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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저널 산증인④토문건축 최두호 대표]
공동주택 삶의 질은 설계에서 시작된다

90년대 이후 국내 공동주택 설계 분야에서 굵직한 전환점을 마련한 건축사사무소가 있다. 바로 (주)토문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이하 토문건축)이다. 토문건축을 창립한 최두호 대표는 35년간 국내 주거단지 및 도시계획 분야를 이끌어온 인물이기도하다. 그의 발자취는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 공급돼온 아파트를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돌이켜볼 이유가 분명하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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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문건축 최두호 대표

2 2001년 국내 최초로 ‘생활가로’ 설계를 도입한 용인 신갈 새천년 단지(ⓒ토문건축)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최두호 대표가 주택과 인연을 맺은 건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7년 4월 입사한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첫 직장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모두 공공이 공급했다. 민간건설사들은 모조리 중동건설에 참여해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인지라, 주택보급은 나라의 몫이 되었다.

 

“1일 100호 건설이 구호이던 시절이었어요. 79년엔 정권이 바뀌면서 한술 더 떠 주택200만호 건설공약을 내걸었잖아요. 굉장히 빠르게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신도시 건설이 움트는 80년대로 접어들었죠.”

 

그는 80년대 과천 신도시와 개포, 고덕지구 등 굵직한 주택단지계획에 참여했다. 반포지구에서는 2년간 현장감독을 거치며 실무까지 익혔다. 이후 본사로 들어와 80년대 이뤄진 거의 모든 대단지 프로젝트와 어반디자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이중 상계동신시가지, 산본신도시, 분당신도시 등은 국내 공동주택 역사에 획을 그은 계획들이다.

 

“산본신도시 마스터플랜을 총괄하면서 밖에 나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 건설경기에 붐이 일었던 시기였는데,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활보하고 싶었던 거죠.”

 

주공에서도 늘 현장파로 활약했던 최 대표의 혈기가 올림픽특수를 맞으며 폭발했던 듯싶다. 90년 4월, 14년간의 주공시절을 마감하고 같은 해 9월 토문건축을 창립했다. 물론, 그에게는 다른 건축사사무소와 차별화된 비장의 전략이 있었다. 도시, 건축, 조경을 통째로 아우르는 마스터플래너의 길을 가겠다는 포부였다. 자신을 비롯해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공동대표체제로 출범했던 이유였고, 23년이 된 지금까지도 창업멤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저력이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인 땅의 가치를 바탕으로 광의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의미에서 ‘토문’이라는 이름을 지었지요. 모든 것이 땅(土)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땅 위에 지어지는 게 결국 문(問) 아닙니까.”

 


획일화된 군인아파트의 고정관념을 깬 춘천 두미르군인아파트(ⓒ토문건축)

 

90년, 도시·건축·조경 통째로 아우르는 ‘토문’ 창립

 

토문 설립 이후 최 대표는 공동주택 역사에서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첫 번째가 96년 선보인 신내지구 9단지아파트(SH공사)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보차분리기법’을 도입한 곳이다. 지금이야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단지들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 개념이었다.

 

두번째 터닝포인트는 200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용인신갈 새천년 단지(LH공사)다. 이때 MA설계제도라는 새로운 설계방식이 도입됐고, 국내 첫 ‘생활가로’가 등장했다.

 

“이전에는 도시계획을 통해 땅의 용도를 모두 정해놓고 나면, 그때서야 건축, 조경 순으로 계획가가 들어갔어요. MA설계라는 건 이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거죠. 처음부터 모든 분야의 계획가가 모여서 도시와 단지를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생활가로라는 개념을 실현할 수 있었어요.”

 

생활가로는 단순히 사람과 차의 동선을 분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편안하고, 안전하며, 매력적인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더불어, 단지와 단절된 도시 공간을 이어냐는데도 기여했다.

 

세 번째 족적은 은평뉴타운 2지구다. 토문은 이곳에 ‘한국식 중정형 아파트’를 실현했다. ㅁ자형으로 주거동을 배치해서 생겨난 마당 공간을 질적 생활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계획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간 공동주택 변화의 중심에 섰던 그가 일관되게 지켜온 철학이 있다. 하나는 사람에게 불편한 공간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고집이었고, 또 하나는 공간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열정이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동전의 양면 같아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니까요. 이제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최 대표는 개발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인정했다. 소품종 대량건설에서 다품종 소량건설로, 양의 건설에서 질의 건설로 변해야 함을 절절히 체감중이다. 고민이 깊었던 그는 두 해 전 한국적 주거단지 연구개발을 위한 TF팀을 결성했다. 2011년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연구는 2015년 한국형 주거모델을 내놓으며 1단계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국형 주거단지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사뭇 궁금해진다.

 

“결국 자기 동네, 자기 지역, 자기 집에 맞는 것을 찾아가고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는 주택의 기능이 단순히 잠자는데 그치지 않게 될 거에요.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돈도 벌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물리적 환경만 바꿔서도 안 되고, 프로그램들을 접목해야하죠. 그렇게 하자니, 개발 중심으로 짜인 법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더군요. 정부가 국민을 믿고 규제보다는 지원으로 인식을 전환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 대표는 한국의 하우징도 K팝처럼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35년간 주거단지 및 도시계획의 한길을 걸어온 그가 보내는 긍정의 메시지이기에 믿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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