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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하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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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가 뜬다 02]
case 01 독립생활자의 유토피아 ‘소행주’

 성미산마을의 소행주는 공동주택이 아니라 공동체주택이다. 단순히 몇 채의 집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집의 면적을 조금씩 내놓아 공용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삶을 함께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이곳에는 독립생활자를 위한 셰어하우스 한 가구가 들어섰다. 쾌적한 환경과 마을공동체 안에서 독립생활자의 안정된 주거를 찾기 위해 시도된 실험적 형태의 공간이다. 

그리고 독립생활자 ‘남실이’는 오늘도 저녁식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상기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셰어하우스와 달리 자신의 집을 ‘독립생활자의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찾았다.

취재 백상월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 집집마다 독특한 이름을 달고 있는 소행주. 독립생활자들의 집은 특별한 집이라는 의미의 ‘특집’이라고 정했다.

 

“어떤 집에서 누구와 어떻게 사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이 집에 살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사람 사는 행복이고 재미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었다는 것,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줬어요.”

 

서울 자취생활 10년차라는 ‘그너머(입주자들은 저마다 별칭을 정해 부른다)’는 이제야 삶의 안정을 느낀다며 셰어하우스에 사는 즐거움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다. 이 집에 사는 5명의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서로를 ‘식구’라고 부를 만큼 가깝고 허물없이 지내는 이들, 생면부지 남이었음에도 같은 집에 산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렇게까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집 덕분이었단다.

 


1 위층의 주방 겸 거실에는 계단을 둘러싼 테이블을 짜 넣었다. 식사뿐만 아니라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2 위층 베란다에서는 방울토마토와 상추 등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야채를 키우고 있다. 건강한 밥상을 위한 좋은 식재료가 된다.

3 셰어하우스 ‘특집’이 위치한 소행주 2호의 전경.

 

 

독립생활자 주거협동조합으로 쉐어하우스를 만들다

 

1 수납공간이 부족할 것을 대비해 애초부터 계단 사이를 책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공용공간인 만큼 책도 공유하고 있다.

2 아래층에는 3개의 침실과 화장실만 배치해서 프라이버시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가장 큰 침실은 3인실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의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에는 싱글여성 5명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 ‘특집’이 있다. 소행주 2호 9세대 중 1세대로, 독립생활자로 구성된 주거협동조합에 임대된 주택이다. 소행주 자체가 삶에 대해 비슷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합형태의 코하우징(Co-Housing)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결을 함께할 수 있는 입주자를 원했다. 각각의 집은 좁을 수도 있지만 창고 및 저녁식사 공간, 게스트하우스 등을 공유하며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소행주 2호 계획 당시, 젊은이들의 주거권에 대해 고민하던 한 마을주민은 독립생활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저렴한 임대료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방법은 개인공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모두 공유하는 것이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서울 마포구에 둥지를 틀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사회적 활동에 가까운 만큼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4명의 여성 독립생활자와 지난해 11월에 입주한 일반 회사원 1명이 조합원이 됐다.

 

조합원들은 2011년 12월 첫 미팅을 시작으로 7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만나 ‘우리가 원하는 집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규칙을 합의했고, 어떤 자세로 삶을 살고 있는지 등의 개인적인 부분도 파악할 수 있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목소리 한 번 높인 적 없이 살갑게 지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간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란다.

 

현재 이곳에는 ‘그너머’, ‘남실이’, ‘꼼지락’, ‘구슬’, ‘정금’, 이렇게 다섯 사람과 ‘부장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살지만 언니라는 호칭이나 이름 대신 별칭을 정해 부른다.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면 자연스러운 소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셰어하우스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함께 그리고 같이,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다

집은 복층구조로 아래층에는 침실을 두고 위층은 주방 겸 거실로 사용하는데, 총 면적은 55㎡에 불과하다. 5명이 살기에는 매우 작은 공간인 것이다. 수납공간 때문에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고.

위층에는 계단을 둘러싼 바(Bar) 형태의 식탁을 만들었다. 5명이 충분히 둘러앉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크기다. 셰어하우스의 특성상 거주자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던 터라 밥을 먹으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입주자 회의’라는 딱딱한 형식 대신 “밥이나 먹자”라는 가벼운 말로 모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부른다.

 

그렇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밥 먹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즐거운 일이다. 독립생활자들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때우거나 밖에서 사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건강한 밥상’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다. 매달 10만원의 생활비를 각출해서 제철에 나는 신선한 야채와 다양한 음식재료로 풍성한 식탁을 차린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누군가와 함께 건강한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걸 아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공간만 ‘셰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 나아가 삶의 한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

 

“5명이 살아도 주방은 1곳이면 되요. 가뜩이나 작은 집에 주방 같은 공간이 집집마다 있는 건 낭비잖아요. 공간을 공유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얻는 것도 많아요. 요새 아무리 싱글들을 위한 소량포장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불필요하게 많은 양을 사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걸 서로 나누다보면 의외로 굳는 생활비도 많답니다.”

 

집에서 유일한 정규직 근로자인 ‘정금’은 80㎡가 넘는, 이 집의 위·아래층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집에서 혼자 살던 슈퍼 싱글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감에 휩싸이기 일쑤였고, 어느 매체에 소개된 이 집의 이야기를 보고 난 후 ‘바로 여기구나!’ 싶어 이사 왔단다. 지금도 여전히 바빠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날이 많지는 않지만 심리적 안정과 함께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남실이) 예전에는 직장을 중심으로 집을 구하고 옮겨 다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집은 그저 밤늦게 들어가서 씻고 자고 나오는 공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식구들이 모여 있다고 하면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죠. 누군가는 말하겠죠. 미래를 위해 지금은 참고 견뎌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현재가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가 무슨 소용이죠?”

 


1 소행주에 사는 사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공간 느티재. 다 같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독립생활자들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좋다.

2 공용창고에는 부피가 커서 집에서 보관하기 힘든 물건들을 가져다 놓는다. 1년에 한 번 쓰기도 힘든 캐리어 같은 물건은 서로 빌려주며 공유한다.

 

 

혼자 살 때는 못 했던 것도 하고 산다!

이 집의 마스코트는 ‘부장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독립생활자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하는 방법이 애완동물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 많은 시간을 빈집에 둬야 하니 미안하고, 출장이나 여행을 가야 할 때는 맡길 곳을 찾아야 하니 번거롭다. 그래서 이 집 식구들 또한 혼자 살 때는 마음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은 식구들이 다양한 생활패턴(대학생, 직장인, 프리랜서, 창업인 등)을 가진 덕에 꼭 누군가는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 애완동물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기도 한다. 좁은 원룸에 살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이다. 개인공간은 아래층에 있으니 다른 식구들에게 방해될 일도 없고, 위층의 널찍한 테이블에서 와인 한 잔 나누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할 때는 아래층 느티재(소행주 공용 커뮤니티공간)를 이용하기도 한다. 주방시설은 물론 프로젝터까지 갖추고 있어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영상를 보거나 작은 행사를 가질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5명 중 3명이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20만원의 저렴한 월세가 만만해서가 아니다. 이 집에 살면서 진정한 행복과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됐고, 나아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고 위로해주는,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것이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줬다. ‘설마 식구들이 나를 굶어 죽게 하겠냐’는 믿음마저도 확실히 들었단다. ‘남실이’는 지난해 말 일을 그만두고 쿠바여행을 다녀왔고, ‘꼼지락’은 디자인 관련 1인 창업을 했다. 혼자 살았다면 웬만해서는 하지 못했을 선택이다.

 

그녀들은 오늘도 고민한다. 성미산마을 선배들에게 받은 이 혜택을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때로는 자신들만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더 젊은 독립생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는 이들이다. 덕분에 더 좋은 셰어하우스의 탄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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