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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판화가 신상용]
사라지는 팬트하우스를 새긴다

 부를 상징하는 팬트하우스. 그러나 동판화가 신산용 작가에게 팬트하우스란, 서민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희망을 간직하게 해주었던 소박한 보금자리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어수선한 도시 부산에서, 그는 우리 시대의 팬트하우스를 미래로 가져가는 작업에 골몰 중이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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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활동해온 신상용 작가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지닌 특유의 경관을 동판화에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도시재생이 남겨야 할 것은 사람사는 풍경

어린 시절 산복도로 마을에서 살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부산시민들은 저마다 비탈진 산동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지니고 있죠. 지금 돌아보니 거기가 바로 우리 시대의 팬트하우스였어요.”

 

75년생 청년작가 신상용은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산의 오래된 건물들은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지형 때문에 산자락에 걸쳐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자리한다. 특히 산 중간에 횡으로 걸쳐진 16km 길이의 산복도로는 도로를 기점으로 위아래로 빼곡히 들어찬 집들로 인해 경이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이 지역은 2010년 부산시가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사업에 뛰어들면서 타 도시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들어왔다. 작가 신상용이 산복도로 마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그 즈음부터다.

 

City Pafadigm-Penthouse 80×50Silkscreen, Mixed media 2014

 

City-Pafadigm 80×40Aquatint, Etching, Silkscreen 2014

 

도시재생사업을 접하면서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보금자리가 가장 이상적인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런 곳이 바로 펜트하우스 아닐까요?”

 

작가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산동네마을을 팬트하우스로 재인식하게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다. 작가는 어느 날 바라본 산복도로의 주택들이 울긋불긋 변해 있는 것을 보고 통탄해 마지않는다. 세월에 의해 퇴적된 자연스러운 색상은 온데 간데 없고 인공적인 페인팅으로 뒤덮인 집들이 구경거리처럼 늘어서 있다니. 이처럼 사라지는 부산의 풍경을 간직하고 싶어서 시작한 작업이 바로 도시의 패러다임 시리즈다. 그 중에서도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옛집들, 팬트하우스를 중점적으로 남기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City-Pafadigm 90×45Aquatint, Etching, Silkscreen 2014

 

신 작가는 어느새 도시계획자가 되어 고층 빌딩 숲 속에 전원적 도시 이미지를 심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고층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산복도로의 집들은 밝고 경쾌한 컬러를 드러내며 극명한 대비 속에 존재감을 빛낸다.

사람들이 감천 문화마을을 찾아가는 이유가 뭘까요? 벽화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더군요. 좁은 골목길과 구불구불하면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며 볼 수 있는 사람 사는 풍경이 그립기 때문이에요. 10, 30년 후 우리 도시의 모습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그런 생각을 하면 아찔해져요. 그래서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팬트하우스를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졌어요.”

 

City Pafadigm-Penthouse 29×39Aquatint, Etching 2014

 

 

시대의 감성을 새기는

멀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작가의 작업은 부산 곳곳을 다니면서 소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건진 오래된 집들을 컴퓨터로 옮겨와 편집을 거친다. 여러 장면을 오려 붙이기도 하고 포개기도 한다. 포토샵으로 완성된 이미지가 동판 위에 스케치된 후, 여느 동판작가와 다름없이 고된 칼질이 시작된다. 강하기 그지없는 동판 위에 일일이 손으로 칼자국을 내는 일은 그 어떤 작업보다도 고단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City Pafadigm-Penthouse 50×30Aquatint, Etching 2014

 

그런데 한가지, 신상용 작가의 동판화가 남달라 보인다. 그가 사용하는 동판화의 대표적인 기법은 에칭과 에쿼틴트. 모두 금속판과 산의 부식을 통해 판을 완성해 가는 기법으로, 부드럽고 미묘한 색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 두 가지를 혼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는 하나를 더 활용한다. 바로 실크스크린이다.

 

동판화는 모노톤의 흑백 화면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 전달에 효력이 있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작가가 원하는 완벽한 색상을 동판 위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 그래서 신 작가가 찾은 방법이 실크스크린과의 접목이다. 실크스크린은 인쇄용색상분리(CMIK)를 사용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색상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표현하는 판화는 디지털의 느낌을 뛰어넘기 힘들어서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죠. 그렇다고 해서 당장 결과가 드러나는 작업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아요. 정통 판화의 공정은 물론이고 새로운 기법과의 접목에 대해서도 더 깊이 연구해서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판화의 정통기법을 잘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감수성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상용 작가는 여전히 새로운 기법과의 공존을 모색 중이다.

 

신 작가의 동판화 사랑은 남달라 보인다. 그는 올해로 32년을 맞는 부산동판화작가협회 회원으로 판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조교수를 지내며 기법 전수에도 골몰 중이다

스스로 자신의 판화 실력이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며, “동판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그의 뚝심에서 동판화가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신상용 작가처럼 사라져가는 도시풍경에 집착한다. 그런데 변형보다는 보전에 방점을 두는 작업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 작가는 새로운 도시의 패러다임은 미래도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 도시의 이미지를 잘 담아서 미래로 가져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움직임이 주는 메시지의 효력을 더 늦기 전에 짚어봐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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