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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 교수의 도시건축 이야기]
사대문안 역사도시회랑과 왕궁호텔

프랑스의 카르카손과 이탈리아의 루카, 독일의 루텐부르크 등 중세 유럽의 성곽도시들은 큰 파괴의 역사를 겪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인류 도시문명의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서울은 도시의 윤리가 무너지면서 근본이 흔들렸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다. 보존할 것은 보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국가적 문화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사대문안 서울 역사지구 복원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명예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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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도시 산둥성 취푸(曲阜)의 역사도시구역

 

 

역사도시의 형태와 보존

도시를 설계할 때 도시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이래로 도시공동체는 존재했다. 농촌공동체가 역사가 발전하며 도시공동체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농촌과 도시는 서로 상호보완하며 각기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농촌이 경작지 주변에 이루어진 1차 산업 공동체였다면, 도시는 시대 그리고 지역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했다. 로마나 갈리아,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의 도시들이 농촌을 배후에 두고 농촌공동체의 지배자 역할로서 발전하였다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들은 지중해문명권을 배경으로 다른 도시공동체와의 교역과 교류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역사도시의 도시형태(Urban Fabric)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훼손, 파괴되어 상당수는 이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동양의 역사도시들은 그 훼손 정도가 더욱 심하다. 중국의 자금성과 쑤저우 정원의 문 바깥에는 국적불명의 도시가 있을 뿐이며, 안후이성의 홍춘, 쓰촨성의 두지앙옌, 공자의 도시 산둥성 취푸도 원형이 보존된 곳이라고 하나 역사도시 구역을 제외하고는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있다. 600년 도시 서울도 왕궁, 사직, 종묘 및 북촌과 같은 몇몇 구역들, 그리고 성곽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프랑스의 카르카손, 이탈라아의 루카, 독일의 로텐부르크 등 중세유럽의 성곽도시들은 동양의 도시보다 더 큰 파괴의 역사를 겪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여전히 현대 도시로서 기능하는, 인류 도시문명의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중세유럽의 도시들을 지속가능하게 했는가. 무엇이 이러한 도시들을 역사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재까지도 역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천년도시로 만들었는가.

 


1 카르카손의 성곽 2? 중세유럽의 성곽도시, 카르카손 3 카르카손 . 중세건축과 르네상스건축의 조화

 

 

중세유럽의 성곽도시, 카르카손

카르카손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도시이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조된 성곽도시로서, 높게 솟은 성채를 보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중세시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1650m에 달하는 원형 성벽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는데 기원전 12세기에 첫 번째 성벽이, 그리고 루이 9세 때 두 번째 성벽이 세워지면서 이중으로 된 원형성벽이 완성되었다. 이곳에 가면 무엇이 유럽중세도시를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게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카르카손의 도시 중심군은 교회와 성, 그리고 시민의 광장이었다. 이중 주교와 성주의 공간은 천년 모습 그대로이나 성 안 부르주아의 건축군은 천년 동안 수 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하지 않는 것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인 것이다. 카르카손에 오면 내성과 외성 안 4만평 성벽도시 안에 중세건축과 르네상스의 부르주아 건축군이 벽과 하늘만 보이는 성 안 가로에 환상적 도시공간을 연출한다. 콩탈 성과 성당과 부르주아의 집과 마을이 성벽과 함께 희한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천년 도시 성안에서 역사의 공간과 현대의 공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카르카손을 완전히 허물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카르카손을 허물기로 결정했을 때 노트르담 성당을 복원한 비올레르뒤크(Viollet-le-Duc)가 카르카손 복원을 주장하고 이를 실현했다. 역사를 허무는 일은 미래를 건설하겠다는 자들이 끊임없이 해온 일이다. 그들은 현재를 위해 역사의 시간을 왜곡하고 미래를 위한다면서 역사공간을 파괴한다. 시간의 왜곡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공간의 파괴는 공간과 시간을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1 사대문안 서울의 성곽과 도성 2 사대문안 역사지구 3 서울 성곽

 

 

사대문안 서울의 역사가로

서울은 인간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가 아름답게 조화된 윤리의 도시, 자연의 도시였다. 두 차례에 걸친 큰 전쟁에도 불구하고 근 500여 년 동안 원래의 도시 형국을 잘 유지해 왔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왜곡된 도시건설, 도시의 상당부분을 파괴한 한국전쟁, 그리고 인구집중에 따른 마구잡이 개발 등으로 인해 지난 100년 사이 역사도시의 기본이 무너졌다. 1960년대 이후 그러한 도시 인프라 위에 다시 도시건설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은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연대가 끊어진 반인간적, 반자연적 도시가 되고 말았다.

 

도시의 윤리란 입지와 흐름의 조화를 말한다. 서울의 경우 도시의 윤리가 무너지면서 그 근본이 흔들린 상태다. 도성은 무너졌고 옛 도성 안에 무질서한 고층 콘크리트 건물들이 가득하다. 서울은 어찌 할 수 없는 도시일까. 아직은 아니다.

 

현대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역사 공간을 보존하려면 각 공간의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북촌을 매개로 한 역사문화 지구로 하기 위해서는 두 궁궐 사이를 도시공간화 하여 서로 연결해야 한다. 이는 무분별한 개발로 상처투성이인 역사의 기억장치를 지키는 보루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 궁궐조차 고립된 유적으로만 남게 될 뿐만 아니라 북촌도 옛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를 일이다.

 


 왕궁호텔 개념도

 

특히 이 역사가로의 중심에 왕궁호텔을 건설한다면 국가영빈관의 자리로 가장 이상적이다. 전통적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전통 한옥은 모두 단층이다. 복층의 고밀도 한옥을 만든다면 현대도시가 요구하는 수요에 응할 수 있다. 왕궁호텔을 통해 보여줄 새로운 한옥의 모습은 북촌 일대에 등장할 수 있는 전통 형식의 고밀도 주거지구의 원형이 될 수 있다.

 

왕궁호텔부터 역사가로 사이를 지하로 연결할 경우 경복궁과 창덕궁이 하나의 공간으로 묶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고궁박물원인 중국의 자금성에 뒤지지 않는, 역사유적이 가로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다. 이 도시회랑이 다시 북촌으로 연결되는 문화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콩코드광장 일대나 워싱턴의 내셔널몰, 런던의 더몰에 못지않은 국가적 문화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역사지구의 복원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문화인프라-북촌의 한옥마을-왕궁호텔의 주거복합체 세 가지가 어울리며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울 때 실현될 수 있다.

 

도시발전은 자기정체성을 잃으면 어느 사이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카르카손은 새로움을 더하면서 대도시에 연담화되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스스로 발전을 이루어냈다. 보존할 것은 철저히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국가적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사대문안 서울 역사지구 복원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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