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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가 류연복]
시대의 결을 켜켜이 새기다

류연복 작가는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의 한 작은 마을에서 20년 넘게 목판화 작업에 정진하며 환경·예술운동가로 살고 있다. 하 수상한 시절, “우리는 나무의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다독여주는 그에게서 위안을 얻어 돌아왔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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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동강, 금강산, 독도, 세월호까지

목판화로 세상과 호흡하다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늘어뜨린 류연복(57) 작가가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웃고 있다. 얼굴 가득 주름을 머금고 웃는 표정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따뜻한 힘이 서렸다. 홍익대 재학시절인 80년대부터 미술의 사회참여를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이래 파란만장한 시대를 거침없이 내 달려온 그임을 알기에 더욱 살갑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 동강전도 167×110다색목판 1999

 

젊은 시절 민족미술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류 작가는 온 몸으로 세상과 호흡하며 청춘을 내던졌었다. 당시의 그는 대표적인 민중화가였으나 작품보다는 미술운동에 방점을 둔 삶을 살았다. 93,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성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후 10여년은 작품활동에 몰입할 수 있었다.

 

 93년부터 안성에 자리잡고 목판 작업에 매진해온 류연복 작가. 지역사회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상과의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90년대의 그는 안성천살리기 시민모임, 푸른 안성맞춤21 등의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시대의 화두인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품에다 그 정신을 담기 시작한다. 동강전도, 외암골 전도 등 우리가 딛고 선 땅을 새의 관점으로 바라본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시기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금강산독도를 거닐며 그려낸 풍광을 목판에 옮겨내며 재차 주목받기에 이른다. 최근엔 오는 4161주기를 맞는 세월호 추모전 준비에 온힘을 쏟고 있다.

 

 

송이송이 34×27채색목판

 

전시 주제가 망각에 저항하기에요. 유가족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이 사건이, 이 아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이랍니다. 그 사이 문제가 해결 됐다면 유족의 마음도 달라졌겠죠.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해결 난 게 없으니까요.”

 

망각에 저항하기추모전에는 304명의 세월호 사망·실종자를 상징해서 연령과 지역을 불문한 304명의 작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설치, 조각, 판화, 회화 등 장르도 다양하다. 작품들은 안산시 고잔동에 마련된 세월호 기억저장소를 비롯해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경기도미술관, 합동분향소 곳곳을 벨트처럼 이어내게 된다.

 

 

 물길은 삶의 길 34×27채색목판

    

 

 

호박 줄기처럼 지그재그로 가는 사회 만들어야

류연복 작가는 홍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목판화가로 입지를 굳혔을뿐 아니라, 붓과 먹으로 글씨 쓰기를 즐기고 목판 위에 동양의 전통물감으로 채색하기를 좋아한다.

 

처음엔 민미협 활동을 하면서 손을 놀리지 않기 위해 짬짬이 나무를 팠지요. 안성에 이주해 본격적으로 목판 작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무에 푹 빠져버렸고요. 나무를 상대하는 순간은 모든 상념이 잊히고 나를 스스로 정제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나무가 단순한 재료가 아닌 삶의 화두였던 거죠.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걸 품어주는 존재가 바로 나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 쾡이갈매기 날아오르다 61×30.5㎝ 다색목판 2007

 

작가는 나무를 깎다보면 무념무상에 빠진 자신을 본다. 나무를 파는 동안 스스로 자기수양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깨달음이 시의 구절처럼 하나씩 떠오르고, 그렇게 건져 올린 글귀를 판화 그림 주변에 적는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도시를 이루는 선은 직선이지만 자연에서는 모든 게 곡선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곡선의 삶인 것 같아요. 언젠가 호박순을 나무판에 찍어 놓고 한뜻 한길로라고 썼어요. 호박줄기는 지그재그로 자라나지만 마지막엔 열매가 열리잖아요. 좀 더디고 느리긴 하지만 우리 사회도 저렇게 가면서 단단한 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1 집선봉의 봄 61×30.5판화 2007 2 귀면암-61×30.5판화 2007 3 봉래산 구룡폭포 61×30.5판화 2007

 

우리나라는 식민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이 켜켜이 쌓여아 비로소 만들어지는 단단한 결을 얻지 못했고,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가 오늘의 고통을 낳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30년간 현실과 호흡하기를 마다하지 않던 예술가의 깨달음이기에 귀가 더욱 쫑긋해진다.

 

 다시 건너간다 90×130다색목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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