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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정림건설 대표]
안정적 경영통해 향토기업으로 성장

 ‘집 이상의 가치를 담은 집을 짓는다’

정림건설은 울산을 중심으로 경남과 경북 등 영남권에서 주로 사업을 해온 주택건설 전문기업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들을 헤치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 여정에는 김수연 대표가 때로는 뚝심으로, 때로는 마음을 비우며 성실히 내실을 다져온 바탕이 있다.

취재 권혁거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김수연 대표 주요약력

●현대미포조선 근무 ●울산광역시 지역건설산업 발전위원회 위원 ●경남 주택정책심의위원회 위원

●경남 건설분쟁위원회 위원 ●현재 정림건설 대표 · 대한주택건설협회 울산·경남도회장

 

“지난 27년간 정림건설은 실적보다는 실속을, 속도보다는 정도를 추구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경기의 호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경영으로 고객의 신뢰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12월29일 열린 ‘2015 주택건설의 날’ 행사에서 산업포장을 받은 김수연 대표가 밝힌 수상소감이다. 이 소감 한마디속에 그가 추구해온 회사의 경영이념과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경영을 통해 정림건설은 이제 울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가 대한주택건설협회 울산·경남도회장에 취임할 때 처음 한 이후 두 번째다. 첫 인터뷰때도 그랬지만, 그에게서 받는 느낌은 소탈하다는 점이다. 그는 별다른 격식을 차리지 않고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가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사무실의 외양도 결코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의 회사 또한 설립후 30년 가까이 욕심내지 않고 착실하게 꾸려왔다. 주택경기가 붐을 탈 때 그에게도 외형을 키우고 싶은 욕심이 왜 없었으랴마는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사업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무난히 견뎌낼 수 있었고, 오늘 회사를 이만큼이나마 키울 수 있었다.

 

사업시작때부터 어려움의 연속

김수연 대표의 고향은 안동이다. 그가 울산에 내려온 것은 직장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중공업 총무 파트에 근무하다가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70년대 후반부터 집을 짓는 일에 뛰어들었다. 단독주택을 지어 팔면서 자금을 조금씩 모은 뒤에 주택사업면허를 얻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 설립후 마치 고난의 행진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지금이야 그 얘기들을 추억삼아 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피를 말리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용케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 왔다.

 

첫 사업은 방어진의 백합맨션이다. 당초 조합을 결성, 주류판매점을 하던 땅을 매입해 조합주택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사업은 처음부터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건축허가는 받아 놓았는데 정작 조합 결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땅 주인이 사정을 봐주어서 어렵사리 사업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당시 지주를 잘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초 조합을 구성하기로 했던 것이 어긋나면서 사업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주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더니 젊은 사람이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잔금지급도 늦춰주고 이자도 일부 부담해주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은인과도 같은 분이죠.”

 

일단 공사를 시작했으니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합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공사가 진행됐고, 결국 조합원은 단 2세대만 신청받을 수 있었다. 모두 100여 세대에 이르는 아파트 단지여서 나머지 세대의 분양에 애를 먹었다. 다행히 주택경기가 좋아지면서 모두 분양을 마칠 수 있었다.

 

잘못된 소문으로 어려움 겪기도

인구가 2~3만명에 불과한 소도시인 경남 고성에 280세대의 아파트 분양을 할 때의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화다. 주택규모가 전체의 1/3은 큰 평수이고 1/3은 작은 평수인데 큰 평수가 먼저 분양됐다. 그런데 문제는 중도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한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때문이었다.

 

기사 내용인즉 정림건설이 당시 부도위기에 있던 세모그룹과 연루돼 곧 부도가 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세모그룹은 5공화국때 특혜를 받아 성장한 회사라는 의혹을 받던 회사로 오대양 사건에 연루되면서 쇠락해 결국 부도가 난 회사다. 회사측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사실이 아님을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중도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그 다음에 이어진 사업인 울산 호계동의 주택사업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에서 조합을 결성하겠다고 해서 300세대를 건립하기로 하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역시 주택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어려워진 케이스다. 복도식도 괜찮다고 해서 큰 평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복도식으로 건설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정작 조합측에는 10세대도 분양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100세대를 임대로 전환하는 고육책을 동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은 200세대의 분양이었다. 직접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서울의 스튜디오에서 사진까지 촬영해 홍보물을 만들었지만, 분양은 시원치 않았다. 1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분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사업은 울산 방어진의 백암맨션이었는데, 이때 IMF가 닥쳤다. 당초 분양을 계획했던 사업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전세대를 모두 임대로 전환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 분양으로 전환했는데, 당초의 분양가가 낮게 책정돼 있어 임대분양 전환가가 낮게 잡혔고, 결국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고, 어렵사리 이들 고비를 잘 넘겨 왔습니다. 고비를 계속 겪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키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변에서 함께 사업을 하던 분들이 자꾸 사리지는 걸 보면 그간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해 있었던 ‘2015 주택건설의 날’ 행사에서 김수연 대표가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입주민들의 신뢰와 관리 통해 하자문제 해결

정림건설이 다른 건설업체들과 특별히 다른 점 하나는 하자 때문에 입주자들과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완공된 후 단지내에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것이 입주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다른 업체들처럼 하자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관리의 측면외에 다른 요인도 숨어 있다. 곧 철저하게 현장을 챙기는 김 대표의 주택건설철학이 그것이다. 집을 지을 때 현장을 챙기는 것은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몸에 밴 습성이기도 하다. 1970~80년대에 주택사업을 시작한 경영자들에게서 대체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사업을 할 당시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그는 현장에 상주하면서 인부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그러다보니 현장의 상황을 누구보다 꿰뚫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도 집의 외관만 보고도 어떤 집을 어떻게 완공했는지 알 수 있다. 또 자재만 보고 언제 지은 집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는 것도 문제’라고 털어놓는다. 더러 모르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대표가 현장에 나가 살피다보면 답답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런저런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여간만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현장점검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장을 아는 경영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저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네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짓겠느냐, 네집이라고 생각하고 완벽하게 하라’라고 당부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집을 지어도 문제가 생기기 십상인데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 단독주택을 지을 때부터 그런 생각으로 집을 지어 신뢰를 얻었던 것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림건설은 다른 건설업체들과 달리 하자문제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집을 철저히 짓기도 하거니와 준공후에도 관리자를 상주시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욕심은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영

‘사람은 집을 짓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이는 정림건설의 기업 슬로건이자 홈페이지 인사말의 서두이기도 하다. 영국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의 말로, 이젠 집도 집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가 됐음을 의미한다. 이 한마디가 바로 정림건설과 김수연 대표의 주택건설 정신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내가 만드는 집을 통해 더 많은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음을 생각하고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의미일 터다.

 

김 대표는 그간 회사의 외형성장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 규모로도 골치아픈 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회사를 더 키우면 얼마나 더 어려운 상황이 닥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파트 건설 사업의 경우 전체 사업비의 규모가 엄청나게 큽니다. 단지가 클 경우 몇천억원까지도 훌쩍 넘어갑니다. 저의 경우 1000억원까지는 그런대로 문제가 생겨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규모를 넘어가면 그건 제 손을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죠.”

 

그는 회사가 한번 부도를 맞으면 회생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주변에서 숱하게 봐 왔다.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하면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그게 잘못되면 결국 모두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가 회사의 안정적인 운영을 최우선에 두는 연유이기도 하다.

 

“제가 1992년부터 협회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분들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분은 몇분 안됩니다. 당시 울산·경남지역에서 사업을 크게 한 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때 ‘공격적인 경영’이란 말이 풍미했던 때도 있었지만, 실제 공격적 경영을 한 업체들은 대부분 쓰러졌습니다.”

 

“정부 정책, 규제 줄여 시장자율에 맡겨야”

“아파트 사업은 이제 거의 한계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택보급률도 이미 100%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대량주택공급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여서 주택수요 자체가 늘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주택건설업계에서도 이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수연 대표는 요즘 비교적 좋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주택시장도 올해가 고비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전반적인 경기가 부진한 점을 감안해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매스컴 등에서 주택과잉공급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집단대출 규제움직임 등으로 시장이 다소 위축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아파트 시장의 경우 대도시 등에서는 어느 정도 현재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중소도시 등에서는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아파트의 퇴조와 함께 앞으로 2~3년후에는 전원주택이나 펜트하우스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택업계에서도 이같은 시장변화를 주시하면서 나름대로 사업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앞으로 우리나라도 임대주택이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주택부족 문제가 해소되면서 국민들의 주거의식이 소유에서 거주로 옮겨가고 있어 외국처럼 임대주택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뉴스테이 사업도 그런 추세를 반영하는 정책의 일환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수연 대표는 주택시장의 과열우려는 사라진 만큼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큰 틀에서는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서 경기를 좌우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근의 중도금 집단대출 등 대출규제가 이루어지는 것 또한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정부에서 간섭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됩니다. 최근의 주택시장 상황도 그간 각종 규제를 통해 묶어 놓았다가 현 정부들어 규제를 계속 풀어주면서 비로소 살아나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규제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의 자율기능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의 대출규제 또한 정부의 의도와 달리 시장의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좀더 멀리 보고 시장의 기능을 살리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으면 좋겠습니다.”

 

도시재정비 사업은 정부차원의 지침 필요

최근의 집단대출 규제 움직임과 관련, 김 대표는 “실적이 좋지 않은 업체에게는 이것이 실제적인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는 주택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기실 몇몇 업체들은 중도금대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분양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요즘 대도시에서 도시재정비 사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소규모 난개발을 막는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지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도시재정비 사업을 민간에 맡겨 두어서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주민들간에도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계획적인 재정비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곳이 소규모개발로 난개발이 될 우려도 크다는 것이다.

 

울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울산에서도 도시재정비 사업이 필요한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느 지역의 경우 그 지역의 절반 정도가 이미 원룸으로 지어진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재정비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렵다. 정림건설 또한 재정비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주민간 의견통일이 안돼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정비 사업의 경우 정부에서 방향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민의견이 어느 정도 수렴되면 재정비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현 실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도시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원활하게 사업추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울산경제 성장 위해 신성장동력 필요

얘기가 자연스럽게 울산의 지역경제로 옮겨간다. 그는 앞으로 울산에서 주택시장의 움직임이 계속 유지되려면 울산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울산시에서는 2018년까지 인구 150만명으로 성장목표를 잡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실제 인구가 그만큼 늘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경제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울산의 경우 조선업 불황에다 석유화학 등이 주력업종인 온산공단 등도 사양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미 천명한 바 있지만, 현대중공업 등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나마 현대자동차 정도가 울산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앞으로 울산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울산경제를 지탱해오던 조선업이나 공단 등이 침체되면서 공장이나 설비도 노후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로자 수도 줄어들고 있다. 울산항만도 자동차 출하 부두외에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고, 수출이 줄면서 컨테이너도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이들 공장 근로자들의 사택부지 등 팔려고 내놓은 땅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따라 지역 주택시장도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울산은 공단이 많은 지역이어서 유동인구가 많다. 여기에다 수익형 부동산 붐까지 일어 그간 원룸 등의 수요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룸도 공급이 많아져 월세가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울산의 주택보급률은 120%에 이른다. 따라서 울산에서 주택시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그만큼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몇차례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최근에도 구조조정 문제가 지상에 보도되기도 했다. 조선업의 불황이 깊어지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울산의 지역경제는 물론 주택시장의 수요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울산·경남지역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보면 조선업의 불황으로 울산은 물론 거제지역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울산의 경우 조선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만 창원·진주쪽은 그런대로 경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택 및 건설부문이 살아나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이 점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울산의 경우 상주인구는 116만명 정도지만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150만명 정도에 이른다. 원룸이 많이 건립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원룸은 소규모 단위의 필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정작 도시재정비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 기여 등 사회공헌활동도 꾸준

김수연 대표는 지금도 욕심이 없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영위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기업의 오너나 경영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기업이 돈을 번다고 해서 그 돈이 곧 자신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해 왔다.

 

“만일 기업을 운영해서 100원을 벌었다고 해도 세금 등을 내고나면 기업에 다시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 남은 돈도 대표이사의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다시 사회에 환원해주어야 할 돈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회사를 잠시 맡아서 운영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생각처럼 정림건설은 그간 주택사업을 영위해오면서 나름대로 사회기여활동도 적지 않게 해 왔다. 대한주택건설협회에서 매년 펼치고 있는 국가유공자 주거여건개선사업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국가보훈처 등으로부터 표창이나 감사패 등을 받기도 했다.

 

또 지역의 향토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도 적지 않은 기여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의 환경개선을 위한 사업을 비롯해 낙후지역 마을의 지원사업도 펼쳤다. 또 지역내 노후주택의 환경정비나 시설물 재건축 사업에도 참여했고, 위험건축물의 담장보강공사, 마을 통행로 확장사업 등도 지원했다.

 

김 대표는 요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감회 또한 적지 않다. 안동의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사업에 쫓겨 달려오다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하고싶은 일도 제대로 못해보고 살아왔다는 허무함이 마음 한 구석에 밀려 오더라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산업포장을 받았으니 기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느낀다.

 

그는 한때 독서가 취미이기도 했으나 요즘은 시력이 안좋아지면서 독서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의 양은 줄었지만 대신 영화나 골프·운동 등을 새로운 취미로 삼아 즐긴다.

 

정림건설은 지금까지 1400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해 왔다. 공급주택수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쌓았다. 최근에는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주택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시장의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에서 10년전쯤부터 실버타운 쪽으로도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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