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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부터 배운 건축, 구겐하임미술관]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낸 구겐하임미술관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70세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의 어떤 작품과도 다른 새로운 작품이었다.그가 유럽에 있을 때 바티칸 박물관에서 영감을 받은 라이트는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냄으로써건축의 위대한 천재를 설명하는 좋은 예로 꼽힌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구겐하임미술관_뉴욕맨하탄에 위치해 있다.

 

그리스, 로마건축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로마네스크와 고딕건축의 중세건축을 만들어 냈고, 그리스와 로마건축의 위대함을 다시 찾은 것이 르네상스건축이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와 중세의 건축양식과 르네상스의 건축양식이 변증법적으로 진화해온 과정이 세계건축사의 흐름이다.

 

1 바티칸박물관 (舊 바티칸궁) 2 바티칸박물관_내부모습_천창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현대건축은 건축의 요소와 재료가 달라져 수공업시대의 역사건축과는 다른 건축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등장한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역사건축의 변용이 아닌, 전례 없을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였다. 과거의 문화유산으로부터가 아니라 신(新)기계문명에서부터 배우자는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주장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각광받았다.

 

▲구겐하임미술관_내부모습_천창과 나선형계단

 

 

역사건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들

그러나 위대한 건축가였던 르네상스의 팔라디오와 근대건축의 싱켈조차도 그리스, 로마시대의 건축을 변용하여 그들의 건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과거와의 단절을 주창했던 현대의 모더니즘 건축조차도 부지불식간에 역사건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는 예가 현대건축의 최고걸작 중 하나라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미술관이다.

 

▲구겐하임미술관_내부. 로비에서 갤러리와 천창을 바라본 모습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는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현대건축가이다. 유기적 건축이란 말로 대표되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축설계로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생전에도 매우 유명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 남아 있다.

 

▲구겐하임미술관_내부. 갤러리로 사용되는 나선형계단의 모습

 

미국 위스콘신 주 리칠란드 센터에서 태어난 라이트는 위스콘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에 위치한 당대의 유명건축가였던 루이스 설리번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1894년에 설리반 사무실에서 독립한 후 자신의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개인주택 설계에 집중하였으나, 20세기 이후 오피스, 교회, 은행 등 중규모 이상의 건축설계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루이스 설리번의 후계자로서 시카고 학파를 지도하면서 미국의 현대건축을 이끌었다.

 

1 구겐하임미술관_내부. 상부층갤러리에서 로비를 내려다 본 모습 2 구겐하임미술관_그외 내부모습 모음

 

라이트의 초기 작품인 주택 프레어리 하우스(Prairie House)에는 그의 출생지인 영국 웨일즈와 아메리카 대륙의 대평원과 그가 심취했던 일본판화의 영향이 담겨 있다. 라이트가 건축주 부인과의 스캔들로 시카고의 상류사회로부터 십수년간 추방당했다가, 다시 돌아와 만든 작품이 낙수장(Fallingwater)이다.

 

낙수장은 프레어리 하우스의 다음 단계의 진화였다. 낙수장으로 재기했던 라이트가 그의 나이 70세에 만든 것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레어리 하우스나 낙수장, 그리고 라이트의 그 어떤 작품과도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작품이었다.

 

▲바티칸박물관_내부. 계단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바티칸 박물관의 나선형 계단

라이트가 위대한 건축가로 평가받는 것은 라이트 이전의 미국 건축가들 모두가 유럽건축을 흉내내었으나 라이트는 프레어리 하우스와 낙수장을 통해 유럽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라이트로 인해서 미국건축이 유럽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렇게 나타난 것이 유럽 현대건축의 큰 흐름을 이끈 분리파 건축과 바우하우스 건축이다.

 

▲바티칸박물관_내부. 나선형계단

 

유럽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마다했던 라이트가 첫 황금시대를 지나 시카고의 상류사회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찾아간 곳이 유럽이다. 40세의 라이트가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의 문화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듯, 유럽의 건축을 거부했던 50세의 라이트가 유럽에 도망가 살면서 유럽을 받아들인다.

 

모든 천재는 위대한 러너(learner)라는 말이 있다. 천재는 자신의 것이 충만해서 끊임없이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호수와 같이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배움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호수가 되느냐 늪이 되느냐는 그의 역량이다. 라이트가 유럽을 방황할 때 영향을 받은 무엇인가로부터 구겐하임 미술관이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바티칸 박물관(舊 바티칸 궁)의 나선형 계단이다.

 

▲바티칸박물관_그외 내부모습 모음

 

바티칸 컴플렉스는 교황청과 교황의 침소와 20여개 이상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 전체를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은 걸린다. 피오클레멘티노 미술관, 시스티나 예배당, 라파엘로의 방은 사람이 가득차 밀려다닌다. 

 

그러나 라이트는 세계 최대 기독교 미술의 컬렉션인 바티칸 박물관과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라파엘로 등 천재들의 작품들보다, 건축가인 쥬세페 모모가 설계한 절충주의 작품인 바티칸 박물관의 나선형 계단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겐하임(위) VS 바티칸박물관(아래)_나선형계단 비교

 

구겐하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티칸 박물관의 흔적은 계단뿐만이 아니다. 구겐하임의 천창에서도 쥬세페 모모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바티칸 박물관은 라이트에게는 영감의 시작이었을 뿐, 바티칸의 나선형 계단을 본 어느 건축가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바티칸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출발 아이디어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결과물은 엄연히 다른 작품이다.

 

▲구겐하임(왼쪽) VS 바티칸박물관(오른쪽)_천창 비교

 

 

과거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하다

가고싶은 건축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서 무엇을 보고 알아야 하는지, 모방을 넘은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하여 바티칸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을 다루었다. 라이트는 모방이 아닌 배움으로서, 바티칸 나선형 계단의 모습과 천창을 과감하게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했다.

 

▲구겐하임(왼쪽) VS 바티칸박물관(오른쪽)_나선형계단 비교

 

천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부터 배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천재의 능력은 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완성에 있다고도 한다. 즉, 천재는 타고난 것으로가 아니라 이룬 것으로 천재가 된 것이다. 

 

천재는 과거로부터 배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고, 동시대와 후대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라이트와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러한 건축의 위대한 천재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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