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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서지방 기행 01 다카마츠&나오시마]
건축을 통해 폐허의 섬이 예술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다

일본 관서지방은 일본의 전통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관서지방에 있는 섬의 하나인 나오시마에는 폐허가 된 섬에 예술의 옷을 입힌 일본의 현대건축가 안토 타다오의 건축철학이 담겨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메지성과 천년수도인 교토는 금각사와 청수사를 비롯해 일본 고대 도시의 모습이 살아 있다. 다카마츠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관서 해안지방 기행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취재 권혁거 사진 신정철((주)건축사사무소AD 그룹 대표건축사)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가가와 현 청사의 로비. 건물의 설계도 등을 비롯해 단게 겐조의 스케치와 건물 모형 등 건물의 건립과 관련된 내용을 전시해 놓았다.

 

지난11월24일∼28일까지 4박5일동안 2015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자 및 후원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 관서지방의 세토내해(內海) 해안지방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세토내해는 일본의 본토인 혼슈와 시코쿠, 규슈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바다를 말한다. 즉 섬 안쪽의 바다로, 10개가 넘는 현이 세토내해에 걸쳐 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다카마츠(高松) 시이다. 시코쿠(四國) 섬의 가가와(香川) 현청 소재지로, 우동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이른바 시누키 우동의 본고장이다. 시누키는 가가와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다카마츠에 도착한 후 여장을 풀기 전에 가장 처음 들른 곳은 가가와 현청이다. 1955년 단게 겐조(丹下健三)가 설계한 건물이다.

 

 

나오시마의 거리. 일본 전통마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단게 겐조는 20세기 세계적인 건축가 중 한명이다. 일본에서는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고, 일본 현대건축의 기조를 확립한 인물로 꼽힌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나 요요기 국립경기장 등 대개 공공건축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건물도 그중 하나다.

 

현청에 도착한 시간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어서 건물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현청 로비에는 현청 건물의 설계도와 모형, 단게 겐조에 대한 소개글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1층 내부에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천장은 나무패널로 마감한 후에 사이사이로 매입등을 설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다카마츠 항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호텔 옆에는 다카마츠의 심볼타워가 서 있고, 다른 쪽으로는 역사가 있다. 역사 옆에는 커다란 쇼핑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퇴근하는 시민들이 장을 보고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역사쪽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네 아침의 일상풍경과 다르지 않다.

 

 

나오시마 옛마을의 골목과 가옥의 모습. 창틀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옛마을에서 만나는 빛의 공간들

이튿날 일정은 나오시마와 구라시키다. 나오시마는 다카마츠에서 배로 약 50분 정도 가야 하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트레블러(Traveller)’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7대 명소‘의 하나로 소개될 정도로 잘 알려진 섬이다. 특히 옛 마을을 비롯해 섬 곳곳에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의 손길이 스며 있다.

 

이곳은 과거 제련소와 염전이 있던 곳으로, 이들이 떠난 후 쓰레기만 쌓인 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것을 일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聰一朗) 회장과 안도 타다오가 힘을 합쳐 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탄생시킨 섬이다. 베네세 그룹은 일본의 출판 및 고령자 관련 전문기업으로, 후쿠다케 회장의 문화에 대한 열정과 안도 타다오의 창작혼이 함께 빚어낸 걸작품인 셈이다.

 

나오시마에 내리면 가장 먼저 옛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의 골목길이나 신사 등 옛 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마을의 일부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미술관이나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활력이 넘치는 마을로 바뀌었다.

 

 

마을에 있는 집을 개조해 만든 안도미술관. 벽으로 난 작은 틈은 안도가 즐겨 쓰는 건축적 틈새 공간이다.

 

마을 입구에는 안도의 작품이 있다. 이른바 ‘빛의 건물’이 있는 작은 공원이다. 빛의 건물은 안도가 건물을 설계하고 내부의 빛의 공간은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만든 것이다.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완전한 암흑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한다. 이곳에는 놀이터와 화장실도 있는데 모두 안도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주에도 안도와 터렐이 함께 만든 전시관이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안도의 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오래된 전통가옥의 내부를 개조해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안도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곳 지하공간에는 안도가 설계한 ‘빛의 교회’의 원리를 설명해 놓은 공간과 설계도가 있다. 십자가의 모양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빛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마을에 있는 절의 입구. 절과 신사를 구분하는 차이는 입구에 새 모양의 조각천이 걸려 있느냐의 여부다.

 

조금 더 들어가면 카도야(Kadoya, 角屋)라는 건물이 나온다. 이곳 역시 200년쯤 된 전통가옥을 명상의 공간으로 바꿔 놓은 곳이다.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어두운 방안 가득한 물위에서 LED 조명으로 빛을 내는 시간의 흐름을 만날 수 있다. 더러는 천천히, 더러는 쏜살같이 지나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다.

 

마을 안쪽에는 신사와 절도 있다. 일본에는 절도 많고 신사도 많은데, 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입구에 걸린 5개의 새 모양의 조각천이다. 새 모양의 조각천은 인간의 영혼을 천상으로 옮겨다주는 것으로, 이것이 있으면 신사이다. 마을 안쪽에 있는 신사의 가장 안쪽에는 신전이 마련돼 있다. 일본에서는 각 가정에서도 개인신전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이 마을에는 옛 가옥을 리모델링해 예술공간으로 바꿔놓은 곳이 더 있다. 염전을 만들던 장소를 섬의 바다를 떠올리는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예전 동네사람들이 모여 바둑을 두던 공간도 재생해 놓았다. 또 마을 한쪽에는 예술적으로 탈바꿈한 목욕탕 건물도 있다.

 

 

마을 뒤쪽 신사 내부에 있는 신전. 신전으로 오르는 유리계단이 특이하다.

 

 

‘먹고 잠잘 수 있는’ 미술관의 발상

이 마을의 반대편 쪽에는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가 있다. 베네세하우스는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을 함께 만든 독특한 미술관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상을 통해 ‘먹고 잠잘 수 있는’ 미술관 시설을 구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 구상은 대성공을 거둬 비싼 음식값과 숙박료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잡기가 어렵다.

 

 

‘아이러브유’라는 이름이 붙은 목욕탕. 여기서 ‘유’는 일본어로 ‘탕’을 의미한다.

 

베네세 하우스는 박물관외에 오벌(Oval), 파크(Park), 비치(Beach) 등으로 나누어 건립돼 있다. 이중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오벌 베네세 하우스다. 처음 오벌 하우스를 짓고 난 후 숙박료가 비싸서 오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금 낮은 가격의 베네세 하우스를 지은 것이 파크와 비치다. 각각의 건물마다 모두 미술관이 있다.

 

 

베네세하우스(오벌)의 외관. 안도의 작품이다.

 

베네세 하우스 인근의 해안에는 연계된 작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절벽에 덜렁 그림 한점이 놓여 있는가 하면 배를 엎어놓은 듯한 모양도 있다. 낡아 쓸모없어진 배를 버린 것인가 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실은 이것도 작품의 하나다. 이처럼 이곳에는 미술관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섬 전체를 온통 예술작품으로 채우고 있다. 그래서 예술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베네세하우스의 윗부분이다. 왼쪽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베네세하우스는 식사와 숙박이 가능한 미술관이다.

 

베네세 하우스 위쪽에는 지중(地中)미술관이 있다. 지중미술관 또한 안도의 작품으로 전시공간이 모두 지하에 들어가 있다. 지상으로는 빛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오픈돼 있다. 여기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앞서 말한 제임스 터렐, 그리고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모네의 작품은 연못속에 핀 수련을 주제로 한 그림인데, 모두 같은 작품을 크기만 다르게 하여 3개의 벽면에 전시해 놓았다. 지중미술관 안내센터에서 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의 입구에도 모네의 그림과 같은 모양을 본떠 만들어놓았다. 실제 경치와 그림의 모습을 함께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배려로 보인다.

 

 

베네세하우스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 오른쪽 언덕과 해안에도 작품이 있다.

 

이곳에서도 빛을 주제로 한 터렐의 작품은 인상적이다. 겉에서 보면 그냥 빈 허공인데, 그속으로 들어가보면 또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2차원으로 보이던 공간이 3차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공간속에서 나올 때도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히 빛의 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빛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지중미술관으로 오르는 입구에 조성된 연못. 모네의 그림 ‘수련’을 본따 만든 것이다.

 

마리아의 전시관에는 가운데 커다란 구형의 물체와 함께 벽에 금장식으로 된 막대들이 설치돼 있다. 위로는 천창이 있어 빛을 받아들인다. 전시공간 입구에서 구형의 물체까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따라 구와 금장식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 화가의 미술관

나오시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우환(李禹煥) 미술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우환은 한국화가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그의 미술관이 이곳 나오시마에 건립된 것은 후쿠다케가 유럽여행에서 이우환의 작품에 반하면서 비롯됐다. 당초 이우환은 ‘미술관은 작품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해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이곳을 둘러보고 후쿠다케와 안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동의했다고 한다.

 

 

이우환 미술관. 넓은 잔디에 그의 작품인 철과 돌이 놓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철과 돌이 대화하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상징한다.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미술관밖에는 커다란 철과 돌이 놓여 있는데 ‘철과 돌의 대화’라는 작품이다. 철은 현재를, 돌은 과거를 의미한다. 즉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커다란 하얀 종이에 달랑 점 하나만 찍힌 작품도 있다. 점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실체와 여백의 공간이 분리된다는 의미다. 나오시마에 한국화가의 미술관이 있다는 점에 뿌듯함도 느낀다.

 

나오시마 해안에는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빨간 호박과 노란 호박이 있다.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작품으로,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호박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다. 나오시마의 안내엽서나 포스터에 빠지지 않는 대표작품이다. 이 호박이 있음으로 바다와 해안의 풍경이 달라진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1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야경. 물빛에 비치는 야경이 아름답다. 2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만난 중정. 건물안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오시마를 둘러보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섬을 여행하는 관광객들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섬 입구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을 일주하는 이들이다. 오르막과 경사 등으로 걸어서 섬을 둘러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늦은 오후 나오시마 섬을 나와 오까야마(岡山) 현에 있는 구라시키(倉敷) 시로 향한다. 구라시키는 그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창고가 많이 있던 곳이다. 도쿠가와 시대때 이곳이 쌀과 목화, 기름의 집산지로 이들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이곳의 미관지구는 전통창고를 그대로 살려 새롭게 리모델링한 곳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고라쿠엔. 일본 3대 다이묘 정원의 하나다.

 

구라시키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거기에 약한 이슬비까지 내렸다. 낮에 보았으면 아름다웠을 풍경들을 야경만 보게 된 점이 아쉽다. 그래도 강을 따라 전통적인 건물들이 늘어선 구라시키의 야경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강에는 배도 띄워져 있다. 얼핏 스친 풍경에도 아름다운 거리임을 느낄 수 있다.

 

이곳 또한 예전의 창고를 박물관이나 미술관, 호텔 등으로 개조했다. 전통적인 일본의 중정을 만날 수도 있다. 이곳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꼬박 하루로도 모자란다고 한다. 일본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구라시키 미관지구 한 곳만 제대로 둘러보아도 된다’고 할 만큼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메지 성의 본채. 일본의 성을 대표하는 성의 하나로 대천수와 소천수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메지 성

오까야마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일본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는 날, 일본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고라쿠엔(後樂園)을 찾았다. 이곳은 오까야마의 다이묘(大名)이던 이케다 쓰네마사(池田綱政)가 14년동안 조성한 정원으로, 미토(水戶)의 가이라쿠엔(偕樂園)과 가나자와(金澤)의 겐로쿠엔(兼六園)과 함께 일본의 3대 다이묘 정원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다이묘’란 성을 다스리던 영주를 말한다.

 

고라쿠엔은 오까야마 성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성과 정원은 해자(垓字)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해자’는 성의 방어를 위해 성 주변에 만들어놓은 수로를 일컫는 말이다. 공격하는 측에서는 이 물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성을 공격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해자는 로마시대때부터 한 지역의 방어를 위해 만들었다.

 

 

성의 본채에 이르기 위해서는 몇 개의 성문을 거쳐야 한다.

 

고라쿠엔은 커다란 연못과 작은 산, 그리고 각종 꽃과 나무들로 조성돼 있는 정원이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들을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축제기간이었다. 그러나 규모가 크다는 것외에는 특별한 감동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작은 정원을 확대한 듯한 느낌이다.

 

다음 행선지는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 시에 있는 히메지 성이다. 히메지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으로, 나고야(名古屋), 구마모토(熊本) 성과 함께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3대 성의 하나로 꼽힌다. 이 성은 2차대전 당시 성의 문화유산으로 인해 미군의 폭격을 피했다고도 전해진다.

 

 

히메지 성의 내부. 각 층마다 칼을 걸어두는 무기고가 있다.

 

히메지 성은 각 성의 영주들간에 전투로 얼룩진 고대 일본역사를 상징하는 성이다. 그런 만큼 일본 성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성 주위에는 해자가 있고, 성의 정문도 해자를 건너 바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꺾여 있다. 비단 정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의 본채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개의 문을 거쳐야 하는데, 각 문마다 이리저리 돌아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도록 돼 있다. 각 성문옆에 있는 벽에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 놓았는데, 공격하는 측이 성문을 돌파해 전진할 때 이들 구멍을 통해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성의 본채에 이르러서도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은 계단을 통해 몇 개의 층을 올라야 한다. 이를 ‘천수’라고 하는데, 중심이 되는 대천수와 주변의 소천수로 이루어져 있다. 대천수는 7층으로 구성돼 있어 꼭대기에 이르는 과정이 여간 지난하지 않다. 더구나 각 층마다에는 성을 지키는 무사들이 배치돼 있고 칼을 걸어둘 수 있는 무기고도 있다. 성의 모든 구조가 수비하기에 효율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히메지 성에 있는 니시노마루. 도쿠가와의 손녀인 센히메가 거처하던 곳이다.

 

그렇게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자 정작 있어야 할 다이묘는 그곳에 없다. 다이묘의 거처는 성밖에 따로 둔다고 한다. 대신 그곳에는 신전이 있다. 일본은 예로부터 워낙 많은 신을 섬기는 곳으로 잘 알려진 나라다. 꼭대기까지 올라온 관광객들이 신전에서 자신의 소원을 빌며 절을 하는 풍경이 눈길을 끈다.

 

성을 공격하는 일이 이처럼 어렵다보니 후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이어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보다는 회유와 협박 등을 통해 상대 다이묘들을 제압했다. 전쟁을 통해 상대의 성을 공격해 제압하려면 아군의 피해가 결코 적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메지 성을 둘러싼 해자. 적이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성의 한쪽 옆에는 사람이 거처하는 공간인 니시노마루가 있다. 이 거처는 도쿠가와의 손녀인 센히메가 거주하던 곳이다. 센히메는 당시의 성주의 아들인 혼다 다다토키와 결혼해 이 성에 살았다. 입구에서부터 100칸에 이르는 복도를 거쳐야 그녀의 거처에 이를 수 있다. 구중궁궐인 셈이다. 복도에도 여기저기 방들이 있지만 모두 마루방인데 비해 센히메의 거처에만 다다미가 깔려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이어서인지 평일인데도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특히 나이가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성의 꼭대기까지 열심히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람이 너무 몰리자 내부에서 관광객들을 안내하던 이들이 한쪽 통로를 막고 통행을 시켜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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