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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100세 주택 ⑦]
주거공간은 가사노동의 주체를 바꾼다

주거공간의 이동에는 노동 주체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은퇴 후 도시를 떠나 노후의 삶을 보내고 싶다면 필히 단순히 먹고 사는 일부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들도 해묵은 도시생활에서의 행태를 벗어나 각종 가사노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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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요리사 백종원 씨를 보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충 어림짐작을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자가 행주치마를 걸치고 마늘 까고, 멸치 속 다듬는 일이 이제 머잖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것 같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퍽이나 고단한 일이고,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한 일이다.

 

생긴 모습만 보면, 백종원 씨는 전혀 요리를 하게 생긴 것 같지 않다. 장교 출신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구릿빛 피부색에 든든한 체구를 보면, 사무직은 아니어도 최소한 현장 근무를 하는 기술자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했쥬”, “그렇쥬” 하는 구수한 말투에서 단박에 충청도 양반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체통 많이 따진다는 충청도 사람 정서를 고려해보면, 백종원 씨는 어릴 적부터 부엌이라고는 가마솥에 끓여놓은 숭늉 떠 마시려고도 가보지 않은 올곧은 조선 남성상을 지켜왔을 것 같은 인상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웬걸, 백종원 씨는 입만 열면 남자 체통 다 떨어뜨리는 남세스러운 말들만 쏟아낸다. “칼질 못해도 괜찮아, 채칼 쓰면 되유.”라든가, “민트 없으면 어뗘유, 깻잎 넣으면 되쥬.” 등등 부엌 경험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것이다. 예전에 가부장의 역할을 들먹이시던 어른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의 경이로운 부엌 어록들을 들으면서, 세상이 바뀌어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남자들도 제 몸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주거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자들이 남자들의 활동 영역에 거침없이 뛰어들 듯이, 남자들도 여자들의 노동이라고 구분 지었던 일들을 주저하지 않고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100세, 120세를 살아갈 노인들은 배우자나 자녀가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 배우자가 있거나 자녀가 있어도 서로를 돌봐줄 형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제 몸 건사도 힘든 80세 이상의 노인이 부모나 배우자를 보살피는 상황은 말이 안 되므로, 고령화 시대에는 어쨌든 죽기 전까지 일단 제 몸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직 뒷동산에라도 주저 없이 오를 수 있는 6, 70세쯤이라고 해도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직장이나 생활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예상 못한 1가구 2주택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낙향을 주장하는 남편과 도시 생활을 주장하는 아내가 각자의 편의에 따라서 주거지를 결정하게 되면 당장 생활의 불편을 느끼는 쪽은 남편 쪽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온다는 유세를 부려온 남편들은 평생 아내의 보살핌을 받아온 덕에 제 손으로는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가사 노동능력 제로의 삶을 영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문제가 생기는 쪽은 여자 쪽이 아니라 남자 쪽이다. 옷을 빨고 다리는 일이나 청소를 하는 일은 고사하고, 제대로 한 끼 밥상을 차리지도 못하는 남자들은 허울 좋은 전원생활을 꿈꾸며 그대로 지내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다.

 

중국음식조차 배달이 안 되는 산 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고 살다가는 매일 먹는 컵라면과 햇반으로 인해 헛것이 눈에 보이거나, 헛소리가 귀에 쟁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아내 의견을 무시하고 전원생활을 시작할 남편들이라면, 집터를 구하기 전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노동 기술을 익혀야 한다.

 

남자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부터 익혀라

전원생활을 하거나 농어촌 생활을 할 요량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가사노동은 남편이 전부 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밥 짓고 설거지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과 장보고 행정업무 하는 것까지 죄다 남편이 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전원생활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해야 할 기본 생활을 아내에게 여전히 의존할 생각이라면, 전원생활의 꿈은 깨야 한다. 30년 시집살이를 한 어떤 아내도 남은 30년을 객지에 나가서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친 대부분의 남편들이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것과 달리, 집안에 틀어박혀 시부모와 남편, 자식 수발을 해온 아내들은 거의 100% 도시 생활을 지향한다.

남편들은 돈 벌다 질린 세상살이에 신물이 넘어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내들은 거꾸로 누리지 못하고 흘려보낸 인생에 대한 보상 심리가 남아 있다. 그래서 어르든, 꼬드기든, 협박을 하든, 아내를 들쑤셔서 전원생활을 할 생각이면, 남편은 이제부터 남은 생애는 아내로 살 생각을 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성들에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전원생활의 실상이다. 농촌이나 어촌에 지어놓은 전원주택은 생각보다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원주민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의 연속이 될 수 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전원주택지에서 생활하는 것은 흡사 야생의 삶이다. tvN의 ‘삼시세끼’에 보면, 탤런트 이서진과 동료들이 하루 종일 밥 먹고 하는 일이 다음 밥상 차리는 일이다. 준비 없이 전원생활 시작하면, 세끼 밥 먹을 준비하다 하루를 보낼 수가 있다.

 

남편은 남은 생애를 아내로 살아야 한다

그래도 그나마 밥 먹고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양호한 상황이다. 제대로 주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단독택지 같은 곳이라면, 노동천국 속에서 생활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눈비 내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축대는 무너지지 않았는지, 전봇대는 넘어가지 않았는지 두루두루 살피고 돌아다녀야하기 때문이다. 야생 풀벌레나 모기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집 주변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제초작업도 해야 하고, 틈틈이 살충제도 뿌려야 한다. 전원생활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어야 농사를 짓든 고기를 잡든 할 수 있다. 제대로 밥술도 못 뜨면 전원생활에 대한 회의나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전원생활을 하려면 용기뿐만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그 용기와 준비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느냐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마늘을 까고, 김치 담글 정도의 기량과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산다. 전원생활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이성민

KBS 아나운서. 사랑의 가족(KBS 1TV), 생방송 토요일, 일요일 아침입니다(KBS 1라디오), 경제를 배웁시다(KBS 한민족)를 진행 중이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일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백석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노인문제를 포함해서, 미래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을 펼치고 있다. 100세 시대 다시 청춘, 대통령의 설득법,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7가지 설득력, 반기문 대망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매일 2시간씩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걷기를 좋아하고, 책읽기, 영화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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