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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현대건축의 아버지]
알바알토 이야기

올해 5월 11일은,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배출한 최고의 건축가 알바알토(Alvar Aalto, 1898~1976)가 세상을 떠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고향 핀란드에서는 각종 행사와 추모식을 진행 중이다. 이번 호에는 알바알토의 서거 40주년을 맞이하여 알바 알토의 작품과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1 빌라 마이레아(1939년작) 2알바알토 (Alvar Aalto 1898년출생-1976년서거)

 

유럽의 변방국가 핀란드가 현대건축의 한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알바알토가 핀란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성과 논리의 현대건축에 감성과 직관의 새로운 국면을 더한 것도 알바알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기하학적 미학의 세계인 현대건축에 유기적 미학의 세계를 더한 것도 그이고, 자연에 대한 기술의 승리를 구가한 현대건축에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한 지속가능한 자연친화적 건축을 주장하고 실현한 것도 그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근대건축의 원류일 뿐 아니라 20세기부터 이어온 현대건축의 위대한 한 흐름이기도 한다. 그의 건축은 핀란드의 자연과 유럽문명의 역사를 하나로 성취한 가장 핀란드적이며 세계적인 건축이다.

 

▲카레의 집 (1956년작)

 

 

자연의 미학을 담은 유기적 건축

1898년 헬싱키에서 태어난 알바알토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헬싱키공대를 졸업할 때부터 그는 이미 완숙한 기량을 뽐낼 정도로 천재성을 드러냈다. 초기작품은 신고전주의 영향이 짙었으나 파이미오 요양원 현상설계 때는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스타일의 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알바알토는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광범위한 모든 곳으로부터 영감을 찾았다.

 

▲베를린 아파트먼트(1957년작)

 

지중해를 사랑하고 그리스와 이태리문명에 깊이 경도되었으면서도 항상 그의 조국인 핀란드의 자연과 역사를 잊지 않았다. 핀란드에 있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핀란드의 근대건축이 갖지 못했던 문화적 위엄과 문명적 스케일을 갖고 있다. 문학적 기능주의라고 불리우던 초기의 백색시대부터 후기의 벽돌시대에까지 일관되게 그는 지역적 특성과 세계적 흐름을 조화시킨 핀란드적 세계건축을 시도하고 또 추구했다.

 

▲MIT 베이커하우스(1948년작)

 

가장 뛰어난 20세기 주택의 하나인 빌라 마이레아에서 그는 핀란드의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이루는 새로운 형식의 로맨스를 연출했다. 그는 단순한 건축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중부유럽도시에서 비롯된 현대건축의 비전과 지중해 문명의 역사를 핀란드의 자연에 아름답게 접목시킨 어반 스케일의 작품을 통해 핀란드의 마을과 도시에 새로운 도시적 지평을 열었다.

 

▲울프스부르크 교회(1962년)

 

알바알토는 이론가도 교육자도 아니었지만 건축가로서 그가 남긴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의 작품은 서서히 핀란드를 넘어 스웨덴과 독일과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핀란드와는 또 다른, 스웨덴과 독일과 미국 특유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전례없는 아름다운 건축공간을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독일과 미국에 세운 그의 건축은 핀란드에 그가 세운 건축과는 또다른 세계와 자연의 미학을 보여준다.

 

▲세나살로 타운홀(1962년작)

 

그는 자연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은 건축가다. 1939년 발표한 뉴욕 엑스포 핀란드 파빌리온은 당시 세계 건축계에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기하학의 세계인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현대건축에 자연의 미학을 담은 유기적 세계의 건축이 처음으로 건축공간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엑스포 핀란드 파빌리온(1939년작)

 

 

자연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21세기의 이상적 모델

미국 캠브리지의 M.I.T.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 알바알토는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탈리아신을 방문하고 깊은 감동을 받아 그의 아들을 거기에 머물게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신대륙 문명의 에너지를 실현한 건축을 M.I.T.가 위치한 캠브리지의 찰스강변에 선보인다. 

 

그의 건축이 세계에 크게 알려지면서 시작된 벽돌시대에 그는 새로운 건축군을 연달아 발표한다. M.I.T.대학교 기숙사인 베이커하우스, 핀란드의 소도시 세나살로에 세운 타운홀, 헬싱키 공과대학 캠퍼스, 울프스부르크 문화센터 등은 현대건축 최고의 걸작들이다.

 

▲문화의 집(1958년작)

 

말년에는 흰 대리석으로 핀란디아홀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건축공간의 서정성을 아름다운 건축언어로 보여주었다. 몇년 전, 알바알토의 작품을 보기 위해 헬싱키를 방문했을 때 차창밖으로 ‘문화의 집’을 지나치며 보았다. 유기적 곡면의 벽돌벽으로 된 공연장과 기하학적 입방체인 금속제의 사무실 건물이 절묘한 비례로 마주 선 두 건물 사이를 경사진 도로와 청동의 캐노피가 지나고 있었다. 과연 알바알토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놀라운 건축이었다.

 

1 핀란디아홀 외부(1971년작) 2 핀란디아홀 내부(1971년작)

 

알바알토는 아무나 그의 건축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쉽게 그 정수를 흉내낼 수는 없는 큰 건축가이다. 알바알토의 건축이야말로 자연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21세기 건축의 이상적 모델 중 하나라 감히 말할 수 있다. 20세기 문명은 인류역사가 이룬 가장 큰 혁명적 변화와 진보를 이룩했으나 반면 인류가 수천년 지속해온 자연을 파괴해온 것도 사실이다. 자유경제의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산업사회로 이전하면서 도시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는 이제 막다른 길까지 치닫고 있다.

 

▲헬싱키공대 도서관(1970년작)

 

현대건축의 위대한 성취의 대부분은 자연을 정복한 인간환경의 창조였다. 알바알토만이 자연과 함께하는 지속발전이 가능한 건축과 도시를 추구했다. 알바알토는 현대건축이 외면한 자연과의 친화를 아름다운 건축언어로 형상화했다. 그는 핀란드와 그 자연의 모습을, 인간적이며 자연적인 유기적 건축으로 이루어낸, 핀란드와 북유럽이 낳은 최고의 건축가이다.

 

▲헬싱키공대 오디토리움(197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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