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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중소기업진흥회장]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박상희 회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이다. 젊은 시절 사업을 일으켜 중견기업으로 키웠고, 1990년대에는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맡아 우리나라 중소기업 육성에 앞장섰다. DJ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직속으로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소기업정책 수립에 깊숙이 참여했다. 박상희 회장을 만나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취재 주택저널 편집팀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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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9월15일 오후 7시, 박상희 중소기업진흥회장이 경북대 산업대학원 최고산업경영자과정의 지역 중소기업 CEO 및 임원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 한국경제의 희망입니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이날 강연내용은 대기업중심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들이 내수진작과 해외진출의 주역이 돼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강연은 대구경영자총협회가 저출산·고령화 및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고 나날이 심각해지는 성장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다. 대구 출신인 박상희 회장은 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날 강연의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박상희 회장은 중소기업 육성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장 맡아 중소기업청 설립 주도

그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중소기업중앙회장직을 두차례 연임하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계를 이끌었다. 당시 그는 40대 초반의 최연소 민선회장으로서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중앙회 운영에 혁신을 가져왔다.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접목해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업무에 총력을 기울여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중소기업청의 설립도 이끌어냈다. 당시 중소기업에 관련된 업무는 산업자원부 산하 중소기업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 800여종에 달하는 중소기업 업종의 관련업무를 한 부서에서 감당하기에는 어렵다는 점을 내세워 중소기업부의 신설을 주장했다. 그후 그나마 중소기업청이 설립될 수 있었다.

 

또 대기업으로부터 협찬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연구원을 설립, 중소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소기업 임직원들의 교육훈련을 위한 중소기업개발원도 만들고, 중소기업 제품의 수출과 판매 증대를 위해 여의도에 중소기업전시관도 개관했다.

 

이에 더해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위해 자본금 300억원 규모의 기협기술금융도 설립했다. 당시 그는 중소기업의 원스톱 지원을 위해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보험공사, KOTRA 등을 통합해 제대로 된 중소기업지원기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이 일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회장을 그만두게 돼 아쉬워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기회있을 때마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정책기구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박 회장은 당시 재벌들만의 사업으로 인식되던 이동통신시장에도 2만여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움을 구성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업자선정을 위한 기준을 재벌 중심으로 바꾸는 바람에 탈락하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정부에 항의하면서 당시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받아 컨소시움에 참여했던 중소기업과 업종별 협동조합 등에 수백억원의 차익을 내 돌려주었다.

 

그때 번 돈이 종자돈이 돼 얼마전 중소기업 중앙회 본관건물의 리모델링과 상암동 중소기업 DMC 건축 등 굵직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한 각종 지원대책 등 여러 가지 시책 개발과 기존 지원제도의 문제점 개선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그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위상을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63빌딩에서 조달청장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국회의원시절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구성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두고 9988이라고 합니다. 이는 국내 총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총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소기업이 발전해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고용이 창출되며 중산층도 육성됩니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은 나라경제의 바탕이자 기둥입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박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만약 1조원의 자금이 있다면 이를 몇개의 대기업에 지원하는 것보다 10억원씩 1000개의 중소기업에 지원해 육성하는 것이 나라경제 전체를 위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튼튼한 중소기업이 국가산업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간 대기업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으며 역량을 축적해 왔습니다. 그 역량을 바탕으로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내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눈독을 들이면서 중소기업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2015 광주하계U대회 선수단 및 관계자 격려오찬에 참석한 박상희 회장(2015.07.23)

 

그는 2000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서도 중소기업을 위한 의정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가 판로에 있다는 점을 알고 정부 등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 구매하도록 했고, 중소기업협동조합과의 단체수의 계약 등도 명문화했다. 중소기업에 판로를 열어준 것이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그는 2002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으로부터 우수국회의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당시 여당인 민주당 추천에 의해서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중소기업을 살리는 대통령이 될 테니 도와달라’고 설득해 국회에 들어가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로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대통령 직속기구로 청와대안에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만들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 정책기구 있어야”

“지난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3개사의 매출이 국내총생산의 23.07%에 달합니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법위를 넓히면 이 수치는 35%로 더욱 높아집니다. 갈수록 대기업 편중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일부에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리딩컴퍼니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특정기업에의 쏠림현상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 수출이 하락세를 보이는 등 국가경제도 함께 휘청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중소기업을 키워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이 국가경제의 대들보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물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소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또한 제대로 된 중소기업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중소기업 정책기구의 구축과 위상제고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이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차관급 외청인 현재의 중소기업청 체제는 독립적 예산편성과 사업권이 없고 단순 집행기능만 있어 제대로 된 정책을 집행하기에 역부족입니다.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통령실, 총리실 등 상위 차원의 강력한 중소기업정책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정책 실행기구를 구축해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국경제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중소기업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스스로 젊은 시절에 창업해 중견기업을 일구어오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인들의 피부에 와 닿는 체감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6일 대구 노보텔에서 열린 대구경북 제4이동통신 대구경북 유치 위원회 발대식에서 박상희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부지런한 마당발’

그는 상업고등학교 졸업후 은행에 근무하다 20대 후반의 나이인 1978년 직원 2명을 데리고 미주철강(주)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992년에는 회사의 규모를 키워 동방제강을 인수해 미주제강(주)으로, 다시 미주금속(주)으로 상호를 바꿨다. 사업분야도 철강과 관련된 자동차부품사업과 건설분야, 엘리베이터 사업부문까지 진출했다.

 

철강사업을 하면서 그는 한국철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냈고, 이것이 발판이 돼 중소기업중앙회장에 선출됐다. 그가 기업을 하면서 중소기업중앙회장에 오르기까지는 그의 활달한 성격과 부지런함이 한 몫을 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마당발’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부지런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는 뜻이다.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사람투자’라고 합니다. 하루 평균 50여명을 만나려면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귀가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저녁식사를 두세번 할 때도 있습니다. ‘울안에서 울안의 사람들과 더불어서는 울밖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그는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항상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한걸음 앞서 뛰어야 하는 도전정신과 끝까지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을 그는 기업이념이자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실제 그를 만나보면 한눈에도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부지런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신으로 살아온 그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IMF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릴 때 특히 건설부문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당시 아파트를 많이 지었던 그의 회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몇몇 부문만 남기고 2000년에 회사를 정리하고 이름을 바꾸어 관급 공사와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 스스로 주택사업을 경험했기에 주택건설과 관련해서도 박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그는 우리나라 도시가 친환경적으로 재정비돼야 하는 만큼 앞으로 도시재정비나 재건축, 리뉴얼 등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도시재정비 문제는 국가 전체를 경영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들 사업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데에도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노동부나 산업자원부에 있는 관련 재정들을 활용해 도시 리뉴얼에 사용하면 고용이나 나라경제 측면에서 모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금융부문도 이에 맞춰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안에 금융제도개선 특별팀 등을 구성해 연구토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시절 대통령 직속 금융개혁위원으로 참여해 수요자금융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 공제사업 제도의 개선과 PF제도 도입 등을 건의했고, 이후 PF 금융이 도입됐다. 

 

전체적인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기능의 강화 필요성도 제기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정부 위탁으로 맡고 있는 노란우산공제사업을 더욱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란우산공제는 현재 6조원의 정부기금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지원규모를 늘려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상희 회장은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한다.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리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앞으로도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중소기업 육성하는 선진국 본받아야”

박 회장이 인터뷰 동안 여러차례 강조한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경제민주화다. 그는 특히 지금처럼 재벌이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는 우리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자신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중소기업의 대변자이자 운동가로서 중소기업 활성화에 모든 역량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회에 들어가보고 나서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중소기업이 조직화되고, 이들 조직화된 기업인들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시장경제에는 경쟁만 있어서는 안되고 협동도 있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새로운 공정한 경쟁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조직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위기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높고 생존력도 강합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경제정책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박상희 회장의 사무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판이다. 그는 지금도 전자계산기보다 주판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여러 직책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중소기업진흥회장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중소기업진흥회장으로서 오히려 중소기업중앙회보다 더 자유롭게 정책건의를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는 중소기업중앙회에 건설업종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진흥회장 외에도 대한야구협회장도 맡고 있다. 얼마전에는 야구협회와 IP미디어넷 간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그간 경영개념이 거의 없이 운영돼 왔던 야구협회에 경영개념을 도입해 앞으로 운영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박상희 회장은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쳐 연세대 행정대학원과 홍익대 세무대학원에서 각각 행정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1978년 20대 후반의 나이로 미주제강(주)을 설립해 중견기업으로 키웠으며, 한국철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거쳐 18·19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으며, 금융개혁위원회 등 다수의 정부기구에도 참여했다. 현재 중소기업포럼 회장을 비롯해 중소기업진흥회 회장, 대한야구협회 회장, 대한주택건설협회 고문, 새누리당 재정위원장,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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