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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충일]
삶도, 그림도, 순환의 여정 속에 있다

1981년, 독재가 만연했던 나라는 피 끓는 예술가를 옥죄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남자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파리는 기꺼이 재능과 열정이 들끓던 가난한 외국인 화가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전 세계 예술가의 로망으로 여겨지는 파리국립미술학교도 졸업했다. 그렇게 20년간 유럽 전역을 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2001년 귀국해 양평에 화실을 직접 짓고 작품에 변화를 꾀했다.

화실 밖으로도 눈을 돌렸다.

 마을의 교회에 자신의 작품으로 재능기부를 하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랑방 만들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그러면서 ‘삶도, 그림도, 순환한다’고 여긴다.

 지금의 자신 역시 변화하며 흘러가는 순환의 여정 속에 있다고 말하는 남자, 그는 작가 정충일(57)이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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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안개가 걷히고 여름 기운이 파고든 5월 하순의 북한강은 청량하다. 강변 위로 연이어 솟은 산맥들이 강으로 자맥질하는 풍경이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 강을 내려다보는 엘렌킴머피 갤러리의 우유빛 전시실 벽에도 푸르디푸른 물결이 흘러내린다. ‘순환_물과물’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 놓은 정충일 작가의 작품들이다.

 

“일자 형태로 뻗은 물과 물 사이를 들여다보세요. 부분 부분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세계들이 물과 물로 연결되어 여정을 이어가는 것, 그게 순환이지요.”

 


지난 5월 북한강변에 자리한 엘렌킴머피갤러리에서 열린 정충일 작가의 개인전 전경이다. 새하얀 공간 속에 자리한 그의 작품들이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정충일 작가는 ‘순환’의 의미에 굳이 거창한 사상을 씌우지 않는다. 물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바다로 나아가는 순환을 얘기한다. 사람의 혈액이 심장-동맥-모세혈관-정맥-심장으로 돌고 도는 순환도 해당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당연한 이치가 그가 말하는 순환이다. 그러한 순환에 세계의 근원이 있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인간 내면을 탐구해 신체이미지로 표현해왔다. 엘렌킴머피갤러리 2층에 전시된 그림들이다.

 

정충일 작가는 오랫동안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를 색채와 평면적인 조형으로 표현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1981년 떠난 파리에서 20년간 신체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신표현주의적 회화를 선보였다. 2001년 경기도 양평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면서 그의 화풍은 변화했다. 이때 새롭게 던진 화두가 ‘순환’이다.

 

“파리시절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는 원없이 했습니다. 양평에 자리를 잡으니, 나의 인생 여정이 곧 순환의 본질과 닿아있지 않겠는가 하는 큰 깨달음이 오더군요.”

 

 

파리에서 20년, 돌아온 한국에서 순환의 의미 찾아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그다. 같은 시기 유학한 선후배들이 한국 화단으로 들어가고 대학교수 자리를 얻을 때, 작가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데 시간을 바쳤다. 그가 말하듯 20년 이상은 몰입해야 자신이 원하는 붓질이 구현될 정도라면, 그와 같은 고생을 택해야만 비로소 진짜 화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1993년 정충일 작가의 화집에 그려진 자화상

 

 

 “자유스러움 때문에 고생을 택한 것이죠. 자유가 없었다면 그 고생을 택할 이유가 없어요.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화풍이나 사조를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죠. 마음껏 그리고 배울 수 있었던 겁니다.”

 

파리에서의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파리의 사람들은 아버지의 직업이 화가라는 것을 알고 두 자녀를 부러워했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자부심을 갖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그런 그가 파리를 떠나 한국에 스튜디오를 마련한 계기가 있었다.

 


▲ 2001년부터 수년간 손수 자재를 구해 와 지었다는 작가의 양평 스튜디오는 지금도 건재하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97년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소쇄원에 처음 가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자재를 직접 공수해 와 수년에 걸쳐 손수 지은 작업실은 여전히 건재하다. 양평에 머물면서 작가는 평소 생각하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에 도전했다. 2006년엔 음악가 황동욱을 만난 게 계기였다. 작품 ‘순환’을 보고 즉석에서 음표를 그려나간 음악가는 전시회 때 초연을 하기도 했다. 소설가 김전환 씨는 작가의 그림을 보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 물과물 캔버스에 혼합재료 260×196cm 2012 

 

 

▲ 물과물 캔버스에 혼합재료 260×196cm 2012

 

3년간 오픈스튜디오도 진행했다.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컬렉터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문화가 아니고, 상품이 된 한국의 현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파리는 몇 대를 이어가며 미술작품을 컬렉션 합니다. 주택도 수백년씩 보존하면서 활용하고요. 그런데 한국은 그림도, 집도 대를 넘기기 힘들어요. 오로지 재테크 가치, 돈의 가치만을 따지기 때문이죠. 이런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만의 문화라는 게 생존 가능할까요?”

 

 

▲ 물과물 나무박스에 혼합재료 80x80cm 2012  

 


▲ 물과물 캔버스에 혼합재료 260×196cm 2012?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소통을 꾀하는 중이다. 마을의 작은 교회에 작가는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요즘은 교회 옆 비닐하우스를 마을 사랑방으로 멋스럽게 꾸밀 생각에 들떠 있다. 이처럼 그는 머무르길 거부한다. 계속해서 앞서서 나아가고자 물과 물 사이의 세계로 뛰어든다. 창작자는 끊임없이 질주해야 한다고 믿는 작가 정충일은 자신의 인생을 순환의 여정 속으로 아낌없이 던져 넣은 진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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