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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에서 만난 은퇴하우스 ]
노후의 놀이터 같은 집

노후가 되면 놀이터가 필요하다.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 즐길 거리가 있고, 자연의 섭생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놀이터라면 부러울 게 없다. 집이란 곳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경남 합천에서 7년간 전원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어느 한 노부부에게서 즐거운 은퇴하우스를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받아 보자.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손수 그린, 평화로운 풍경화 같은 집

지난 봄 편집실 이메일로 긴 편지가 도착했다. 건축가 조재현 씨였다. 늘상 건축가들이 설계한 주택을 잡지 지면에 소개해달라는 연락을 해온다. 그 역시 같은 취지였지만 내용은 확연히 달랐다.

 

“2009년 어머니께서 250평정도 되는 밭을 사신 후 묘목을 심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중략)… 부모님은 새벽부터 꽃을 심고, 나무를 손질하고, 텃밭을 가꾸셨습니다. 길을 가다 예쁜 꽃이 눈에 띄면 씨를 받아 뿌리셨고, 꽃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심으셨습니다. 작은 연못을 만들어 금붕어를 풀고 연꽃을 띄우셨습니다. 처음에는 강아지 한 마리와 사셨는데 이제 열 마리의 토종닭과, 백 마리가 넘는 금붕어들과 대가족을 이루셨습니다.

 

 

▲부부의 정원에서는 사계절 다른 꽃이 피고진다.(사진제공 조재현) 

 

정원에는 사랑을 받아 행복한 꽃들이 가득하고, 나무에는 정성 가득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나비와 벌들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춤을 추고, 나무 우체통에는 새들이 새끼를 까서 짹짹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이 평화로운 풍경화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려서 완성한 그림이 아닙니다.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계속 그려나가고 있는 그림입니다. 순수한 손맛이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인위적이지 않고 오래 전부터 함께 살아온 듯 자연스러운 공존의 풍경이 지금도 그려지고 있습니다.…(생략)”


 

 

▲7년간 차근차근 가꾸어 오늘의 모습이 된 부부의 집터. 그들의 노동과 행복이 담긴 정원이다.

 

 

노후는 따뜻한 남쪽에서 보내고 싶어

조 씨가 소개한 집은 자신의 부모 집이었다. 경남 합천에서 전원생활을 영위 중인 부모님이 지난 7년간 손수 만들어낸 풍경화를 지면에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경상남도에서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합천까지는 적잖게 먼 길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효심에, 그리고 노부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지난 8월말 길을 나서기로 했다.

 

경남 합천군 초계면에서 만난 병배마을은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지붕을 잇대고 모여 사는 소박한 농촌마을이었다. 분지 지형에 위치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아늑함도 느껴진다.

 

 

▲집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조용하고 아름다운 농촌의 모습이 펼쳐진다.

 

마을 안에서 조수양(76)·권영희(72) 부부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찾아간 부부의 집은 동네 속 오래된 집들보다도 키가 낮고 규모가 아담했다. 더군다나 길게 형성된 정원의 끝자락에서 어렴풋한 자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냈을 정원은 그래도 생기가 돌았다.

 

군데군데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보였다. 집안으로 드나드는 문 앞에는 라디오와 스피커가 턱하니 나와 있다. FM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 음악이 부드럽게 정원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이 들어 일산에서 살려니 춥더군요. 감나무도 클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남쪽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친정엄마 동네인 이곳까지 내려오게 됐네요.”

 

 

한걸음씩,

순리대로 만들어가는 노년의 생활

부부의 발자취를 듣노라면, 삶의 지혜란 게 이런 거구나 새삼 느낀다. 부부는 노후에 새로운 생활을 설계하면서 과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급해할 것도 없었다.

 

결심이 서면 과감하게 한걸음을 내딛고, 그곳에 머무르며 용기를 얻으면 다시 한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빈 땅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아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합천에 600㎡ 정도 되는 밭을 구입한 것도 아내였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아내는 서둘러 빈 땅에 묘목부터 심었다. 당시 묘목 심기를 도왔던 아들 조재현 씨는 “조그마한 이파리하나 없이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불쌍하고 쓸쓸해 보였다”고 회상한다.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들은 조그만 뿌리가 달려있을 뿐 회초리보다 조금 더 굵은 나뭇가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부부의 야외쉼터다. 오디오와 스피커를 갖춰 놓고 늘상 클래식음악을 듣는다.

 

땅 사고 제일 먼저 묘목을 심었던 아내는, 다음해인 2010년 조그마한 컨테이너 주택을 가져다 놓았다. 싱크대, 화장실을 갖춘 한 동짜리 컨테이너였다. 건축가인 아들은 컨테이너에 길고 넓은 창을 내어 햇살과 바람이 충분히 드나 들 수 있게 해두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아내와 남편은 일산과 합천을 오가며 생활했다. 시골을 경험해보니 재미도 있고 자신감도 붙었다. 급기야 2012년에는 도시생활을 청산한 후 지금의 터에 살림집을 증축하고 완전히 이사했다. 귀농의 어려움을 아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적지 않았지만 부부는 확신이 있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 지은 60㎡ 남짓한 작은 집은 얌전히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자신을 숨기듯, 나지막이 앉아있다. 방 한 칸과 거실, 작은 주방과 화장실이 들어서 있는 채와 먼저 쓰던 컨테이너 주택을 연결해서 겉에서 보면 길쭉한 한 동짜리 집이 되었다.

 

“귀촌할 때는 적어도 1년은 부대껴 보고 완전 이주를 결심해야 해요. 시골마을에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하거든요.”

 

 

1 침실 한켠에 마련한 남편의 서재. 책읽기를 좋아하고 인터넷 정보검색을 즐기는 남편이 자주 머무는 공간이다. 2 실내 거실의 모습. 입식과 좌식을 혼용해서 편안하게 꾸몄다. 3 2010년 처음 들여놓은 컨테이너 주택. 나중에 지은 주택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해

7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부부의 집은 누구라도 탐낼만한 재미난 곳으로 변모했다. 회초리 만했던 나무들이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듯 우람해졌고 그 나무 사이사이로 갖가지 꽃나무와 화초들이 심겨져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비밀의 화원이 되어 있다.

 

금붕어떼가 노니는 작은 연못과 온갖 식생들이 모여 있는 정원에,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아 보이는 아담한 집은, 한 장의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여유롭다.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부부의 생활이다. 아니, 완전히 달라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는 부부. 그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일까.

 

 

1 남편이 직접 만든 바비큐와 텃밭에서 키운 채소, 닭장에서 가져온 계란으로 차린 점심 식탁이다. 2 마당 한켠에 바비큐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몇 시간씩 굽고 숙성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된 바비큐 맛이 나온다고.

 

“새벽녘 정원에 나가서 2~3시간 정도 일을 해요. 그 사이 해가 떠오르는데 저절로 기운이 난답니다. 그렇게 일하고 나면 온 몸이 개운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요.”

아내는 활동적인 정원 일을 끝낸 후, 간단한 아침을 먹은 다음에는 책을 읽으며 정적인 오전을 보낸다.

“원 없이 책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편은 아내보다 더 독서광이다. 유명한 시구절도 줄줄 외우고, 붓글씨도 잘 쓴다. 남편의 서재와 침대 맡에 책들이 빼곡한 이유로 보인다. 부부는 합천 소재 도서관의 단골 이용자기도 하다. 전원생활을 위해 마련한 소형차를 몰고 20분만에 달려 간다. 보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잊지 않고 들여오는 도서관이 고마울 따름이다.

 

부부는 의외로 비슷한 취미가 많다. 두 사람 모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 다행스럽다. 한 달에 2~3번씩 주말에 열리는 클래식 공연을 즐기러 나선다.

 

 

▲신축 건물과 컨테이너 주택을 이어서 길게 펼쳐진 주택. 있는듯 없는듯 주변환경과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꾀했다.

 

평일 오후는 TV 시청 재미가 쏠쏠하다. 남편은 오후 2~5시 사이 시사뉴스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아내는 저녁 무렵 시작하는 국내외 야구중계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본다. 젊어서부터 야구 마니아였다는 아내는 자유롭게 야구를 관람하게 되어 행복하단다. 국내에서 해외리그에 이르기까지 유명 선수들의 당일 컨디션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라니 광팬 인정.

 

부부는 이 모든 ‘하고 싶은 것’을 즐기다보면 하루가 짧다. 그래서 정한 규칙이 있다. 하루 한 번의 식사만 함께 차려 먹는다는 규칙이다. 나머지는 자신이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것을 간단히 먹으면 된다. 사실 문 밖으로 나서면 텃밭이 있고, 냉장고에는 저장해둔 음식들이 있으니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평소 주도면밀한 성격에다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인터넷 검색을 잘하는 남편은 전원생활을 하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터넷 정보를 통해 전통 미국식 바비큐 요리를 숙독하고 실습했다. 특별한 손님이 오거나 손주들이 찾아 올 때면 어김없이 요리에 나선다. 이날 내놓은 그의 바비큐 요리는 소스까지 더해져 그 맛이 일품이었다. 또한, 더치 커피 내리는 법도 배워서 직접 만든 커피를 즐기고 있다.

 

 

▲집의 뒤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집은 부부처럼 겸손하고 평온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지혜로 시골에 정착

부부는 마을에서도 인기가 있다. 70대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80을 넘은 어르신들이 수두룩한 이 마을에서는 젊은이다. 아내는 홍반장처럼, 호출하는 노인들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 가서 해결사 역할을 해준다. 주로 핸드폰 조작이 안 되거나, TV가 안 나오는 등의 문제들이다.

 

 

1 정원 곳곳에 남편이 직접 만든 새집들이 있다.  2 남편의 솜씨가 대단해 보인다. 해외 사이트를 보고 직접 제작한 풍경. 길이에 따라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

 

인터넷이나 기기 다루는데 능한 남편은 또 어떤가. 선풍기 고장 같은 사고는 남편이 나선다. 가끔씩 동네 농부들이 들고 온 농작물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소비자에게 전송하는 일도 남편 몫이다.

 

겨울철이 되면 아내는 마을회관에서 오후를 보낸다. 할머니들과 화투를 치기도 하고 체조도 함께 한다. 그녀는 구기종목이라면 못하는 게 없는 생활체육인이었다. 합천에 온 이후로는 혼자 트레이닝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지만, 겨울철 활동량이 적은 노인들을 위해 자원봉사에도 나서는 것이다.

 

 

1,2 텃밭 너머 가장 안쪽에 자리한 닭장. 닭들이 더울세라 나무 그늘을 만들어 놓은 부부의 마음이 갸륵하다. 그 보답으로 토종닭들은 매일 신선한 달걀을 내놓는다. 3 남편이 제작했다는 이것은 무엇일까.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땅속으로 진동과 소리를 보내 두더지를 쫓아내는 도구다. 4 집의 뒷마당 에 야외 가마솥을 만들어 놓고 요긴하게 쓴다.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를 떠나 경남 합천에 새 보금자리를 튼 노부부의 용기와 그들의 다채로운 일상을 부러워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 바깥에서 노후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PLAN

위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신촌리 지역 생산관리지역

대지면적 603㎡ 연면적 73.09㎡ 건축면적 76.77㎡

건폐율 12.73% 용적률 12.12% 구조 경량철골구조

용도 단독주택 층수 지상 1층 높이 3.24m

외장마감재 아라우코, 리얼징크 내장마감재 석고보드 위 실크벽지

설계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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