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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의 도시 - 사라지는 풍경]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혼신의 애도”

신림동 달동네에서 나고 자란 작가 정영주. 그녀에게 집은 따뜻함을 상징하는 기억의 저장소였다. 1990년대 말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가 본 것은그 저장소의 처참한 멸실이었다.

이후 그녀는 캔버스 위에 구긴 한지로 무수한 집을 짓고 무한하게 펼쳐지는 달동네 마을을 만들고 있다.

장시간에 걸친 고된 작업으로 완성하는 마을재생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혼신을 다한, 그녀만의 애도의식이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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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풍경 162.2×112cm 캔버스 위에 한지 콜라주, 아크릴 채색 2013

 

  

 


▲ 한지 콜라주와 페인팅을 결합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매일 10시간씩 작업해서 꼬박 3~4주가 걸린다.

 


유년시절이 오롯이 담긴 곳

나는 90학번(44). 신림동 달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저장된 장소가 그곳이다. 97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다시 그 달동네를 찾아가보니 정말 하나도 남아있는 게 없었다. 가장 따뜻하게 기억돼온 유년시절의 추억이 한순간에 공중에서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되뇌다 달동네 작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도시의 빌딩 사이에서 숨죽이고 있는 오래된 집들에서 모티브를 찾는다. 이를 재구성하고 확장해서 사라져버린 그들만의 세계를 새로이 만들고 있다.

 

▲ 사라지는 풍경 116.7X80.3cm 캔버스 위에 한지 콜라주,

아크릴 채색 2012

 


집은 따뜻함을 상징하는 기호

달동네 작업을 통해 집은 따뜻함, 정을 상징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학 입학 이후 줄곧 집을 떠나 혼자서 공부하고 작업하며 살아온 시간 동안 따라다녔던 외로움과 그리움의 실체가, 바로 그 따뜻한 집의 부재였다. 달동네 작업을 통해 갈수록 따뜻함이 없어지는 현대사회에 대한 애도, 아쉬움을 표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 속 마을들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게 바다처럼 아련하게 표현된다. 지금은 사라진 나의 집, 우리의 집이 그림 속 어딘가에 영원히 계속해서 남아 있기를 바라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서 희망을 찾는 마음으로 어두운 밤에 감싸인 마을을 주로 표현한다.

 

▲ 사라지는 풍경 53x73cm 캔버스 위에 한지 콜라주, 아크릴 채색 2012

 


한지 콜라주로 옛 풍경에 날개 달다

한지를 이용하는 작업 과정은 단순치가 않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고된 시간들이 반복된다. 그렇지만 스스로 찾아낸 나만의 기법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에 매진했다. 물감보다 종이가 더 사람친화적인데다 내추럴한 느낌이 아주 좋아서다. 한지의 발색이 따뜻한 점도 마음에 든다. 한지를 구겼다 펴서 붙인 다음 칼을 이용해 조각처럼 입체감을 준 후 충분히 말린 다음 채색에 들어간다. 채색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행한다. 그래야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다. 한지를 구겨서 쓰는 이유도 낡은 느낌을 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조각과 회화의 느낌을 하나의 캔버스 안에 모두 담아낸다.

 

▲ 사라지는 풍경 112x163cm, 캔버스 위에 한지 콜라주, 아크릴 채색, 2012

 


하루 10시간씩 꼬박 작업하는 이유

전업작가가 되어 오로지 그림만 그릴 수 있게 된 지는 불과 5년 남짓이다. 우연한 기회에 개인전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왔고 컬렉터들이 생겨났고 이곳저곳서 전시 제의가 들어왔다. 유학을 다녀오고 난 후 10년간 이곳저곳 대학으로 강의를 다니며 생활을 해결하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하루 10시간씩 틀어박혀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은 너무도 행복하다. 집 한 채 한 채를 한지로 조각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가 마치 사람이 살아가는 집을 만드는 느낌을 받는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다. 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의 추억과 공간을 더 깊이, 더 멀리, 더 영원하게,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 정영주 작가는 한지가 주는 질감과 발색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사라지는 옛 풍경의 감성을 진하게 표현하는 그녀만의 비법이 거기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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