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신청 광고문의
  • 주택저널 E-BOOK
  • 광고 배너1
  • 광고 배너1
  • 광고 배너1
  • 광고 배너1
수익형 주택 하우징
·Home > 피플&컬처 > 컬처
[도예와 회화의 새로운 만남]
김현종의 도예화

이천의 한 농가에서 십수년 째 도예화에 천착한 김현종 작가를 찾았다.

도예화는 도자라는 오브제에 회화적 표현을 담아내는 장르다.

도자 위에 철심으로 새긴 그림이 주는 독특한 감상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차분하고도 따뜻한 관조를 만나볼 수 있어 특별하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촬영협조 김현종작가 010-8869-4703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김현종(61)은 은둔형 작가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에 자리한 아담한 농가에서 도예와 회화를 접목한 ‘도예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는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말이 아닌 작품으로 보여주는 존재인지라, 순리대로 흘러가다 보면 알아보고 찾아오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는 언제나 그래요. ‘정말로 내 작업이 좋다면 찾아낼 것이고,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면 평범하게 묻히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욕망을 다 던진 듯 초탈한 김 작가의 인생사는 파란만장하다. 동국대학교에 들어가 서양화 공부를 시작했으나 군대 제대 후 학교를 떠나 전라도 광주로 내려갔다. 평면적인 표현법에 만족하지 못한 채 콜라주, 조각 등을 접목하는 실험을 즐겨왔던 그에게 서양화 정규 코스가 도통 맞지 않았던 탓이다.

 

산Ⅰ 80×41㎝ 도자판 아크릴 혼합재료 

 


떠도는 영혼에서 상생, 자연으로

광주에서 그림 깨나 그리는 것으로 촉망받던 젊은 화가는 1980년 겪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크나큰 소용돌이에 빠진다. 당시 그의 나의 26세. 지금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그날의 기억들은 ‘떠도는 영혼들의 노래’라는 시리즈에 담겨, 1980년 가을과 2001년 봄 세상에 나왔다.

 

전시를 열어놓고도 줄곧 술로 마음을 달래던 작가의 작품은 남김없이 팔려나갔다. 긴 시간이 지난 후 기적처럼 작가의 품으로 돌아온 그림 한 점만이 지금의 작업실에 빛바랜 기억처럼 걸려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진격하는 형상이 마치 진혼곡처럼 무겁고 슬프면서도 역동하는 군중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매일 사람만 그렸어요. 젊어서 그린 습작조차도 온통 사람의 모습이더군요. 나의 자화상이자 시대의 자화상이었겠죠.”

 

김 작가의 자화상은 2003년 열린 3번째 개인전에서 전기를 맞았다. 옹기토와 백자토로 만든 수천 개의 토우 군상을 설치, ‘상생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이슈를 끌었다. 당시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장을 점령한 군상들은 종전 작품에서 보인 데모 스크럼을 풀고 개개인이 춤추는듯한 몸짓으로 변모했다. 폭정의 시대를 넘어 민주화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그의 자화상도 새 모습을 찾은 것이다.

 

1 작업실 마당 한켠에 남겨진 토우. 작가는 외부 환경에 노출됐을 때 훼손되기 쉬운 테라코타 방식을 대신해 도자에 회화 작업을 접목하는 도예화 장르를 개척했다. 2 2003년 5월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는 ‘상생의 축제·생명의 나무·가족’이라는 화두의 토우들이 등장했다. 3 김현종 작가가 직접 빚은 수천개의 토우가 축제를 열고 있다. 춤추는 토우 위에는 5.18민주화항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 ‘떠도는 영혼들의 노래’가 걸렸다.

 

이후로도 계속된 그의 자화상 찾기 여행은, 어느덧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에 도달해 있다. 한 평생 단 한 점의 풍경화도 그린 적이 없던 그가, 몇해전 부터는 아내와 즐겨 찾는 남한강변의 호젓한 풍경을 도판에 새겼다.

 

이 그림을 본 고신대학 전광식 총장은 “앙상한 나뭇가지, 운무가 낀 듯한 그윽한 강, 그리고 뜬구름 흐르는 하늘 등 강변풍경은 마치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는듯하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차분하고도 따스한 관조가 담겨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남한강Ⅱ 80×44㎝ 도자판 아크릴 혼합재료

 

앞으로 예정된 그의 여행은 우주로 이어진다. 여전히 춤추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제는 새와 물고기, 자연의 요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우주만상의 원리를 깨달은 노장 작가의 여유로움을 담아낼 계획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죠. 그런데 자연은 늘 그대로에요. 사람이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지, 자연은 절대 그러지 않더군요.”

 

앞서 ‘나의 길을 인위적으로 엮기보다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가고 싶다’고 말한 그의 저의가 비로소 읽히는 대목이다.  

                                                 있음에-아름다운것들Ⅰ 87×54㎝ 도자판 아크릴 혼합재료

 


회화, 흙과 만나다

김 작가는 2001년 무렵 도예의 고장인 경기도 이천으로 이주했다. 잠시의 토우 작업이 이유였지만, 차츰 도자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아예 이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점토로 형태를 만들어서 구운 테라코타는 외부 환경에 취약해요. 고민 끝에 찾은 답이 내구성이 좋은 도자를 활용해 보자는 거였지요.”

 

그는 도자를 직접 굽고(초벌), 그 위에 상감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후, 다시 굽기(재벌)을 거쳐 완성하는 도예화의 장르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도자 표면에 철심으로 선을 파낸 뒤 검은 흙으로 메꾸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상감기법으로 표현한 그림이 기가 막히게 좋아요. 붓으로 해서는 나오지 않는 느낌이 있거든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다고 할까요.”

 

그의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회화와 도자를 접목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과, 도자판에 새긴 그림을 하나의 화폭에서 맺음하거나, 3차원 도자를 화폭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인과 장미Ⅰ 65×65㎝ 도자판 아크릴 혼합재료

 

그동안 우리 미술계에서는 도자를 중심으로 회화를 곁들이는 작품을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자를 오브제로 한 회화작업에 있어서는 김 작가가 독보적이다. 그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도예작가가 그림을 잘 그리기란 쉽지 않고, 회화작가가 도예를 잘 하려면 긴 시간을 투자해 내공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화와 도예를 접목하는 작업에 10년 넘는 시간을 고스란히 집중했다. 한 평생 어떤 작품을 팔 수 있을까 보다 어떤 작품을 남길 것인가에 더 골몰해 왔던 그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현종 작가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대해서도 내 나름의 은유적 표현법으로 이야기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작품을 통해 시대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었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왼쪽으로 이동
오른쪽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