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두어(buying) 재테크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고 사는 것이 행복한가, 꼭 필요한가를 물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뒤늦은 후회가 닥칠 수 있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두는 곳 아닙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중개업자 이윤호 씨는 집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집은 투자의 목적이라고 여기고, 6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임대 사업자로 등록을 한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1가구 6주택이다. 경제적 여력만 더 있다면, 6주택이 아니라, 10주택이라도 소유하고 싶어했다.
이윤호 씨가 임대 사업자로 등록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 적당한 임자가 나오면 곧바로 팔아버릴 심산이기 때문이다. 이윤호 씨는 세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금이 나오면 제대로 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족 1사람당 1, 2채씩 집을 가지고 있어서 1가구 6주택이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윤호 씨는 타고난 부동산 중개인이다. 한남동 재개발 5단지에 한 채씩 모두 6채의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보광동 노른자위에 꼬마 빌딩도 2채에, 근처 식당에 주차장 용도로 빌려준 꽤 넓은 대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들어오는 수입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윤호 씨는 부동산 사실 중개업은 부업이고, 주업은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씨는 한남 재개발 뉴타운 사업이 펼쳐지는 보광동에서만 30년 가까이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해왔다. 사무실은 세 번 자리를 바꿨지만, 항상 보광동 언저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사무실이 바뀌면 단골손님들을 놓칠 수 있기도 했지만, 이윤호 씨는 근본적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씨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감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호경기였던 80년대 중반에 취직시험을 치러 직장을 구하지 않고, 부동산 중개소를 열었다. 그리고 지난 30년 다른데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부동산 중개업에만 종사해왔다. 그리고 정말로 그의 예측대로,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을 발표했다.
그를 부동산의 세계로 이끈 것은 70년대 강남 열풍과 85년 8월에 시행된 제1회 부동산 중개사 시험이다. 강북에 사시던 부모님이 강남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가 횡재를 한 것을 계기로 부동산이라는 세계에 눈을 떴다.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발표된 부동산 중개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으로 뛰어들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버티며 6채 집 소유한들…
그런데 이런 이 씨에게 최근 변화가 찾아왔다. 제대로 된 집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팔기 위한 매물 가운데 한 채를 골라 메뚜기처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살아오다보니, 평생 자신과 가족을 위한 주거공간은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이 씨는 시집을 가는 큰 딸로부터 집에 대한 아쉬움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큰 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 후 시집갈 때까지, 한 번도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그래서 큰 딸은 결혼 조건은 명문대학 졸업장이나, 이름난 대기업 사원이 아니라, 번듯한 아파트 한 칸 마련할 수 있는 남자였다고 했다.
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이윤호 씨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가슴을 쳤다. 속 깊은 큰 딸은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회적으로 던졌던 것이다. 집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사두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현재를 사는 곳이라는 말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 씨는 큰 딸에게 1년만 늦게 시집을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수 남진이 부른 ‘님과 함께’의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딱 1년만 살다가 시집을 가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미 날까지 잡은 큰 딸과 사위가 이 씨의 뒤늦은 정서적 만족을 위해 결혼을 연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큰 딸 역시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터였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고 사는 것은 어리석다
이윤호 씨는 평생 남보다 많은 집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도 그렇지만, 한 번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드러낼만한 집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한남동 재개발 뉴타운 사업이 실행되면 조만간 큰돈이 될 집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집들을 구하느라, 그는 가족들과 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겨를이 없었다.
아내는 겨울에도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언덕 집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연탄불로 방의 불을 지켰고, 프로판 가스통을 배달받아 음식을 조리했다. 이 씨 덕에 가족들은, 이웃들이 이주를 시작한 골목길을 지키면서 한남동 재개발 뉴타운 현장을 겪고 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꼬불꼬불 골목길을 10분 이상을 걸어 올라와야 하는 보광동 생활을 지금도 군소리 없이 해내고 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집은 사두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물론 방 한 칸 없이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씨의 푸념이 사치로 들릴 수도 있다. 집이 6채에, 건물이 2채, 그리고 임대주차장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추억까지 가지려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세상은 공평해서, 뭘 한 가지 갖게 되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이 씨의 푸념은 의미 있게 들릴 수 있다. 집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고 사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씨는 집을 사는 사람들에게 현재를 팔라고 가르쳐 왔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맞는 것 같은 틀린 이야기였다. 이 씨가 했어야 할 이야기는 지금 당장 온 가족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저는 파주나 고양 같은 곳에 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습니다. 이건 제 뜻이 아니고, 아내와 자식들 소원입니다. 200평쯤 되는 넓은 땅을 구해서 정원에는 잔디도 심고 후원에는 푸성귀를 기르는 밭도 있는 그런 집이요. 행복해지려면 당장 사실 집을 사시고 추억이나 행복이 필요 없으시면 10년 뒤, 20년 뒤에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재개발 뉴타운 지역에 집을 사두십시오.”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지을 꿈에 부푼 부동산 중개사 이윤호 씨가 고객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그를 한남동 재개발에 관심을 갖고 찾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성민
KBS 아나운서. 사랑의 가족(KBS 1TV), 생방송 토요일, 일요일 아침입니다(KBS 1라디오), 경제를 배웁시다(KBS 한민족)를 진행 중이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일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석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노인문제를 포함해서, 미래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의 넥스트 삼성, 100세 시대 다시 청춘, 대통령의 설득법, 반기문 대망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매일 2시간씩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걷기를 좋아하고, 책읽기, 영화보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