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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마르 시난의 최대 걸작]
술레이마니에 쿨리에

오스만투르크 제국 최대의 전성기를 일군 술탄 술래이만 1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에 의해 설계되었다. 시난은 일차원적 평면구성에 머물러 있던 오스만투르크 건축을 다차원적 공간구성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강력한 기하학적 질서체계 안에 여러 개의 건축물들이 서로 집합하여 하나의 건축군을 형성하는 쿨리에(Kulliye)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명예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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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레이마니에 쿨리에의 전경(터키 이스탄불 소재)

 

과거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였던 역사도시 이스탄불은 하기아소피아와 블루 모스크(술탄아흐메트 모스크가 정식명칭)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이스탄불 사람들은 저 두 작품보다 더 자주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를 말한다.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골든혼이 내려다 보이는 이스탄불의 제3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최대의 모스크 복합시설이다. 제국 최대의 전성기를 일군 술탄 술레이만 1세(재임기간 1520~1566년)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이슬람 문명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오스만투르크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1489~1588)에 의해 설계되었다.

 

 

오스만 투르크 건축 기본틀 완성한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은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만투르크 제국 왕실최고건축가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본디 아르메니아 혹은 알바나이 혈통인 것으로 추정되며, 오스만투르크 군대의 건축담당 엔지니어로 복무하며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는 군에 복무하는 동안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다리나 참호, 수로의 건설 등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오스만투르크 군의 해외원정에 동행하며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도로정비, 선박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는다.

 


1 오스만투르크 도시건축을 상징하는 쿨리에의 모습 2 미마르 시난의 초상화(1489~1588) 3 건축현장을 감독하는 미마르 시난의 상상도. 좌측하단에 위치한 남자가 미마르 시난이다.

 

그리고 1539년,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대재상(Grand Vizier)이었던 뤼트퓌 파샤에게 발탁되어 왕실건축가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고, 후에는 마침내 왕실최고건축책임자의 위치에 오른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약 300여 개가 넘는 모스크, 학교, 욕장, 주택, 병원 등 왕실 건축설계의 각 분야에 관여하였다. 후대에 끼친 영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시난 본인으로서도 술레이마니에 쿨리에, 셀리미에 모스크 등과 같은 최대걸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무굴제국의 타즈마할 설계에도 조언자로 참여하였고, 시난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 블루 모스크를 완성시키기도 하였다.

 


술레이마니에 쿨리에의 내부회랑과 중정



1 술래이마니에모스크 내부 돔. 창문으로부터 쏟아지는 빛줄기가 인상적이다. 2 술래이마니에모스크 내부공간. 종교적 집회의 장소이다.

 

시난의 가장 큰 업적은 이슬람건축의 큰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오스만투르크 건축의 기본 틀을 완성시킨 것이다. 시난은 기하학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수학적 천재성을 바탕으로, 하나 혹은 서너 개의 돔(Dome)을 기본으로 한 일차원적 평면구성에 머물러 있던 오스만투르크 건축을, 삼차원의 돔들과 기둥, 평면들이 서로 교차하는 다차원적 공간구성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시난의 위대한 점은 그가 단지 위대한 건축작품들을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난의 진정 위대한 점은 개개의 건축물 설계에 머물러 있던 이슬람건축의 지평을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시켰다는 데에 있다.

 


 술레이마니에 모스크 내부에서 수백명의 신자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

 

 

도시건축에 잘서체계를 부여한 ‘쿨리에’

본래 이슬람도시 혹은 도시건축에는 추상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이슬람도시는 화려하고 양식화되고 추상적인 도시형식과 형태를 만들어 복합성과 모호함을 함께 표현한다. 이슬람도시는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너무 단순화시켜 무엇이었는지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인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현실적 도시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신의 무한한 완전성에 비하여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도시의 삶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도시 건축군들은 미로와 같은 복잡한 형상을 띠곤 한다. 시난은 여기에 강력한 기하학적 질서체계 안에 여러 개의 건축물들이 서로 집합하여 작은 도시와 같은 하나의 건축군을 형성하는 쿨리에(Kulliye)라는 개념을 창안하여, 이슬람 도시건축군에 강력한 질서체계를 부여하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각지에 시난의 발자취가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다. 1551년부터 1557년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시난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도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잘 정리된 걸작이다.

 


 이슬람문명의 중요공간인 욕장 하맘(Hamam)의 모습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종교시설인 중앙의 모스크를 중심으로 하여, 이슬람의 성서 꾸란을 가르치기 위한 종교학교와 도서관, 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이슬람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여겨지는 욕장(Hamam)등으로 구성된 하나의 복합건축군이다.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학교, 병원, 욕장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모스크 주변에 덧붙여진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난잡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각 프로그램들이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건축의 관점에서 볼 때도 술레이마니에 쿨리에는 시난의 탁월한 능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모스크의 중앙돔을 만드는데 있어서 거대한 원형의 내부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작은 돔들을 서로 중첩시켜 쌓아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내부의 원형공간이 다차원의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어냈다. 또한 돔을 받치는 벽체와 기둥 사이사이에 약 1000여 개의 창문들을 배치하여 모스크 내부에서 볼 때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였다.

 


골든혼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술레이마니에 쿨리에의 모습

 


돔을 다차원의 건축공간 형식으로 발전시켜

술레이마니에 쿨리에 모스크의 내부공간에서 보여준 시난의 탁월함은 후에 그의 건축적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셀리미에 모스크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시난이 셀리미에 모스크를 설계하고 있던 당시 그는 다른 건축가로부터 “당신은 절대 하기아소피아의 돔보다 더 큰 돔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당신이 무슬림이라면.”이라는 굴욕적 언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시난은 결국 셀리미에 모스크의 건설을 통해 하기아소피아의 돔보다 더 큰 돔을 구현하게 된다. 단순히 규모의 문제를 떠나 셀리미에 모스크의 돔은 단 하나의 분절 없이 통합된 공간으로서 하기아소피아의 그것 못지 않은 원형의 공간감을 보여준다.

 

시난은 이슬람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건축가일 것이다. 그는 돔이라는 이슬람 고전의 건축어휘를 그만의 방식을 통해 진정한 다차원의 표현을 갖는 건축공간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시난은 평범한 구조방법에서 탈피하여 독자적 질서의 공간을 만들었고 수학, 특히 기하학으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얻었다. 그는 모스크라는 전통적 공간형식을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건축군의 형성이라는 방법을 통해 쿨리에라는 도시적 스케일의 공간형식으로 전환하였다. 시난은 이슬람 문명이 나은 위대한,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도시적 스케일의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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