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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100세 주택⑧]
주거공간은 식생활에 변화를 준다

사는 곳의 변화는 식생활의 변화로 이어지고, 다시 건강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전원생활을 하며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제철에 생산하는 로컬푸드를 즐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원에 살며 도시의 대형마트로 쇼핑을 다닐 요량이라면, 굳이 전원생활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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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씨가 충북 영동에 내려온 것은 8년 전의 일이었다. 청주에서 화학 연구소에 다니던 박 씨는 2년 먼저 명예퇴직을 했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거의 떠밀리다시피 회사를 나왔다. 새로 취임한 연구소장이 조직을 정비한다고 나이든 연구원들에게 명예퇴직을 권유했던 것이다. 그래서 박 씨는 선후배 서너 명과 함께, 30년 직장생활을 했던 연구소를 예상보다 빨리 떠나게 되었다.

 

물론 이리저리 따져보면 큰 손해는 아니었다. 100% 급여 보전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면을 세울 정도로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직장에 2년 더 다닌다고 들어갈 소요경비를 계산해보면, 사실 못 받은 월급과 대비해서 큰 차이가 없었다. 박영호 씨는 58살에 정년퇴직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2년 먼저 나가서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 것이 길게 보면 훨씬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보니, 마땅한 일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나이든 사람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화학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박 씨는 화학 분야의 일을 빼놓고는 만사 젬병이었다. 그래서 6개월 정도를 무위도식하다가 마침내 전원생활을 결심했다. 이렇게 시간과 돈을 축내느니, 집값이라도 싼 농촌으로 내려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내 김민자 씨는 남편 박영호 씨의 결심을 지지했다. 자신의 직장생활을 위해서, 남편 박영호 씨가 대전까지 매일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자동차로 출퇴근했던 정성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어렵게 농촌 생활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거 좋은 생각이다”라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했던 것이다. 박영호 씨와 김민자 씨 부부의 전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 짓는 사이 식생활 바뀌어, 아내의 오랜 변비도 해결

괴산이 고향인 박 씨는 전원생활을 해도 충북 지역은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연고가 충북인 터라,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전북 무주가 고향인 아내의 처가와 가까운 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서너 달 정도를 알아보다가 정한 곳이 바로 영동이었다.

 

그는 영동에 정착하기로 한 뒤에, 직접 집을 지었다. 밭 딸린 농가 2000평을 시세보다 싼 값에 사서, 건축사 후배에게 자신이 원하는 집 모양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청주에서 인부들을 데리고 가서 한 달 반 걸려서 제법 그럴 듯한 농가주택을 건축했다. 방 2개, 거실 겸 주방이 같이 있는 단층짜리 슬라브 주택이었다.

 

집을 짓는 사이 부부에게는 큰 변화 하나가 나타났다. 식생활이 바뀐 것이다. 청주 살 때에는 주말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일이었는데, 영동에 내려온 뒤로는 집짓기에 바빠서 마트 다닐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농협 마트에서 쌀이나 고기를 사오는 일 이외에는 거의 모든 반찬거리를 집 주변에서 해결했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먹는 것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푸성귀였다.

 

텃세가 있다는 시골이라지만, 살러 내려온 박영호 씨 부부에게 이웃 주민들의 인심은 그래도 후한 편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먹고 싶은 대로 뜯어 먹으라고 했고, 부부는 상추, 깻잎, 배추, 고추 등 필요한 채소를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삼겹살이라도 구어서 함께 먹으면 이보다 더 좋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고, 고기가 없으면 쌈장에 된장국이어도 충분했다. 하여튼 부부는 삼시세끼를 모두 쌈밥으로 먹으면서, 그해 여름을 넘기며 전원주택을 완공했다.

 

전원주택을 완공하고 영동 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무엇을 해먹고 살아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부부는 겨울을 나면서 봄에 뭘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도 많이 내리고 날씨도 추운 영동지역이었다. 벼농사를 짓겠다고 논도 500평을 따로 구입했지만, 수익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는 그 겨울 내내 꼼짝도 않고 겨우살이를 하며 이듬해 봄에 할 일을 고민했다.

 

영동 생활에 먼저 만족한 사람은 부인 김 씨였다. 그는 원래 변비가 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화장실을 못 가는 경우가 많았다. 좋다는 병원, 의원, 한의원을 전부 다녀봤지만, 배변 문제를 해결해주는 명의는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화장실 문제로 전전긍긍하기 십상이었는데, 영동에 내려온 뒤로는 변비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다. 아마도 매일 먹는 푸성귀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겨울에도 푸성귀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군청의 농가 지원 사업을 알아보다 하우스 지원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50평짜리 하우스 2동을 지어, 1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는 모듬 채소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채소 하우스농사로 건강과 수익 챙겨

지난 8년간 박영호 씨 부부에게는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하우스는 100평짜리 6개로 늘었고, 김민자 씨 언니 부부, 그러니까 박영호 씨 손윗동서 부부도 내려와서 함께 영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손윗동서 부부는 따로 농지를 구입하지 않고, 박영호 씨의 하우스에서 일을 함께 하면서 수입을 똑같이 나누고 있다. 순수익은 두 가구가 각각 연 1억원씩 올리고 있으니, 농가 수입으로는 적지 않은 편이다.

 

물론 이 정도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지난 8년간 흘린 박 씨 부부의 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정도 어려움은 직장생활 할 때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남편의 이야기이다. 현재 재배하는 채소는 30여 가지 정도 되는데, 주로 주변의 식당들에 납품되고, 인터넷을 통해 개별 판매도 병행한다.

 

부부의 쌈밥 사랑은 지금도 계속된다. 특히 부인은 하루 삼시세끼를 쌈밥만 먹는다. 이제는 고기 먹는 일도 거의 없다. 그냥 내리 쌈밥이고, 감자나, 고추를 숭숭 썰어 넣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정도만 밥상에 올린다. 시켜서 할 일이라면 진작 그만뒀겠지만,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라 앞으로도 계속 될 듯하다.

 

전원생활 하면서 건강 나빠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제철에 난 신선한 것을 먹는 까닭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대도시 주변의 대형마트에 다닐 사람이라면, 굳이 전원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 제 손으로 기른 채소 먹는 것은 전원생활자만의 특권이다. 그렇게 되면, 수익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에게 달라진 변화를 이웃의 식탁 위에도 올려놓겠다는 마음이 8년 만에 박영호 씨 부부를 농촌부자로 만들었다.

 

 

이성민

KBS 아나운서. 사랑의 가족(KBS 1TV), 생방송 토요일, 일요일 아침입니다(KBS 1라디오), 경제를 배웁시다(KBS 한민족)를 진행 중이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일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석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노인문제를 포함해서, 미래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의 넥스트 삼성, 100세 시대 다시 청춘, 대통령의 설득법, 반기문 대망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매일 2시간씩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걷기를 좋아하고, 책읽기, 영화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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