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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있는 화첩]
분단 70년, 북녘땅 건축물 그리는 펜화작가 이승구 조명혜 부부

올해로 남북 분단 70년.

해방이라는 기쁨과 분단이라는 아픔을 동시에 간직하고 이어온 시간이 어느덧 고희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때 펜아티스트 부부가 몇 년에 걸쳐 그려낸 북녘땅의 건축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반가움을 더한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파주 민족화해센터 건물 또한 분단 전 평양에 존재하던 성당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주택저널 기사 레이아웃

 

 



















라지고 잊혀진 북녘땅 건축물

파주 통일동산에 다시 불러 와

 

펜아티스트 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전이 열리고 있는 민족화해센터. 임진강과 그 너머 북녘의 산하가 가까이 바라보이는 파주 통일동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센터 옆으로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건물이 서 있다. 두 채 모두 붉은 벽돌건물에 한옥의 지붕양식을 얹은 거대한 규모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파주 통일동산에 자리한 참회와 속죄의 성당(왼쪽 건물)과 민족화해센터(오른쪽 건물)전경. 두 건물 모두 북녘땅의 성당건축물을 그대로 본 떠 지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1930년 평양에 중건한 신의주성당의 외형을 재현해 건축했고,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센터(사제관)를 본떠 지은 것이랍니다. 성당 내부는 평양 덕원수도원 대성전 모습을 토대로 꾸몄고요. 성당 내 모자이크 유리작품들은 남쪽 작가들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북한 내 모자이크 전문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것이에요. 그래서 남북합작성당이라고도 불려요.”

 

 

 

참회와 속죄의 성당 내부는 평양의 덕원수도원 내부를 그대로 재현했다.

성전 위의 성화는 남북 작가들이 합작으로 만든 유리모자이크 작품이다. 

 

 

남·북의 대립과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속죄하고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펜아티스트 부부는 그 결실을 펜화로 기록했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지은 신의주성당은 평양교구에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했지요. 반 지하가 있고, 지상 1층에 한식 기와와 목구조, 일부 서양식 외장과 벽돌을 사용한 벽돌조 중층 구조예요. 외관이나 형태, 맵시, 미감이 빼어나 20세기 평양교구의 대표적인 교회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답니다.”

 

 

 조명혜Ⅰ신의주 성당(1930년 평양교구) 종이에 먹펜 34×52㎝ 2013

 

 이승구Ⅰ서포 메리놀센터(1931년 평양교구) 종이에 먹펜 34×52㎝ 2013

 

부부는 당시 유명했던 북녘 성당과 종교시설, 신앙유적지 20여곳을 펜화로 재현했다. 여기에 남한의 성당과 신앙유적지 20여점을 곁들여 민족화해센터에서 전시 중이다.

 

북녘땅 작품 중에는 안중근 의사가 2대 교장으로 몸담았던 곳으로 유명한 해성학교와 진남포성당도 등장한다. 천주교가 종교박해 속에서도 민족의식 고취와 문맹 퇴치, 인재 양성에 기여했던 떠올리게 만든다.

 

 

 조명혜Ⅰ진남포성당과 해성학교(1933년 평양교구) 종이에 먹펜 37×58㎝ 2013

 

 

근대문화유산격인 남북한 신앙유적지

펜화로 기록 남길 터

 

20세기 초 지어진 북녘땅 성당과 수도원, 신학교들은 근대건축의 한 장을 기록할 만큼 건축적 의미도 깊다.

 

한반도에서 가장 춥다는 평양북도 중강진에 1934년 건축한 중강진성당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통나무로 지어진 목조 성당이다. 지붕에는 너와를 올렸고, 해마다 너와를 갈았다고 전해진다. 소박하고 멋스럽게 단층 기와집으로 지은 대신리성당도 눈길을 끈다. 본당 부설 동평학교 건물이 성당에 잇닿아있다.

 

 이승구Ⅰ중간진 성당(1934년 평양교구) 종이에 먹펜 34×52㎝ 2013

 

 


 조명혜Ⅰ대신리 성당(1934년 평양교구) 종이에 먹펜 34×52㎝ 2013

 

 

1928년 함경남도 덕원에 지어진 성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은 중세 독일의 히르사우 수도권을 모델로 삼아 지은 건물이다. 동아시아 근대건축분야에서 사상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건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한 수도원 성당은 길이 57m, 너비 19m, 높이 34m에 이른다.

 

  이승구Ⅰ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1928년 함경남도 덕원) 종이에 먹펜 34×52㎝ 2013

 

 

1933년 덕원수도원 카예타노 신부가 설계한 고원성당은 한국의 아름다운 기와지붕과 유럽 성당 형태를 절충한 건물이었다. 당시로는 함경남도 고흥지역 유일의 벽돌 건축물로, 장날이면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시골사람들로 붐볐다.

 

“안타깝게도 북한땅에 지어진 종교 건축물들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게 많아요. 전쟁 때 폭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100년 가까이 된 옛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건물을 재현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부부는 당시에 북녘땅에서 활발한 선교와 교육활동을 펼친 성 베네딕도회의 도움을 얻었다. 베네딕토에서 제공한 자료와 증언들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방대한 작업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 작품에 한 달을 꼬박 쏟아 부었죠.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올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밖에요. 한 장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배열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느낌이 나오질 않아요. 건물마다 디테일이 달라서 건축적인 이해도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고요.”

 

 

  조명혜Ⅰ고원 성당(1933년 덕원 자치 수도원구) 종이에 먹펜 34×52㎝ 2014

 

 

이승구 조명혜 작가의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내는 대학에서 장식미술과 인테리어, 남편은 산업미술을 전공한 후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건축물에 인테리어 작업을 해왔다. 희미한 사진 속의 건물을 대상으로 건축구조를 파악해서 투시도처럼 옮겨내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다.

 

“우리 부부는 60년생, 61년생으로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북녘땅 건축물을 대하면서 그리움과 아쉬움이 생겨요. 실제 그곳을 안다며 옛 기억을 말해주는 관람객을 만날 때는 큰 보람도 느낍니다. 앞으로도 남북한의 종교건축물을 힘닿는데까지 펜화로 기록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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