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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품은 화가의 집]
박노수미술관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재탄생한 화가의 집, 박노수가옥을 찾았다.

한국화의 대표화가 남정 박노수(1927~2013) 화백이 40여년 거주했던 집이다.

이곳에는 박 화백이 사회에 기증한 작품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사용한 고가구와 고미술품 등 애장품 1000여점을 비롯해 애지중지 가꾼 아름다운 수석정원이 공개되고 있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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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중인 박노수가옥은 지하층과 지상1,2층으로 이뤄졌다.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든 게 화백의 소장품…예술품의 보고가 된 집

경복궁의 서쪽 마을에 자리한 박노수가옥을 찾았다. 가옥이 위치한 동네는 행정구역으로는 종로구 옥인길, 옛 이름으로는 상촌(上村)에 속한다. 지금은 상촌 대신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종이 태어난 터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종마을은 인왕산 기슭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른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 ‘청풍계도’에 마을 풍경을 담았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동네다.  


박노수가옥은 통인시장 서쪽 출구에서 옥인공원(수송동계곡)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자리한다. 붉은 벽돌을 단정하게 붙이고 다채로운 박공지붕을 얹은 이층집은 얼키설키 좁은 골목길 안에서 남다른 풍채를 뽐낸다. 누가 보아도 정성들여 지은 것으로 짐작되는 근대건축양식의 가옥이다.

 

박노수 화백은 1973년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종로구청에 집과 소장품 일체를 기증하기까지 40년 가까이 거주했다. 안타깝게도 박 화백은 박노수미술관 개관을 6개월 남겨둔 2013년 2월,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는 등 정갈한 차림을 즐겼다는 박노수(1927~2013) 화백의 생전 모습이다.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활짝 열어놓은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화가가 유난히 애정을 기울였다는 정원을 만난다. 집을 빙 둘러 띠처럼 연결되는 정원에는 화가가 생전 수집하여 즐겨온 수석과 고미술품들이 즐비하다. 들여다보는 곳마다 볼거리가 숨어 있는 비밀의 정원이랄까. 마치 깊은 숲 속에 들어선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자연스러운 형상의 거대 수석들도 만날 수 있다.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서 기본이 되는 돌(자연)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고 여겨 평생 수석을 가까이 했다고 전해진다. 생전 그가 가꾸던 정원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화가의 남다른 정원 사랑을 엿보게 한다.

 


 

정원 곳곳에 다채로운 수석과 고미술품이 가득해서 마치 비밀의 정원을 거니는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유년시절을 산촌에서 보낸 박노수 화백에게 우리의 강산과 자연은 평생을 끌어온 화두였다. 그에게 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산 사랑이 대단했다고 한다. 평생 수석과 함께한 것도, 그의 작품마다 산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 현대 동양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강, 바위, 수목 그리고 소년과 말 등을 주요 모티브로 화선지에 그려 낸 그의 산수화는 동양적인 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담한 구도와 신선한 색채감각을 뿜어내며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선, 투명성을 지닌 채색, 자유로운 형태를 띤 그림들은 시대와 나이를 초월해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산(山) 화선지에 수묵담채 114×158cm ⓒ2015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박 화백은 해방 후 서울대미대 1기생으로 출발, 28세의 나이에 국전에서 검은 한복차림의 여인상 ‘선소운’으로 동양화가론 처음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 후로도 30여회 국전에 출전하는 등 끊임없이 작품 활동에 집중했다.

 

이화여대·서울대 교수를 역임했지만 일찍이 교단에서 물러나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작가관은 ‘외롭게 홀로, 개성적 표현의 길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격이 차갑고 골프, 바둑, 술, 텔레비전,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림에 방해가 된다 싶은 일은 일체 삼가는 언행일치를 보였다고 한다.

 


 

고사(高士) 화선지에 수묵담채 97×137cm 1985 ⓒ2015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박노수미술관에서는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전시가 연중 열리고 있다. 오는 8월16일까지 열리는 ‘화가의 집’ 전시에는 집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야트막한 동산 위 장성한 나무 아래 앉혀진 아담한 기와집 ‘산가(山家)’는 집에 대한 화백의 심중을 드러낸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산가와 같은 대작 외에도 처음 선보이는 족자, 두방 형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산가(山家) 화선지에 수묵담채 99×146cm 1981 ⓒ2015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강(江) 화선지에 수묵담채(족자) 69.5×45.5cm 1979 ⓒ2015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1937년 박길룡이 건축한 한일 절충식 가옥 체험

박노수미술관은 화가의 작품을 만나러 나서는 것 이상의 설렘을 주는 장소다. 화백이 거주하던 당시 상황으로 재현해 놓은 거실과 화실 등 그의 채취가 깃든 공간과 애장품을 오롯이 만날 수 있기 때문. 1000여점에 이르는 작품과 기증품들은, 매년 주제를 달리해 보여준다고 해도 앞으로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미술관 측 설명이다.

 

이 집은 1937년경 조선시대 문신이자 친일파 윤덕영이 딸 부부를 위해 지은 일본식 2층 양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건축가이자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에 참여한 박길룡이 설계했다.

 


 

아치형 포치가 달린 이국적인 입구로 눈길을 사로잡는 박노수가옥. 1937년경 지어졌다. 1973년부터 박 화백이 소유주가 되어 보수하고 관리하다가, 1991년에는 서울시문화재자료 1호로 등록됐다. 2011년 말 사회 환원의 뜻을 밝힌 후,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복도를 중심으로 실이 배치되고 있는 1층. 복도 깊숙한 곳에 부엌이 자리한다. 입구의 넓은 방은 박 화백이 거실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화백이 직접 사용했던 다채로운 가구들과 고미술품을 만날 수 있다.

 

 

주택 면적은 231.4㎡에 달하며 지하층과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 내부 구조는 일식과 한식을 혼용하고 있어 절충식기법의 가옥으로도 불린다. 1층에는 접견실 및 거실과 주방이 있는데, 온돌방식과 나무마루가 혼재한다.

 

마루방 구조를 적용한 2층에는 화실 겸 서재로 사용한 넓은 방과 침실, 다락방 등이 배치되어 있다. 지하층은 종로문화재단 사무실과 어린이프로그램을 개최하는 워크샵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2층에는 박 화백의 화실이 자리한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햇살이 잘 드는 방이다.

 

 

근대가옥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놓은 내부 구조도 흥미롭지만, 그 시대에서나 봄직한 타일이나 창호 디자인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2층 총 3곳에 만들어진 유럽식 벽난로에서는 서양가옥의 영향을 받은 점도 눈에 띈다. 집 뒤편 동산에서 지붕 곳곳에 솟은 굴뚝을 확인할 수 있다.

 

외관을 보면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이다. 현관은 포치를 설치하고 벽돌을 사용해 꾸민 반면,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단순 박공지붕으로 처리했다.

 


 

2층 화실 한켠에 있는 벽난로. 총 3곳에 서양식 벽난로가 있다.

 


박노수가옥은 시대를 호령하던 실세에 의해 건축됐지만 해방 이후 여러 소유주를 전전하며 피폐해졌다. 1973년 박노수 화백이 소유할 당시 집의 상태가 매우 열악해 화백은 집의 원상을 복구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특히 정원은 잡초가 심하게 우거져 동네에서 귀신의 집으로 불리던 상태였다. 그러던 것을 화백의 오랜 취미였던 수석과 정원석 그리고 난초를 바탕으로 남정의 뜰로 가꿔냈다. 결국 1991년 집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1호로 등록, 지금껏 보존돼 왔다.

 

박노수가옥은 거장 예술가의 사회 환원에 대한 신념과 그를 소중히 여긴 행정의 관심이 만나 후대에 남겨질 수 있었다. 예술의 흔적까지 간직한 이곳은 건축문화유산이라는 가치를 넘어, 동시대인과 호흡하는 기억의 공유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노수미술관을 나오는 길, 그가 새삼 그리워진다.

 

 

 

기와지붕 사이로 뻗은 굴뚝들이 보인다. 맞은편에 배화여자대학이 있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인왕산 수송동계곡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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