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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틴트 판화가 이준규]
“무수한 점으로도시의 내면풍경을담았죠”

세상사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속사정을 알아야 가치가 보이는 법이다.

판화기법 중 하나인 ‘메조틴트’야 말로, 딱 그런 장르다.

무수한 칼자국으로 표현하는 메조틴트는집요한 노동과 작가의 인내 없이는 결코 탄생되지 않는다.

그런 고됨의 결과물로 보여지는 화면은 부드러움의 극치라 할만하다. 20년 경력의 메조틴트 작가 이준규(45), 그를 다시 쳐다보게 되는 이유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window201301 40x60cm mezzotint 2013

 

 

느림의 미학을 대표하다

매조틴트는 느림의 미학을 대표할만한 판화 장르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떤 수를 써도 짧은 시간에 판화를 완성할 수 없다. 나의 경우 A4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한달이 소요된다. 동판에 약제를 부어서 녹이는 에칭기법과 달리, 메조틴트는 농도 조절을 일일이 손으로, 그것도 작은 점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1 작가가 원하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동판 위에 무수한 점을 찍어야 한다. 2 완성한 동판을 프레스에 넣고 종이에 찍어내는 과정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메조틴트(mezzotint)는 17세기 회화 작품을 복제하는데 이용됐을 정도로 매우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 외국에는 메조틴트 컬렉터와 작가층이 형성돼 있어 부러운 점이 많다. 해외에서는 일반 회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메조틴트만의 차별성을 인정해주고 있다. 메조틴트를 알고 봤을 때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과 미묘한 색조의 독특함은 헤어나기 힘든 마력을 지니고 있다.

 


 window201309 10x18cm mezzotint 2013

 

 

점으로 완성한 내면풍경

메조틴트 작업에는 꼼꼼함과 긴 인내가 필요하다. 판에 점을 찍어 블랙과 화이트로 구분되는 화면을 만드는데, 주로 동판을 사용한다. 동판을 스크랩퍼로 깎고 로커(침)라는 칼을 이용해 여러 방향으로 무수히 긁어내어 홈을 새겨 넣는 엠보싱 작업에만도 엄청난 힘을 쏟는다. 이렇게 해서 표현되는 부드러운 톤과 촉각적인 질감은 작가의 의도대로 풍부한 감성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특히 사전 스케치에 심혈을 기울인다. 디테일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명도와 채도까지도 조정해서 동판으로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정확히 드로잉한다. 완성한 판을 프레스기에 넣고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종이에 일일이 물을 먹여야하고, 프레스로 찍을 때나 찍은 후 액자를 만들기 위해 배접을 할 때도 한 치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므로 끝까지 집중이 필요하다.

 


 window200907 20X30cm mezzotint 2009

 

 

작은 세포들이 살아있는 느낌

꼼꼼한 성격과 극적인 디테일을 추구하는 나에게 메조틴트는 맞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진처럼 원하는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회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에 크게 매료됐다. 메조틴트 작가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기질이 맞지 않으면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업과정이 지난하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작업하면 관절에 무리가 올 정도니까. 나도 가끔씩 문득 ‘지금 뭐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매조틴트의 매력은 거부하기 어렵고, 완성된 후 느끼는 희열과 보람이 그 어떤 장르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window201305 13.5x20cm mezzotint 2013

 

 

삶터에서 서정적인 느낌찾기

내 작품은 공통적으로 우리들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쳐 흘러가는 여러 사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흔한 것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것들이 바로 우리 삶을 대변해주는 정서라는 생각에서다. 골목에서 바라보여지는 지붕들과 하늘의 텅 빈 공간들, 또는 회색의 벽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창문들이 나의 관심을 받으며 내 작품 속에서 저마다 주인공으로 하나하나 표현되어진다. 창문들 하나하나는 나의 삶과 함께 숨 쉬고 이어져가는 삶의 기억들이다. 마찬가지로, 그 창문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에게도 그런 공간이리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고, 내가 살고 싶은 집일 수도 있다. 조금씩 더 단조롭게 표현해 서정적인 느낌을 강조하면서, 내가 꿈꾸는 서정성 가득한 동네를 만들어 가고 있다.

 


a roof 201001 37x27cm mezzotint 2010

 

 

장 한국적인 풍경 담고파

최근 해외에서의 전시 기회가 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서정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기존에 작업했던 기와지붕과 기와담장의 풍경들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물보다는 담장이나 지붕을 아래쪽에 배치하고 넓은 하늘을 남겨두는 구도를 좋아한다. 건물의 창들도 개수를 줄이거나 크기를 줄여서 벽면의 여백 두기를 즐긴다. 서정성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그 빈 공간들에 저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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