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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전문업체 시대의 도래②] 중견주택건설업계, 어떻게 성장해 왔나

주택전문업체 시대 본격화 ②

 

우리나라 주택건설업계는 70년대 개발경제시대와 중동건설 붐을 타고 크게 성장했다. 중소 주택건설업체들도 당초 등록사업자에서 시작해 상당수 업체들이 주택 200만호 건설과 신도시 건설 등에 힘입어 이제는 중견업체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져들면서 중견 주택건설업계도 위기를 맞고 있다.

 

글 최승철(이룸디앤씨 이사) 사진 주택저널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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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기를, 집을 가리켜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원시시대의 집은 혹독한 외부환경으로부터 연약한 인간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단순한 피난처(shelter)였다. 인류가 문명인으로 진화하면서 집도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는 구조물로 진화해 왔다. 집은 이제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 됐다. 주택은 개인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론 복지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주택건설산업은 우리 인류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을 제공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산업이다. 그런 주택건설산업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끝 모를 시장 침체의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다.

 

한국 주택산업의 태동

 

우리 나라에 주택산업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일 것이다. 그 전까지 집을 지어 파는 일은 굳이 산업이랄 게 없었다. 대부분의 집들이 동네 목수나 소규모 집 장수들에 의해 공급됐다.

주택의 대량 공급이 시작된 것도 전쟁 직후였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정부는 100만호 주택건설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대량주택공급계획인 셈이다. 엄청난 전쟁 피해로 살 곳을 잃은 국민들에게 집을 제공해 주어야 했던 것이다.

 

1951년부터 1961년까지 10년 동안 공급된 주택은 92만호. 하지만 그 대부분은 집이라고 하기엔 여러 모로 모자라는 구조물들이었다. 그나마 없는 돈을 이리 저리 둘러대고 제대로 기능하지도 않던 건설회사들을 동원해 이루어낸 성과였다.

‘산업’이라 할만한 주택건설산업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대강 1970년대 중반쯤부터다. 주택은 이른바 집 장사라고 불리웠던 소규모 건축업자들이 대부분 맡아 지었고 제법 회사의 규모를 갖춘 건설사들은 대형 건물이나 토목공사 등을 맡아서 했다. 이들 건설사들이 주택건설에까지 뛰어든 것이 1970년대 중반부터인데 중동건설 붐이 배경이 됐다.

 

1970년대 초반, 중동건설 붐이 일었다. 맨 손으로 모래바람 속에서 땀 흘린 많은 건설사들은 그 덕에 자금과 장비,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중동건설현장은 자본도 기술도 없었던 건설업계를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그러나 중동에서의 일거리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건설업체들은 국내의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렸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수요가 폭증하고 있던 주택건설시장이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량의 주택건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중동에서 풍부한 건설경험을 쌓은 건설업체들을 국내 주택건설에 적극 참여하도록 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각종 지원책을 마련했고 이는 건설업계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져 대대적인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다. 이렇게 주택대량공급 시대의 막이 올랐다.

정부는 주택건설산업의 체계를 이원화해 운영했다. 대형건설사들이 대도시 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전담하다시피 했다면 지방의 주택공급은 중소 건설사들에게 맡겨져 있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단독주택 짓기부터 시작해서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주택사업자들에게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 등록을 하도록 했고 이들을 주택사업등록업자라 했다. 그리고 이들 중 대형업체들을 선정해 주택건설지정업자로 지정했다. 이른바 지정제도. 지정업자들은 대규모 아파트 건설, 택지개발 등에 참여할 수 있었고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정제도는 주택건설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고 있던 그 즈음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로 보였다. 하지만 그로 인한 문제도 없지 않았다.

 

지정업자에 대해서는 자금에서 택지, 그리고 분양제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지원이 이루어졌지만 일반 등록업자들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정업자들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등록업자들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결국 특정한 대기업에게 주택시장을 전적으로 맡기는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따져 보면 중소 주택사업등록업자들의 공헌도는 매우 컸다. 무엇보다도 주택건설량이 많았다. 80년대말에 이르자 전국에 산재해 있던 등록업자들의 주택건설량은 민간부문 건설량의 70%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제도권에서 무시당했고 시공권도 부여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불만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중소 주택사업등록업자들의 규모가 커지지 시작했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됐다.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전신인 한국중소주택사업자협회가 탄생한 것이다.

 

중소주택건설업계의 부침

 

한국중소주택사업자협회가 첫 걸음을 뗀 것은 1985년 2월25일. 600여명의 주요 주택사업등록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신라호텔 2층 대회의실에서 한국중소주택사업자협회 창립총회를 열고 그들의 대표단체를 공식으로 출범시켰다. 당시의 창립취지문에는 협회의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본 협회는 주택건설촉진법 제6조에 근거한 주택건설사업등록자로 국민주택을 전문으로 건설해 온 주택건설전문사업인(전국 약 2200여개사)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해 양질의 저렴한 주거공간 창조와 국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주택문제를 연구, 분석해 공급자와 수요자간에 주택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주택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법개발로 기술을 축적해 품질보증 등을 통한 주택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정보를 교환, 능률적인 주택사업을 선도하고자 함.’

 

한국중소주택사업자협회는 출범 후 시공권 획득, 택지개발 사업 참여 등 제도개선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 협회는 1992년 법정법인인 대한주택건설협회로 바뀌었고, 1993년 회원사들의 자금 문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주택사업공제조합을 설립했다. 이 공제조합이 지금의 대한주택보증 전신이다. 또 씽크탱크 구실을 할 주택산업연구원도 세웠다. 대한주택보증은 주택건설업계의 대외신용도를 높이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와 함께 중소주택건설사들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 주택산업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면에는 200만호 주택건설사업과 신도시 건설사업으로 상징되는 주택 대량공급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협회의 제도 개선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소주택건설사들도 공공택지를 분양받고 저리의 금융대출 등을 통해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이 대형업체들 못지 않은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지고 경쟁하게 되면서 중소주택건설업계는 ‘중소’라는 낱말을 떼어내도 좋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늘 좋은 시절만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로 건설업 전반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대우건설과 동아건설, 쌍용건설 등 대형업체들이 잇따라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독주하던 현대건설도 채권단 관리를 받으면서 건설업계 원 톱 체제가 깨졌다. 당연히 주택건설업계도 휘청했다. 급성장했던 업체들은 부도로 문을 닫았고 대형사고를 피한 업체들도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여야 했다.

 

간신히 IMF 위기를 벗어난 주택건설업계는 다시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2기 신도시 사업 등 다시 한 번 대량공급시대가 열렸다. 주택건설사들은 과거의 실패사례를 거울 삼아 새로운 평면 개발과 신공법 도입 등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갔지만 이번에도 호시절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이후부터 최악의 불경기가 이어졌다. 주택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기나긴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여력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주택경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주택에 대한 관념도, 시장 트렌드도 바뀌었다. 오랜 주택경기 침체는 당연히 주택건설산업의 침체를 낳았다.

 

가혹한 주택업체 옥석 가리기

 

건설사들의 부도, 법정관리, 워크아웃 소식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건설사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들의 부도 릴레이는 주택사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중견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 흥망사의 최대 절정이 2000년대 후반부터라는 데는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장기간에 걸친 부동산 경기 침체는 내로라하는 건설사들마저 부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극동건설까지 포함해 시공능력 100위권 건설사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는 모두 21개사에 이른다. 워크아웃이 11개사, 법정관리가 10개사다. 특히 올해 들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회사는 벽산건설·풍림산업·삼환기업·남광토건·우림건설·극동건설(이상 법정관리)·삼환까뮤(워크아웃) 등 7개사다.

 

건설기업들이 이같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시장 활황에 힘입어 무리하게 주택사업을 추진한 데 따른 후유증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동양건설산업이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발목을 잡힌 것처럼 주택사업 비중이 높았던 중견건설사들은 여지없이 부동산 PF의 사슬에 걸렸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주택건설시장의 어려움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올해 국내 건설 수주액이 98조7000억원으로 8년 만에 처음 100조원을 밑돌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 여파로 연간 13만명의 건설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부동산 중개업소 1만6500여 곳이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지난 해에는 중개업소의 40%가 휴·폐업했다.

 

그 중심에 있는 주택건설업계는 누적되는 미분양과 예측이 힘든 주택시장의 미래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형주택건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에서 떨어지는 중견주택건설업계의 어려움은 보다 더 심각하다. 미분양이 누적되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힘든 여건이다. 간신히 부도만 피했을 뿐 호흡기 떼기 직전인 업체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주택건설업계의 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한 전문가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주택건설업체 수가 지금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은 가혹하지만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11일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주택·건설·부동산 관련 25개 단체는 주택시장 정상화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4·1 부동산대책’으로 불리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관련 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업계가 고사하고 있다는 읍소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영, 취득세 영구 인하 등 현재 주택건설업계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그런데도 관련 법안들이 4개월이 넘도록 국회 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여야 모두 국정원 댓글사건이나 NLL 대화록 공방 등에만 매달려 정작 민생과 직결된 법안 처리를 뒷전으로 밀어낸 탓이다.

 

자기성찰의 시간

 

문제는 9월 정기국회에서도 이들 법안이 신속히 통과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조사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인 데다, 세제개편까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벌써부터 부동산 관련법은 우선 순위에서 또다시 밀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시장을 살리는 것은 단순히 관련 산업 종사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지역 내 총생산 비중이 8~9%에 달하는 주택건설업의 경기는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4·1 부동산대책’의 주요 내용이 시행된다고 해서 바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집값 급등기에 도입됐던 규제들이었다. 지금 같은 하락기에는 이런 규제를 정상화하는 게 옳다.

 

지난 달 주택저널 지령 300호 특별 인터뷰에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현재 주택시장 자율조정 기능 복원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중입니다. 경제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주거수요에 부응하고 서민 주거환경 안정 및 주택산업 발전을 위해 주택관련 제도 및 환경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에 맞춰 과도한 정보의 개입과 규제를 완화해 시장 자율기능을 복원시키고 주택시장의 안정적 회복을 위해 세제·금융·공급·규제개선 분야를 망라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택금융 등 주거서비스 관련 산업 활성화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즉, 주택건설 외에 금융·임대관리·중개서비스 등 주거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준공공임대, 토지임대부 임대주택, 임대주택 리츠 등을 통해 민간임대사업의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 7월에는 민간 임대주택의 시설관리 및 임차인 관리 등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주택임대관리업을 신설했습니다. 이밖에 PF를 비롯, 소비자와 공급자 금융기법의 다양화를 통해 주택구매 및 건설 등을 지원하는 주택산업 선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할 방침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주택건설산업계도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시대를 읽고 있는지, 그저 높은 곳의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성찰의 시간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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