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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산업 산증인①동익건설 박성래 회장]
주택시장의 영욕 지키며 30년 넘게 외길 고집하다

박성래 회장은 함께 주택사업등록을 한 업체들이 방만경영이나 IMF 등의 위기를 겪고 쓰러져가는 것을 지켜 보면서 외형적인 성장에 눈돌리지 않고 착실한 내실경영으로 동익건설의 오늘을 일구어왔다. 30년 넘게 주택전문업체의 외길만 고집해온 박 회장은 이제 우리 주택건설업체들의 기술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취재 권혁거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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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성래 동익건설 회장

2 박성래 회장은 1978년 동익건설을 설립한 우리나라 주택건설 1세대다. 그는 탄탄한 내실경영을 바탕으로 유수의 업체들이 쓰러져가는 중에도 동익건설을 주택전문업체로 성장시켜 왔다. 

 

 동익건설 박성래 회장은 우리나라 주택산업의 1세대다. 동익은 1977년 12월 현 주택법의 전신인 주택건설촉진법의 개정으로 주택사업자 등록제가 도입되자 이듬해인 1978년 동익건설(주)을 설립하고 주택사업자로 등록했다. 서울시 주택사업등록 1호였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1978년 4월 첫 주택사업자 등록시 등록한 업체가 모두 890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라이프, 한양, 우성, 삼호 등 한때 주택업계에서 쟁쟁했던 회사들이 함께 주택사업을 시작했으나 방만경영 등으로 모두 사라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업체는 동익을 비롯, 불과 몇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동익이 처음 회사를 설립한 것은 동익건설을 설립하기 2년전인 1976년이었다. 당시 박 회장은 동익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주택사업을 위한 준비단계였던 셈이다. 이후 지금까지 30여년동안 박 회장은 오직 주택건설 한길을 걸어오면서 비록 규모는 크지지 않았지만, 탄탄한 내실경영으로 오늘까지 건재하고 있다.

 

“동익건설을 설립하던 당시는 아직 우리나라 주택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김성배 서울시장 시절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작은 땅을 중심으로 다세대주택 등 현지개량사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980∼1981년은 대통령 서거 여파로 경제전반에 걸쳐 불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후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땅값이 오르는 등 주택시장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박성래 회장은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작된 주택 200만호 건설이 주택시장의 붐을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당시 주택 200만호 건설을 주도한 이는 박승 건설부장관이었다. 이때 대형업체들을 비롯한 상당수의 업체들이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다. 정부 발주공사보다 주택건설사업이 훨씬 이익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승 장관은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맡았다가 그해 12월 건설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택 200만호 건설을 현장에서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주택 200만호 건설은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그래서 박승 경제수석이 이를 직접 챙기고 택지를 물색했다. 수도권 1기신도시가 그렇게 탄생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주택시장 규제 도입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시작됐다. 1978년 주택공급규칙이 제정됐고, 부동산투기지역이 고시됐다. 당시 서울에서는 여의도, 잠실, 영동, 반포 등이 아파트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 아파트 분양에 경쟁률이 수십대 1에서 심지어 100대 1이 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리고 1978년 8월 서초동 삼익아파트 881가구 분양에 처음으로 청약배수제가 적용됐다. 이해 8월에 대치동 은마아파트 4400여 가구가 분양에 들어갔고, 며칠후 부동산투기종합대책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미등기 전매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100% 물리고, 2년이내 거래시에는 70% 부과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언제나 100%였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집이 부족하다고 할 때도 집이 없어서 거리에 나앉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씩 돈을 모아가면서 무허가주택에서 살다가 전세로 옮기고, 다시 집을 사는 등 주거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이처럼 시장원리가 작동해 주택시장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에 규제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됐다는 게 박 회장의 지적이다. 시장원리에 맡겨 놓으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규제 때문에 이런 시장원리가 무너지고 왜곡되면서 서민들의 마음을 때로는 불안하게, 때로는 들뜨게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또 택지개발에도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민간업체들이 택지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참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주택업체들이 택지개발에 공동참여하면 주택가격도 오히려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주택건설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뉴욕 맨하탄 외곽에 동익의 이름으로 멋진 아파트를 건설하고 싶다는 바램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한눈 팔지않고 주택전문업체로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주택시장의 문제점은 수요가 있는 곳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입니다. 요즘 미분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천의 영종도를 비롯, 청라, 송도, 그리고 일산 식사지구 등이 모두 수요도 제대로 없는데 공급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30년 넘게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지켜봐온 박성래 회장은 결국 주택시장의 규제를 철폐하고 원래의 시장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 주택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길이라고 믿는다. 규제가 없어지면 오히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추면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30년 주택시장을 지켜온 경륜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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