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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과 건축의 만남]
1851년의 런던 엑스포와 크리스탈 팰리스

해일은 파도 몇 개가 덮쳐서 된 일이 아니고 폭풍이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은 일군의 발명가들에 의해 무슨 역사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가운데 인류를 가장 크게 변혁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발명가들이 세상에 유용한 과학장치를 발명하고 그 발명이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글·사진 김석철(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국가건축정책위원장)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 런던 엑스포 개회식

 


산업혁명의 초석 이룬 와트와 볼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기본전력단위인 와트와 볼트로 부르게 한 바로 와트와 볼트가 산업혁명의 초석을 이룬 사람들이다.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 그리녹에서 목수·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난 와트의 혁명적 아이디어는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시키는 전동장치였다.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시킨 장치로 인해서 증기기관의 이용범위는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 3개국에서 출품한 조각상

 

와트가 증기기관의 첫 발명자는 아니다. 비슷한 장치는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글로 남겼고 영국 육군사관인 토머스 세이버리와 뉴커먼이 먼저 시작했다. 와트는 뉴커먼 기관의 모델을 수리하다가 증기기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와트는 후발주자였으나 기관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시키는 전동장치를 발명해 산업혁명의 기반을 쌓았다. 증기기관이 없었더라면 영국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 자장 속에서 회전하는 코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기 2 고압전선에서 동력을 공급받아 달리는 전기 기관차

 

산업혁명의 선구자인 와트와 볼트를 필두로 하여, 철강을 만든 베서머가 영국발 산업혁명을 전 유럽에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헨리 베서머는 철강제조의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이전보다 강하고 가볍고 유연한 철강이 나온 것이다.

가벼운 강판을 사용해 배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었고 철강골조를 사용해 에펠탑 같은 초고층 건축을 가능케 했다. 1870년 50만톤이던 철강생산이 1900년에는 2800만톤으로 급상승하고 피츠버그, 에센 등이 철강도시로 성장했으며 카네기와 크루프 같은 세계적 철강 그룹이 나타났다.

 

 

▲ 조지프 팩스턴의 크리스탈 팰리스 스케치

 


조지프 팩스턴이 설계한 크리스탈 팰리스

현대문명이 기반인 산업혁명을 사람들 모두에게 알게 한 것이 1851년 런던에서 열린 EXPO였다. 산업혁명 이후 이룬 진보를 보기 위해 기획된 런던엑스포에 50만명의 열정어린 관객이 하이드파크의 크리스탈 팰리스로 몰려들었다. 당시 세계수도인 런던은 엑스포로 들떠 있었다.

 

 

▲ 유리를 전면에 사용한 크리스탈 팰리스

 

그들은 평화와 산업을 주제로 한 엑스포의 이상과 전시물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최초의 철강·유리건축인 크리스탈 팰리스에 열광했다. 전시품에는 인쇄기와 기관차와 자고 있는 사람을 시간이 되면 침대에서 욕조에 들어가게 하는 경보침대도 있고 프랑스 향수와 독일제 벽난로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과 5개월 사이에 9만㎡의 유리가 5000개의 캐스트아이언 사이에 끼워진 크리스탈 팰리스가 가장 큰 볼거리였다. 크리스탈 펠리스의 설계경기에 영국의 모든 건축가와 기술자가 경합했다.

 

▲ 크리스탈 팰리스 평면,입면,단면도

 

 

▲ 크리스탈 팰리스 내부

 

정원사이며 미들랜드 철도 임원이던 조지프 팩스턴이 마감직전에 건설위원회에 자기의 ‘엉뚱한 안’을 제출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들랜드 철도위원회 회의 도중 두개의 스케치를 그린 후 설계도를 작성해 제출한 것이다. 설계는 전시장으로서는 특이한 것으로 팩스턴이 데번셔 공작을 위해 설계한 온실을 더 크게 만든 것이다.

 

 

▲ 크리스탈 팰리스 입구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최대의 전시장 설계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설계를 런던뉴스에 미리 발표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 그들끼리일 수 있는 심사위원회를 압박해 당선작이 되었다. 어려운 공학적 문제는 뛰어난 기술자들의 협력으로 해결되었고 넉달이라는 기록적인 짧은 시간에 산업혁명 이후 건축의 걸작을 현장에서 조립건설했다.

 

개회식날 정각 12시에 크리스탈 팰리스에 도착한 여왕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런던사람들은 점차 형태를 이루어가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지켜보면서 이날을 기다렸다. 수천명이 세계 최초의 EXPO건축을 위해 기부금을 냈다. 여왕도 앨버트공도 이름없는 시민도 나름대로 기부금을 냈다.

 

 

▲ 카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

 


산업혁명 이후 이룬 놀라운 진보

산업혁명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공업제품을 한 공간안에 보이기로 한 런던엑스포는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공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주제는 진보였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진보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유럽인구의 75%가 농원지역에서 살고 있었고 부의 대부분은 땅에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안되어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이를 세계화한 것이 런던 엑스포의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 기계전시장

 

런던엑스포의 크리스탈 팰리스 건축 이후1890년 스코틀랜드의 포드강 하구에 건설된 총 513m인 포드강 철교를 시작으로 철강건축과 철강도시의 새 시대가 열렸다. 대양횡단 케이블과 철강다리가 있어 지리를 극복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66년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아일랜드에서 뉴펀들랜드 사이의 해저에 3200km나 되는 전선 케이블을 건설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해저케이블로 산업혁명을 시장혁명으로 확대하였다.

 

 

▲ 캐나다의 카누

 

상인들은 전보로 매매하고 전신키 하나로 화물선을 운반해 세계를 단일시장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해저케이블로 해서 1871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1834년에는 남아메리카가, 그리고 드디어 1902년에는 영국이 태평양횡단 케이블을 부설해 세계의 정보를 독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런던엑스포와 크리스탈 팰리스는 이러한 대영제국의 건설과 산업혁명의 전파를 전세계에 알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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