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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억장치를 간직한]
북촌(北村)의 한옥마을

좋은 집은 사유의 영역을 존중하고 공유의 영역에서 예를 지키는 공간의 격식이 갖춰진 집이다. 여기에 이웃에게 더함을 주고 문명의 기억장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의 옛 한옥군이 그래도 좋은 집이다. 베이징의 후통과 같은 도시형 마을인 북촌의 한옥들은 삶의 가치,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집들이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명예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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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에 위치한 DBEW스튜디오

 

좋은 집은 좋은 삶과 어떠한 관계인가. 인간의 집은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인공의 세계이다.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좋은 삶의 장을 자기 몸에 담고 있는 셈이다. 좋은 삶은 좋은 집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좋은 집을 짓기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집을 아무렇게나 만드는 사람은 유일무이한 삶을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다. 좋은 집은 좋은 삶의 하드웨어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집이 좋은 집인가. 사람들은 멋있는 집, 보기 좋은 집,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집을 좋은 집이라 말하나 그것만으로는 좋은 집이 될 수 없다. 좋은 집에 살아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집은 좋은 삶의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된다.

 


 북촌한옥마을 거리의 모습

 

 

‘예(禮)’와 ‘더함’과 ‘문명의 기억장치’를 지닌 집

좋은 삶의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되려면 우선 자유스러운 집이어야 한다. 집이 사람을 구속하여서는 좋은 집이라 할 수 없다. 자유스럽다는 말은 멋대로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집에서의 자유스러움은 ‘예(禮)’와 같은 것이다. 자기를 억제하고 예를 따르는 것이 자유스러움의 시작이다. 어느 누구도 혼자 살지 않는다. 좋은 집은 사람마다의 사유의 영역을 존중하고 공유의 영역에서 예를 지키는 공간의 격식이 갖춰진 집이다.

 

집 안에서의 자유만큼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집 밖에서의 역할이다. 좋은 집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더함을 하는 집이다. 자기 혼자 잘난 집은 좋은 집이 아니다. 집에 속한 사람들에게 만이 아니라 집이 속한 이웃에게도 좋은 집이 좋은 집이다.

 


 북촌한옥마을의 모습

 

그러나 사는 사람에게 근원적 자유를 주고 바깥사람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주는 것만으로 좋은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집은 문명의 기억장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그 집이 속한 이웃에 그 집이 속한 문명의 기억장치를 일깨울 수 있는 시각적 요소를 가져야 한다. 국적불명, 시대불명의 건축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은 특정한 땅에 특정한 시기에 특정의 인간에 속한 것이므로 그 문명의 시일연대에 대한 기억장치를 가진 집이어야 좋은 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집이 되려면 자연과의 교감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자연에 세운 인간의 공간이므로 끊임없는 자연과의 대화와 교감이 가능한 집이라야 좋은 집이 되는 것이다. 자연은 나무와 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변화를 포함한 모든 것이 다 자연이다. 자연과 교감한다는 말은 자연을 대응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흐름과 변화가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사대문안 서울 분석도.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북촌 일대가 역사지구를 구성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도시한옥이 전통 주거형식으로 자리잡아

그러면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서울의 북촌(北村)에 남은 옛 한옥군이 그래도 아직은 좋은 집이다.

 

서울은 주산인 북악산과 남측의 목멱산, 동측의 낙타산, 서측의 인왕산 사이의 분지에 자리한 성곽도시로, 서울을 둘러싼 산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으로 모여 성곽의 동측을 지나 한강에 이른다. 주산인 북악산에 바로 이어 동측에 나란히 응봉이 있어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 그리고 응봉 아래 창덕궁이 자리잡았다. 따라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악산과 응봉을 잇는 산줄기의 남측에 자리잡은 북촌은 서울에서 왕궁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에 위치했다고 할 수 있다.

 


 수선전도. 순조 25년 경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서 전해지는 당시 서울지도

 

북촌은 3·1운동 당시까지도 세도가들의 대저택이 있던 곳이다. 영·정조 이후 노론이 세력을 잡으면서 고종 때까지 근 150년간 북촌은 노론세력의 거주지역이었다. 태조는 1394년 한양의 행정구역을 오행의 원리에 따라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부로 나누고 다섯 부를 다시 52방으로 분할하였다. 북촌지역은 북부로서 가회방, 안국방 등 여섯방으로 구성되었다.

 


 1934년 사대문안 서울의 모습.

 


 동궐도. 조선조 당시 서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912년 경성지도를 보면 지대가 낮은 아래지역의 중소규모 필지에는 중하급 관리나 중인의 한옥이, 지대가 높은 위쪽에 위치한 대형 필지에는 세도가의 한옥이 자리잡고 있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필지가 50평 내외의 중소형 필지로 분할되고 개발업자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건설된 과거의 한옥보다 단순화된 도시형 한옥이 1960년대까지 40여년간 북촌의 전통적 도시주거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북촌지역의 도시한옥은 1980년대 전체건물 2750여동중 절반이 넘는 1500여동이었으나 지금은 900여동만이 남아있다.

 


1 북촌에 위치한 아키반스튜디오.(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제공) 2 아키반스튜디오. 테라스에서 바라본 종로의 모습 3 아키반스튜디오.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정이 흐르는 골목과 이웃, 자연의 흐름이 배어 있는 집

좋은 집은 본질적인 내부공간의 자유로움과 타인과 공생하는 외부공간의 예(禮)를 갖는 집이기도 하고 나아가 문명의 기억장치를 끊임없이 인간에게 환기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집이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집이 좋은 삶의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되는 것이다.

북촌은 역사도시 서울의 삶의 기억장치를 간직하고 있는, 베이징의 후통(주택저널 2014년 2월호에 소개)과 같은 도시형 마을이다. 내부공간의 자유스러움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흐르는 골목과 이웃이 거기에 있고 역사와 지리의 기억장치가 남아 있으며, 자연의 흐름이 집 곳곳에 배어 있는 북촌의 좋은 한옥들은 삶의 가치,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집들이다.

 


 DBEW스튜디오. 자연과 건축과의 합일을 시도하였다.

 

북촌의 한옥들 말고도 좋은 집들은 많다. 자유로운 집, 남에게 더함을 주는 집, 문명의 기억장치가 있는 집,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모든 집은 당연히 좋은 집이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남기는 가장 큰 유물 중 하나가 바로 집이다. 집은 인간이 만드는 수 많은 것 중에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후대 사람들이 알게 하고, 또 다시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집은 삶의 의미와 내용을 영속시키는 삶의 상형문자이므로 아름다운 집을 남기는 일은 아름다운 삶의 하드웨어를 후손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좋은 집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컨대 좋은 집을 짓는 일은 좋은 삶을 사는 일이고, 좋은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선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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