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형님은 10살이나 많아서 형님이라기보다는 삼촌에 가까운 분이지만, 고등학교 선배님이라서 그냥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형님 아들이 또 고등학교 17년 후배라서, 경수 형님도 내게 형님이라고 부른다. 참 묘한 관계이고, 촌수인데, 이런 경우가 한국의 학연관계에서는 적지 않다.
대기업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던 경수 형님은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여주로 내려갔다. 연고는 없었지만, 진작 구한 땅에 자그마한 전원주택을 하나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수님과 둘이서 조용한 은퇴생활을 즐기시겠다고 퇴직하자마자 빚쟁이 피해 도망가는 것처럼 부랴부랴 여주로 내려갔다. 아들은 제대 후에 유학을 떠났고, 딸은 일찍 결혼을 해서, 단출하게 두 식구만 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경수 형님이 해외 신규 사업을 벌이는 중소기업의 고문으로 재취업을 했다. 여주에 틀어박혀 서울로는 귀도 쫑긋하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막상 도시 사람이 농촌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하는 일 없이 형수님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국내외 여행도 한, 두 번이었다. 만날 집을 비우고 여행을 쏘다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현역 시절 경험을 나눠달라”는 중소기업 대표의 말에 선뜻 출근을 결정했다.
막상 출근을 시작하고 보니, 복잡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주에서 서울까지 거리상으로는 70km에 불과하지만, 매일 출퇴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동차 왕복거리만 140km라서, 운전만 하루 4시간에, 기름은 사흘에 한 번씩 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견뎌내질 못했다.
그렇다고 소형 오피스텔을 구해서 혼자 서울 생활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월급보다 월세가 더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갑 앞두고 뒤늦게 부부가 따로 살 수도 없었다. 경수 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왕복 140km를 오가는 전원생활의 어려움
그래서 경수 형님은 처음 얼마간 형수님과 함께 여주 전원주택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전에 살던 정릉 근처에 부부가 쉴만한 방을 하나 얻을 생각을 했다. 월요일 오전에 서울로 출근해서 목요일까지 서울에서 보내고, 금요일 오후에 여주로 내려가서 사흘을 보내는 1가구 2주택 생활을 계획한 것이다.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전원생활을 하는, 남들 보기에 폼 나는 도농통합형 생활을 시작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막상 주중 생활을 할 만한 방을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달랑 방 한 칸짜리를 구하면 될 일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있어야겠고, 최소한 침대는 하나 가져다놔야 쉴 수도 있을 것 같고, 의자 두 개에 간이 테이블은 하나 있어야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켜져서, 아예 아파트 한 채를 다시 얻겠다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 집을 팔아서 저금해놓은 돈이 있었지만, 다시 집 두 채를 갖는 일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고민을 하던 경수 형님은 정릉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하는 내 고등학교 동창 녀석에게 조언을 구했다.
5층 건물 꼭대기 층에 만든 ‘놀이터’ 같은 집
내가 경수 형님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우연히 들른 친구의 부동산 사무실에서였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내게 경수 형님이 우리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나는 경수 형님이 왜 갑자기 적은 아파트 한 채를 구하려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는 경수 형님에게 그런 용도라면 굳이 아파트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하며, 차라리 사무실을 하나 구해서 월세를 내고 쓰는 편이 낫다고 했다.
결국 경수 형님은 돈이 적게 들어간다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친구는 경수 형님에게 우선 1년만 쓰는 조건으로 5층짜리 건물의 공실이 난 꼭대기 층을 소개해주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인데다, 3층과 4층이 모두 공실이 난 건물인터라, 건물주도 아무라도 들어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어서옵쇼” 하고 경수 형님을 받아들였다. 사무실 용도로 설계한 건물이라, 화장실 하나만 따로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실 평수 20평 남짓한 공간은 언뜻 보면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스튜디오 아파트 같았다. 칸막이도 없는 초등학교 교실 같은 뻥 뚫린 공간이었다. 다행히 방음 시설도 잘 되어 있었고, 친구가 건물주를 잘 설득해서 주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상하수도 시설까지 설치해 주었다. 그래서 경수 형님은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70만원짜리 정릉의 5층 건물의 펜트하우스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경수 형님은 다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펜트하우스 생활의 만족도가 의외로 컸다. 우선 여주의 전원주택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마련한 잠정적 거주지라서 그런지, 실내를 거창하고 번듯하게 꾸밀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일단 경수 형님 부부는 만족했다. 정말로 주중 생활을 위한 최적의 공간을 구한 것이므로, 남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주에는 오지 못했던 친구들을 손쉽게 부를 수가 있었다. 여주 전원주택이 멀다고 찾아가기 힘들다는 친구들이 밤낮으로 모여들었다. 낮에는 형수님 친구들, 밤에는 경수 형님 친구들로 북적였다. 사무실 건물이라서 찾기도 쉬웠다.
그렇게 해서 경수 형님 부부는 정릉 5층짜리 건물 꼭대기 층에 펜트하우스에 친구들 ‘놀이터’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서울에서 약속과 모임이 잦아졌고, 여주 생활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원주택은 매입가보다 싼 가격에 처분하게 되었다.
나이 들수록 사람 틈에 살아야 행복하다
경수 형님이 최근에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틈에 살아야 하고, 집 크기보다 먼저 체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수 형님은 짧게나마 전원주택 생활도 해보고, 하루 140km 왕복 출퇴근 생활도 해보고, 도농 1가구 2주택 생활도 경험하고 나서, 마침내 아파트도 아닌 사무실 건물에서 인생 후반기를 보낸다.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손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수 형님은 거품을 빼고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와 전원주택을 처분한 돈으로 괜찮은 상가도 하나 마련했다. 회사 고문 월급에, 상가 임대료까지 나오는 터라, 경수 형님 부부의 노후가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수 형님은 친구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 것이 부담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사찰 같던 예전 전원주택보다는 백번 낫다고 말한다.
이성민
KBS 아나운서. 사랑의 가족(KBS 1TV), 생방송 토요일, 일요일 아침입니다(KBS 1라디오), 경제를 배웁시다(KBS 한민족)를 진행 중이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일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석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노인문제를 포함해서, 미래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의 넥스트 삼성, 100세 시대 다시 청춘, 대통령의 설득법, 반기문 대망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매일 2시간씩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걷기를 좋아하고, 책읽기, 영화보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