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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최고의 건축가]
필립 존슨을 생각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최고의 건축가였던 필립 존슨(Philip Johnson, 1906~2005)이 서거한지도 이번 달로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어워드의 초대 수상자이며, 살아생전 20세기 현대건축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발자취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번 달 글에는 서거 10주년을 맞은 필립 존슨의 생애를 되돌아 보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사진 김석철(국가건축정책위원장·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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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니빌딩(AT&T 빌딩).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상징하는 작품이다.(1984년작)

    

서른이 넘어서야 건축가의 길 들어서

필립 존슨은 글래스하우스, 시그램빌딩, AT&T빌딩(현 소니빌딩), 푸에트라데에우로파 등 건축계의 화제작들을 설계한 위대한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뉴욕 모던아트 뮤지엄(MoMA)을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키운 뛰어난 아트디렉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뉴욕 지식인 사회의 리더로서, 건축계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펼치며 세계도시라는 뉴욕을 이끌어 온 사람이었다.

 

 

필립 존슨은 원래 서른이 넘어서야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사람이다. 그는 학부때 인문학을 공부했으나, 졸업 후 뉴욕의 모던아트 뮤지엄에서 일하며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는 건축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처음으로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후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 중 한명이었던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를 알게 되면서 삼십이 넘는 나이에 하버드 건축대학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건축을 공부하게 된다. 폴 고갱이 삼십이 넘는 나이에 가정과 직장 모두를 버리고 미술의 길에 들어선 것보다 더 힘든 길을 들어선 것이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폴 고갱이 전문적인 미술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교육만큼이나 천부적인 재능이 중요한 미술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건축은 재능을 떠나서 수 없이 많은 기술적 지식이 필요한 영역의 것이어서 서른이 넘어 건축을 시작하는 것은 서른이 넘어 의사가 되기를 작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필립 존슨은 그러나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직후부터, 서른이 되어서야 건축을 시작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원숙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글래스하우스. 필립존슨 자신의 주말별장이었다(1949년작)

    

초기의 글래스하우스와 중기의 AT&T 빌딩

필립 존슨의 작품은 그 스타일에 따라 크게 초기, 중기, 후기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의 작품은 그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을 받은 합리주의 스타일의 작품들인데, 코네티컷주 뉴캐넌에 위치한 글래스하우스(1949)는 그의 초기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글래스하우스는 자연의 흐름이 그대로 집을 통과하는 듯, 아름다운 벌판위에 그대로 서 있는 투명의 집이다.

 

 

위대한 건축은 역사적 관점에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선 건축 그 자체로서 아름다워야 하는데, 글래스하우스는 말 그대로 건축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변 자연과의 조화가 특히나 경이로운데, 건축물의 완벽한 비례감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뛰어난 디테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이 작품 이후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20세기 중반 뉴욕 맨하탄의 고층빌딩을 대표하는 시그램 빌딩(1956)을 만든다.

 

1 시그램빌딩. 미스 반 데어 로에와의 공동설계작이다(1956년작) 2 립스틱빌딩. 뉴욕 맨하탄 소재(1986년작

 

시그램 빌딩 이후 필립 존슨은 서양 고전건축의 전통을 잇는 그만의 새로운 건축세계를 열어가는데, 이 시기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표현되는 그의 중기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건축인생에 있어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뉴욕주립극장(1964), 예일대학 클라인 생물학타워(1966), 포트워스 워터가든(1974), AT&T 빌딩(1984), 립스틱 빌딩(1986) 등 수 많은 걸작들을 선보인다.

 

1 링컨센터에 위치한 뉴욕주립극장(1964년작) 2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위치한 워터가든 (1974년작)

 

특히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AT&T 빌딩은 발표되자마자 건축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당시 유행했던 모더니즘 건축은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AT&T 빌딩에서 필립 존슨은 건물의 외관에 치펜데일 같은 화려한 곡선형 장식이나 아치나 석재같은 서양 고전건축의 요소들을 과감히 도입했다. 이 작품은 모더니즘을 종식시키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성기를 연 작품으로 평가되며, 건축의 장식성에 대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필립존슨의 스케치들


70세 넘어 건축상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필립 존슨은 72세에 미국 건축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평생공로상, 73세에 프리츠커어워드를 받으면서 잠시 화려한 은퇴의 길로 들어서는 듯 했다. 그러나 80세 이후 미국 오하이오주의 케이스웨스턴 대학에 터닝포인트(1996)라는 이름의 다섯조각군으로 이루어진 건축 복합체를 선보이며 다시 큰 화제를 불러 모은다.

 

푸에트라 데 에우로파. 유럽의 문이라는 뜻이다.(1996년작)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의 후기작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는 글래스하우스가 있는 뉴캐넌에 게이트하우스(1994), 플로리다에 퍼스트유니온플라자(2000), 댈러스에 인터페이스피스채플(2010)을 선보인다. 마드리드의 가장 중요한 가로 중 하나인 파세오 드라 카스텔라나에 세운 푸에트라 데 에우로파(1996)는 그전까지 그의 모든 작품과는 또 다른 노대가의 파격을 보여주는 대작이었다.



1 게이트하우스. 글래스하우스 옆에 지어진 건물이다.(1994년작) 2 미국 메사츄세츠 캠브리지에 위치한 애쉬 스트리트 하우스. 필립존슨의 하버드 건축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유명하다. 3 퍼스트유니온플라자. 플로리다에 위치한 건물로 필립존슨의 후기작품이다.(2000년작)

 

필립 존슨은 20세기 현대건축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디자인과 글과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적 원리와 완성된 형상을 보여준 진정한 작가였다. 필립 존슨은 건축가가 위대할 수 있는 길을, 그의 전 생애와 작품을 통해 모두에게 분명한 그림으로 보여준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였다. 또한 폭 넓은 지식, 깊이 있는 통찰, 예리한 분석, 유려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가진 필립 존슨이 쓴 수많은 글들은 고전으로 남아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큰 감동을 주고 있다.

 

1 예일대학 클라인 생물학 타워 (1966년작) 2 인터페이스 피스 채플. 필립존슨의 마지막 작품이다.(2010)

 

필립 존슨은 건축이 미술적 재능보다는 인문학적 감수성과 사회과학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사물의 핵심을 꿰뚫고 자연과학적 지평에서, 공학과 미학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가진 건축을 표현해낸 작가이다. 섣부른 독창성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과 조형 의지의 집합을 이루고자 평생 외길을 걸어왔던 그의 인생은 앞으로도 건축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귀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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