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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같은 민화’ 그리는 유혜영 작가]
“스페인에서 먹으로 그린 행복 바이러스 받으세요”

'가족’이라는 단어가 유독 사무치게 들리는 올 봄. 스페인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유혜영(45) 씨가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그림들로 한국을 찾았다. 하나같이 그림일기를 쓰듯 순간을 빠르게 기록하고 천천히 색을 입혀 나가며 완성한 작품들이다. 그녀의 현대판 풍속화를 가능케 한 것은 먹과 한지였다. 먼나라 스페인에서 재발견한 우리 민화, 코믹한 만화의 요소에 민화를 덧입힌 작가 유혜영을 만난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촬영협조 갤러리토스트 (02-532-6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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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 작가의 민화는 전통민화가 주로 차용했던 족자와 병풍이라는 옛스러운 형식에 담겨졌음에도 현대적인 공간에서 손색없이 어울린다.

 

 

‘해피’를 전파하는 그림

몇 해 전 아들 마르셀을 낳은 이후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늦둥이를 낳은 나는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하게만 느껴졌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자 그 소중한 순간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아기를 키우면서 배운 사랑, 행복의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하는 첫 개인전(4월26일부터 5월18일까지 갤러리 토스트에서 열린 전시)이다. 가정의 달 5월에 맞추어 전시일정을 잡았는데, 전시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딱 내 나이 세대다. 우울하고 참담한 분위기에 전시 홍보도 말자했다.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우리는 가족에 의지해서 산다. 힘들다가도 아이를 보면서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산다. 그만큼 가족은 중요한 것이다.

 


 티 타임 50×34.5cm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4

 

 

만화 같은 민화

아이를 낳고 발이 꽁꽁 묶인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그림그리기였다. 그림 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겪었다. 밥상에 펼쳐놓고 그리다가 아이가 등장하면 재빨리 접어서 치워도 물감이 번지지 않는 종이가 필요했는데, 우리 한지가 그 역할을 훌륭히 해주었다. 작은 병에 휴대하면 그림 몇 장을 뚝딱 그려낼 수 있는 우리 먹 역시 안성맞춤 재료였다. 친언니가 민화를 그렸기에 직접 그 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전통 민화의 화면을 그대로 따르진 않지만 한지와 먹, 분채를 사용해 일상의 바람을 민화적 그림기법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나의 그림은 현대판 민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족 37×36cm 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4

 


 사랑해, 아가 34×25cm 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3

 

 

두 유 러브 스페인?

스페인에서 93년부터 머물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길에 경유한 바르셀로나에 매료돼 지금껏 눌러 앉게 됐다. 그곳에서 그림을 배우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스페인 디자인 여행’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라는 책을 써서 한국에 스페인을 소개하기도 했다. 스페인이 싫다는 한국 여행객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동양의 지중해 스타일이라고 부르지 않나. 스페인 사람들도 흥이 많고 냄비근성도 있고, 우리와 성향이 잘 맞는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예술과 자유로움, 그것이 좋았다. 당시 만난 남편 엑토르와 결혼까지 하고 스페인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지금도 갓난쟁이를 들춰 엎고 매년 한국을 오가는 억척을 부릴 정도다. 결혼 이후 줄곧 1년 중 3개월은 한국서 일하고 나머지는 스페인에서 보냈다. 남편도 시댁식구도 나의 활동을 이해하고 격려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커피 포트 25.3×37.5cm 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4

 

 

그림 속 배경

그림의 배경은 현재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의 우리 집이다. 결혼한지 10년 되던 해, 인생을 한번 바꿔보자며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시골로 이사했다. 로즈마린(허브)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개발되지 않은 들판에서 채취한 야생 아스파라거스가 저녁 식탁에 오르는 그런 마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한층 건강해졌고, 나를 위해 보낼 수 있는 수많은 시간을 얻었다.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남편은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고, 나 역시 디자이너에서 작가로 거듭나는 시기를 이곳에서 맞이했다. 아기를 가져보자는 생각도 슬슬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길고양이 20마리를 돌봤고, 지금도 아들 마르셀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게 중요한 일과다. 그림에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풍경과 나 38×36cm 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4

 

 

민화의 재해석작업

지난해 겨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굉장히 큰 아트마켓에 초대됐는데, 40명의 초대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올해도 다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지인들은 민화를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그림을 이렇게 족자에 걸 수도 있구나, 하며 매우 신선하게 바라본다. 나의 그림이 다소 코믹하다는 점에서는 만화와 같지만, 민화의 전통기법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는 민화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우리의 전통을 내 방식대로 수용해서 현대의 감성과 어우러지게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많은 한국의 작가들이 민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나섰으면 한다.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47.5x34m 먹과 한국화 채색 물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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