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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역사지구]
리장고성(麗江古城)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고성은 중국의 대표적 역사도시 리장에 있는 성으로 소수민족의 풍습이 아직 그대로 보존되는 전통마을이다. 리장고성의 중심지인 스팡제에서 도로가 시작되고 끝나며, 마을을 관통하는 세 개의 물줄기가 있다. 이곳에 사는 나시족들은 자신의 집을 활용해 숙박이나 장사를 한다. 이 물줄기와 나시족의 순수한 모습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글·사진 김석철(국가건축정책위원장·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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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麗江, 여강)은 중국 남서쪽 끝에 있는 운남성의 북서쪽에 위치한,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이다. 최근 한 방송의 여행프로를 통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던 리장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동방의 스웨덴’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리장의 구(舊)시가지를 감싸도는 수로들이 베네치아의 운하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동양의 베네치아’라 일컫어지기도 한다. 한 해 전세계 관광객만 5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리장은 중국 관광산업포럼에서 선정한 ‘중국 10대 관광도시’ 중의 하나로 뽑혔는가 하면, 중국의 유명 여행사인 셰청(携程)이 뽑은 ‘중국 내에서 가장 가볼만한 여행지’ 1위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리장고성 전경

 

리장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리장에 위치한 리장고성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리장고성’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에 의해 건설된 리장의 역사지구로서, 1997년 12월3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리장고성은 소수민족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전통 마을로서 인류민족발전사에 중요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보고이자, 현재도 많은 진귀한 문화유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다.

 

 

리장고성의 상징물인 물레방아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휘호

 

 

수로를 가득 채우며 흘러가는 물

리장이라고 하는 지명은 처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하게 한다. 리장(麗江, 여강)은 강이 아니다. 리장은 도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리장을 생각할 때 물, 그리고 물의 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리장고성안을 흐르고 있는 물 때문이다.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리장고성 안에 일단 들어가면 제일 먼저 탄성을 지르게 하는 것은 글자 글대로 옥류처럼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질 듯 수로를 가득 채우며 흘러가는 광경이다.

 

마치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핏줄처럼 힘차게 흐르는 리장고성의 물의근원은 어디일까? 이 마을에서 불과 50km 밖에 되지 않는 지점에는 우람하게 솟아있는 위룽쉐산(玉龍雪山, 옥룡설산)이 있다. 해발 5596m의 위룽쉐산은 북반구에서 가장 낮은 위도에 있는 해발 최고의 봉우리이다. 만년설이 가득 찬 13개의 높은 봉우리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옥룡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 하여 예부터 위룽산(玉龍山, 옥룡산)이라고 불리었다.

 

 

1 상점가들. 뒷편으로 위롱쉐산이 보인다. 2 리장고성과 수로의 모습 3 리장고성 주택가의 모습 4 수로주변으로 형성된 음식점 및 주점들의 모습

 

위룽산을 배경으로 하여 넓은 들판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보면 위룽산은 그다지 높은 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미 리장이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위룽쉐산에서 흐르는 물은 진사강(金砂江, 금사강)으로 이어져서 리장 마을 옆으로 흘러 양쯔강(揚子江, 양자강)의 상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리장고성의 수원지는 진사강이 아니다. 리장고성 물의 직접적인 근원은 바로 헤이롱탄(黑龍潭, 흑룡담)이다. 헤이롱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샘이며, 수원지이다. 리장고성의 물이 그처럼 맑고 정결한 상태로 계속 흐르는 것은 실질적인 근원인 헤이롱탄이 시 북쪽으로 불과 1km밖에 안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호수바닥에서 용솟음치는 모습을 모면 마치 생명이 용솟음치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청나라의 건륭황제는 이 헤이롱탄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위취엔공원(玉泉公園, 옥천공원)을 만들었다. 이 헤이롱탄과 위취엔공원 주변에는 나시족의 건축수법을 활용한 수려한 건축물들이 건립되어 있다. 글자그대로 옥과 같은 호수 주변에 세워진 건조물들은 주변의 위룽쉐산을 배경으로 엄청난 장관을 연출한다. 헤이롱탄에 반사된 위룽쉐산의 열세개의 봉우리들은 마치 용처럼 하늘을 날고 물속으로 스며든다. 헤이롱탄은 가히 리장고성의 심장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힘차게 뿜어내는 맑은 호수가 리장고성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헤이롱탄에 면한 위취엔공원의 모습

 

헤이롱탄 곳곳에서 솟아나는 물들은 위허쩌우랑(玉河走廊, 옥하주랑), 즉 옥과 같은 강물의 통로라는 이름의 수로를 통해서 마을로 유입된다. 마을의 어귀에는 커다란 물레방아를 상징물로 설치했다. 바로 그 물레방아 옆에 리장고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음을 알리는 장쩌민전(前) 국가주석의 친필 휘호가 쓰여진 기념 조형물이 있다. 이곳이 바로 리장의 물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로 이곳에서 세 줄기로 물이 갈라지면서 동쪽의 동류(東流), 가운데의 중류(中流), 서쪽의 서류(西流)라고 하는 이름의 수로가 만들어졌다.

 

 

고성 안으로 흘러들러가는 위허쩌우랑의 모습

 

 

성벽이 없이 지어진 성

약 천 삼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리장고성은 송나라 말에서 원나라 초에 걸쳐 건설이 되었다. 총 면적은 3008m²이고 해발 2416m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도 약 60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리장고성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성벽이 없이 지어진 성(城)이다. 일단 성이라고 하면 높은 담장과 웅장한 대문들에 의해서 외부와 차단된 모습이 상상되는데 이 지역은 한번도 성의 경계가 되는 담을 만든 적이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지역의 통치자가 목(木)씨였는데, 목(木)자의 주변에 입구(口)를 더해서 마치 담을 두르듯이 글자를 만들면 이것이 곤란할 곤(困)이 된다. 그래서 만약 성곽을 쌓게 되면 이 지역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담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담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개방감이 오히려 리장고성을 활기차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성 안 대부분의 지역은 돌판으로 포장되었다.

 

 

입구에 위치한 쓰팡제를 알리는 표식

 

 

쓰팡제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터와 축제의 모습

 

리장고성 대부분 지역의 바닥은 돌판으로 포장을 하였는데, 그것이 천년이 넘도록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그 돌들이 닳아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다. 리장고성의 전 시가지에 가장 중심 되는 지역은 쓰팡제(四方街, 사방가)라고 하는 작은 광장이다. 주변 여섯 개의 주요 간선도로가 여기에서 시작되고, 어떤 도로는 여기에서 끝나고 있다. 이곳은 장터이자 광장이며, 축제의 장이자 교역의 장이다. 말하자면 리장고성 내 모든 사람들의 상품들이 모이는 경제중심지이자 리장고성 거주민들의 마음이 모이는 정신적인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주요 건축물과 공예품들이 바로 이 쓰팡제 주위에 세워졌다. 약 400m² 정도의 작은 광장이지만 여기 서 있으면 주변의 모든 길과 주요 건물들이 보인다.

 

 

무푸궁전의 입구

 

쓰팡제 광장에서 바로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여인들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쓰팡제는 여인가(女人街)라고도 불리었다. 사실 나시족의 생계를 이끌고 나가는 중요한 역할들을 여성들이 하며 어디를 가나 작은 가게들을 운영하는 주체는 여성들이다. 쓰팡제는 예로부터 가장 큰 장이 이루어져 왔던 일종의 커다란 장터이다. 이 쓰팡제 서편에 작은 연못이 형성되어 있고, 그 양쪽에 두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의 이름이 매우 재미있다.

 

북쪽에 있는 다리는 매계완두교(賣鷄豌豆橋)라 불리 우는데, 글자 그대로 닭을 팔고 완두콩을 파는 다리이다. 완두는 나시족의 요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원료이며, 이 지역에서 사시사철 애용되고 있다. 남쪽에 있는 석교는 매압단교(賣鴨蛋橋)라고 불리우는데, 그것은 오리알을 파는 다리라는 뜻이다. 약 20여m 정도 되는 이 다리는 쓰팡제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경치를 감상하는 관광다리가 되고 있다.

 

 

무푸궁전 본당. 동쪽을 면하고 건축되었다.

 

동류(東流), 중류(中流), 서류(西流)라고 불리우는 세 개의 물줄기들은 리장고성 시내 곳곳을 관통하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예로부터 쌀을 씻고, 야채를 씻으며, 손빨래를 하는 생활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몇몇 지역에 있는 샘물들은 식용수로 사용된다. 시내를 관통해서 흐른 물들은 주변의 농·수·축산물들을 기르는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단순한 경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수로들로서 리장고성이 수백년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생명의 수로들이다.

 

 

야경 모습

 

 

세상의 근심 모두 잊은 듯 편안한 시내

리장고성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볼 수 있는 지역은 중류와 서류의 사이에 있는 중심가 지역이다. 넓은 보도 양편으로 무수히 많은 상점들이 있고 바로 옆으로는 노천 까페를 형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그 곳에 앉아 있으면 온갖 세상의 근심을 다 잊은 듯한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한번 앉으면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을 듯한 포근한 분위기가 곳곳에 가득 차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하는 느낌을 준다.

 

 

밤을 밝히는 홍등들의 모습

 

리장고성의 감동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시간은 사실 낮이 아닌 밤이다. 맑게 흐르는 물가에 연이어 있는 식당과 상점들, 그리고 집집마다 걸어놓은 붉은 등(燈)들이 물가의 흐름에 비치며 흔들리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광장을 메우고 길을 체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커다란 나무 기둥을 세우고 불을 붙인 후 밤늦도록 춤추고 노래하며 인생을 즐긴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이 광장에 모여 축제를 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다져가고 마을의 정신을 키워나가고 있는 셈이다.

 

리장고성의 쓰팡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사자산(獅子山) 동편에 무푸궁전(木府宮殿, 목부궁전)이 있다. 무푸궁전은 명나라 목(木)씨 왕조가 건립한 건축물로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을 모방하여 지은 궁전이다. 서쪽에 위치하여 동쪽을 바라본다는 서좌동면(西座東面)의 동서축을 형성하고 있다. 즉 궁전이 남쪽이 아닌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있는데 동쪽은 음양오행상에서 목(木)에 해당하는 것으로 목씨를 상징하기 때문에 보통의 궁궐과는 다르게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무푸궁전은 산간 지역의 소도시치고는 제법 규모를 갖춘 커다란 궁전으로 그 본당은 자금성 태화전(太和殿)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리장고성을 상징하는 누각 만고루

 

이 무푸궁전의 서편에 있는 사자산 정상에는 만고루(萬古樓)라고 하는 누각이 우뚝 솟아있다. 이 만고루는 리장고성을 내려다보는 경관을 가장 넓게 그리고 가장 높게 조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동편으로는 리장고성 지역을, 서편으로는 리장의 신시가지 지역을 다 굽어 볼 수 있다. 또한 멀리는 위룽쉐산을 바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리장고성의 골목 하나하나 물길 하나하나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만고루는 본래 무푸궁전의 후원에 세운 정자격의 건축물로 완만한 경사지에 만들어진 고성을 조감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리장고성은 담이 없기 때문에 그 주변에 형성되는 새로운 상가들과 옛 고성의 건축군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성의 보존된 부분 외곽에 존재하는 상가들은 거의 대부분 고성의 건축적 품격을 그대로 살려서, 새로운 상가이면서도 기존의 고(古)건축군과도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고루에서 바라본 리장고성의 경관

 

 

옛모습 그대로 전해져 오는 삶의 터전

리장고성은 관광지로 조성된 지역이 아니고 처음부터 나시족들이 살아온 생활의 터전이다. 현대에 와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고 있지만 리장고성은 그래도 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잇는데 그 이유는 리장고성이 인위적으로 만든 민속촌이 아니고 나시족들이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골목골목에 있는 식당, 그리고 작은 여관들은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자기들의 주거지를 그대로 활용하여 일종의 민박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즉 자기 집을 식당, 관광, 숙박시설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사업하는 사람들과 사업지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집이 생활의 터전이자 사업의 장소이다. 글자 그대로 직주일체형(直奏一切形)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을 만들기 위해 새롭게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둬드리는 수익은 순수익이 되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을 영위하고 저축을 해 나갈 수 있으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민속촌에서 보여지는 부자연스러운 어색함이 없이 호의적인 미소, 자연스러운 모습, 그리고 여유로움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이 넘치고 있다. 나시족 주민들을 볼 때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리장고성의 가치는 어떤 책을 보아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사진을 보아도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리장고성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리장고성의 분위기를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리장고성이 우리에게 주는 제일 큰 감동은 힘차게 고동치는 심장에서 분출하여 흐르는 동맥처럼 마을 전체를 굽이굽이 지나서 흐르는 물이다. 그리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만나는 나시족의 밝고 순수하고 친절한 모습에서 오는 감동이 그 다음으로 크다. 정말 살고 싶을 곳, 머무르고 싶은 곳이 바로 이곳 리장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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