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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취를 오롯이 담다]
양옥과 한옥이 공존하는 노부부의 집, 화계헌(花溪軒 )

대전 신시가지에 의미있는 집이 한 채 들어섰다.

60대 후반의 부부가 노후를 보내고자 지은 집 화계헌은 우리시대 노년세대가 걸어온 삶의 자취가 그러했듯

전통과 현대, 한옥과 양옥의 공존과 조화를 꾀하고 있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 그리운 옛집 떠올리며 지은 ‘화계헌’


저녁 무렵 방문하는 대목수에게 못질을 부탁하련다고 세워둔 현판에 새겨진 당호 화계헌(花溪軒). 마침 화계헌을 짓는데 힘써 준 건축가며, 목수, 시공자들을 초청한 날이었다. 당호를 걸기까지 꼬박 1년 2개월 동안 설계와 시공에 매달려왔다는 검선건(69)·이종순(67) 부부.

 

머지않아 고희의 나이를 맞이하게 될 노부부에게 집짓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더욱이 노부부의 집은 양옥과 한옥이 한 터에 공존하면서 소통하는 형태여서 호기심을 키운다.  

 

 

 

 

3칸짜리 한옥 사랑채를 차지한 주인은 남편 김선건 교수(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대전문화연대 고문)다. 오랜 세월 연구하는 대학교수로, 행동하는 시민운동가로 열정을 바쳐온 그는 노후의 놀이터로 한옥을 선택했다. 사랑채에서 책을 읽고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찾아오는 지인들을 맞이할 생각에서다.

 

팔작지붕을 힘차게 뻗어낸 사랑채와는 대조적으로, 온통 새하얀 미니멀 스타일의 양옥집은 아내 이종순 여사의 취향을 담은 살림공간이다. 그녀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반신반의하며 지은 집에서 뜻밖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 남편 김선건 나는 한옥을 짓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어려서 살던 집도 한옥이고, 아이들 키우면서도 한옥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대청마루에서 댓돌로, 다시 마당으로 연결되는 공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거죠. 한옥이라는 집은 해가 돌아가면서 빛과 그림자를 만드는 재미난 집이에요.

 

이 집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집에 있는 게 즐겁고 말고요. 사람은 자기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해요. 정붙이고 살 집이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내게는 화계헌이 그런 집이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겁니다. 

 

 

▲ 남편의 공간. 한옥과 양옥을 마디처럼 잇는 동시에 안마당을 살포시 가려주는 자리에 서재가 위치한다.

 


● 아내 이종순  지금은 이 집을 남편이 준 선물이라고 여기지만,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지내다가 단독주택으로 옮겨가 산다고 생각하니, 내가 이 나이에 문명을 거스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요. 더군다나 전 재산을 집 짓는데 투자하면 노후가 막막해서 막 반대를 했죠. 남편의 답변을 듣고 마음을 바꿨지만요.

 

지금 집을 짓는 일이 돈을 가장 가치있게 쓰는 일이라는 거예요. 이 집을 짓고 나서야 그 말이 맞구나 싶었죠. 나이들수록 점점 외로워지고, 사람 귀한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데 집을 잘 지어놓으니 친구들이 제발로 드나들어 외로움이 오히려 덜해요.

 

아파트에 살 때는 하루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답답함이 있었어요. 이 집에서는 있을수록 편안하고 즐거워요. 여기서 살면 병도 안날 것 같고요. 이 나이에 집짓는다면 아내들이 다들 손사래를 치는데, 우리집처럼 한옥과 양옥의 장점을 쏙쏙 뽑아서 이렇게 짓는다면 모든 아내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답니다.

 


▲ 아내의 공간. 햇살이 들어 아늑한 ㄷ자 구조의 안채. 거실을 중심으로 안마당과 후원이 소통되는 구조다.

 


# 여행을 준비하듯 설렌 나날로 채워진 집짓기


노부부의 집짓기는 마치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이자 의식이었던 듯싶다. 노후에 살 집을 구상하는 시간은 여행을 준비하듯 설렌 나날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두 명의 건축가와 대목수가 여행의 친구가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노인이 된 아들이 연어처럼 자신이 태어난 옛 집터로 돌아와 지은 집이 바로 화계헌이다. 한옥의 장점과 양옥의 장점을 결합한 이 집은 안채는 철근콘크리트구조의 현대적인 주택이고 사랑채는 전통 목구조로 지은 한옥이다. 두 공간은 구름다리처럼 공중에 뜬 유리복도를 통해 연결된다.

 

 ▲ 3칸으로 이뤄진 한옥은 너른 사랑채 마당을 거느리며 기풍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화계헌은 양옥과 한옥의 조화를 꾀하면서도 사랑마당에서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위계질서는 한옥의 구성을 따랐다. 본래 집터에 경사가 있어서 한옥과 양옥 사이에 자연스럽게 두 계단 정도의 차이가 생겨난 것이 보인다. 집터 측면으로 학산(하늘에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이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트인 전망을 지니고 있어, 지형과 주변환경이 의도한 프로그램과도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 양옥과 한옥이 공존하는 화계헌은 한옥의 공간배치 방식에 따라 사랑채 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위계를 갖췄다. 도로와 대문 사이에도 바깥마당을 두었다. 

 

실내공간은 아파트처럼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실이 모여 있는 구조가 아닌 남편의 공간과 아내의 공간을 독립적으로 담았다. 사랑채 공간은 남편의 활동공간이자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된다. 안채는 오롯이 아내의 뜻대로 꾸미며 살아가는 살림공간이자 서예에 조예가 깊은 아내의 취미생활 공간이다.

 

평면을 들여다보면 사랑채와 안채가 만나는 곳에 서재와 보조주방, 화장실이 설치되고 안채의 거실과 분리할 수 있는 문을 달아 놓은 것이 보인다. 필요에 따라 남편의 공간인 사랑채를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1층 평면도

 

 

두 채를 잘 연결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서재는 한옥 사랑채와 양옥 안채를 잇는 마디처럼 자리한다. 서재에서 한옥마당을 보면 한옥의 처마와 담과 마당이 내다보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간 속에 자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양옥과 한옥 사이에서 부유하듯 자리한 서재 공간은 본격적인 안마당에 들어서기 전 바깥마당에서 바라보는 양옥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배치했다.

 

 

▲ 화계헌 실내는 회랑처럼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다. 사랑채의 회랑에서 시작되어 구름다리를 지나 안채 거실을 거쳐 프라이버시한 부부의 침실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ㄱ자 동선이 그것이다.

 

 

안마당 가득 햇살이 들어서는 안채는 장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완성했다. 대신 필요한 집의 기능은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겨울엔 바람막이가 여름엔 그늘막이 되어줄 처마를 만들고 그 아래로 너른 데크를 깔아 야외의 살림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두었다.

 

 

 

 

 

안채의 거실은 안마당과 후원으로 모두 전망을 열어 집의 앞뒤 소통을 잇는 대청마루처럼 자리한다. 안채에는 자녀와 손주들이 방문해서 머물 수 있는 다락방과 다락방에서 연계되는 너른 옥상 공간을 두어 다채로운 바깥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 안채의 중심은 안마당과 후원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든 거실이다. 아내의 서예실과 부부침실은 긴 복도를 지나 한차례 방향을 틀어야 만날 수 있다.

 

본래 화계헌은 ㄷ자 한옥으로 설계했던 집을 사랑채와 현대주택으로 바꾼 것이다. 처음 남편은 한옥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한옥전문가이자 건축사이기도 한 한필원 교수에게 설계를 맡겼다.

 

한 교수는 한옥의 옛집 재현이 아닌 노부부의 거주문제를 해결한 배리어프리 디자인 한옥을 선보였다. 대문에서부터 마당, 실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간에서 턱과 계단을 없애고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 사랑채는 겹집처럼 구성됐다. 사랑채 속에 방이 들어앉아있고 회랑과 대청마루가 방을 둘러싸고 있다. 양옥방향으로 향한 창호는 들문으로 제작해 막힘없는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옥 계획안은 사랑채를 짓는 것으로 축소됐다. 비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총 건축비용 3억5000만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3칸짜리 한옥 사랑채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남편의 꿈은 3칸 사랑채로 축소됐지만, 사랑채 마당과 대청마루, 회랑, 서재로 공간이 확장되면서 실제는 몇 배는 넓고 변화무상한 한옥을 누리고 있다. 집을 놀이터 삼아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 부부에게 화계헌을 만난 것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싶다.

 

 

한필원

1961년 생으로, 대학원 시절인 1900년대 중반부터 일관되게 전통주택과 마을, 역사도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건축사로 1989년에서 1995년까지 성림건축과 공간건축에서 건축설계 실무를 했다. 1996년부터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아시아건축연구실(ATA, http://ata.hannam.ac.kr)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등 10여권이 있다. 실무 작업으로는 〈통영 한산도 문어포 문화ㆍ역사마을 가꾸기 사업〉등을 수행했으며, 국토환경디자인 시범사업의 안성 죽산과 공주 송산마을 총괄계획가를 담당하고 있다.

 

최문봉

한남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수료했다. 1995년 제2회 대한건축학회 학생건축상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1년부터 (주)가림건축사사무소, (주)건축사사무소 머릿돌에이스, (주)하우드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등에서 건축실무를 익혔다. 주택, 아파트, 업무시설, 연구시설, 지구단위계획 등 다양한 영역의 설계에 참여했다. 2010 대전에 씨에스플랜 건축사사무소 개소한 후, 올해 ‘건축사사무소 동안’으로 변경했다. 010-3091-8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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