

건축가 김찬중(45·더시스템랩 소장)을 제주에서 다시 만났다. 2012년 1월 과천 소재 서울대공원 광장에 등장한 ‘큐브릭’이 첫 만남의 계기였다. 당시 김 소장은 전시장 바깥에서 벌이는 공공미술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폴리 2012’에 초대된 최초의 작가였다. 4m×4m×4m 큐브릭은 마치 엇박자로 쌓아올린 레고건축물을 연상시키며 화제를 일으켰다.

 

김찬중의 오설록

철판, 철 파이프, 우레탄 도장 597(높이)×540(상부지름)×434(하부지름)cm 2014

 

그의 작품은 그것이 건축물이든, 설치물이든 늘 센세이션을 몰고 다닌다. 2006년 제10회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는 현대인의 마지막 주거형태로 제안한 타워형 납골당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프로젝트에 따라 집기와 가구, 전선까지도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리노베이션한 더시스템랩의 스튜디오를 비롯해, 이동할 때마다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자유로운 곡면을 연출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등도 대표적이다.

 

서광다원에 등장한 에어컵(AIR CUP)에서도 그의 재미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오설록의 오래된 간판이 서 있던 곳인데, 이곳을 재밌게 표현해 보자는 시도에서 전망대를 겸한 간판을 구상했어요. 굽이치는 녹차 밭의 자연 지세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니 나선형의 컵 모양이 되더군요. 철 파이프로 외벽을 만들어 통풍도 되고 풍경도 투과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건축가의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에어컵은 서광다원의 바람과 자연을 담는 비어진 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축사무소 에스오에이(SOA, society of architecture)의 이치훈·강예린 소장은 2010년 함께 에스오에이를 서울에서 설립, 환경적 조건에서의 건축과 미술의 공공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관련 작업을 펼쳐왔다.

 

대표설계작으로는 우포자연도서관, 베트남 푸예성 호아빈 초등학교 도서관, 전남 곡성주택, 남가좌동 주택 등이 있으며,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채로운 설치작업에 참여해왔다. 건축·무용이 어우러진 장소특정 공연 ‘춤, 극장을 펼치다’, 실험영화와 실험건축이 만나는 <종합극장:인터스페이스 다이어로그(Interspace Dialogue)>전 등 협업 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전방위 만능재주꾼 에스오에이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25계단’은 녹차 밭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구실잣밤나무 아래 자리한다. 슈퍼미러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25개의 길이가 다른 박스들을 지그재그로 쌓아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표정이 흡사 4차원 거울 같다. 제각각 다른 각도로 자리 잡은 25개의 슈퍼미러가 주변 풍경을 쪼개어, 또 다른 제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치훈 소장

벤치이면서 계단, 쪼개진 경관들을 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죠. 계단 바닥에는 제주 화산석을 깔아서 마치 제주를 밟으며 올라가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돌을 에폭시수지로 경화했더니 화산석이 에폭시에 젖으면서 물속에 잠긴 듯한 효과까지 얻게 되었답니다.

 


강예린 소장

어디를 가든 한라산과 오름이 보이는 제주에서, 그것도 에너지가 풍부한 중산간지역의 아름다운 땅에서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축복이었어요. 굴곡진 부드러운 지면을 따라 구성된 녹차밭에 각진 형태의 구조물을 두어 상반된 이미지를 주고 싶었고, 이렇게 해서 이 장소를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인식의 균열을 일으켜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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